1천년 지킨 그 터엔 복제품만…18. 거돈사지 원공국사 승묘탑 |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거돈사는 통일신라 말인 9세기 창건한 사찰로, 사적 168호로 지정돼 있다. 중창이나 폐사 등 사찰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발굴조사 결과, 20여 칸 크기의 대법당 자리와 금당터를 중심으로 높이 약 2m의 불좌대가 확인돼, 나말여초 당시 대가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금당터 앞에는 보물 750호 삼층석탑이, 탑의 북쪽에는 보물 78호 원공국사승묘탑비가 남아 있다. 나말여초의 사찰 중에는 드물게 보존 상태가 좋다. 일제 때 옮겨진 뒤 여기저기 상처 복원됐지만 고향 못가고 ‘서울살이’ 거돈사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유물인 보물 190호 원공국사 승묘탑은 고려 현종 때 왕사를 지낸 지종스님(930~1018)을 기리며 세운 탑이다. 고려 때 법안종(法眼宗)을 처음으로 전했던 인물이다. 스님의 시호는 원공, 탑호는 승묘다. 고려 태조 20년(937)에 출가한 스님은 946년 구족계를 받고, 중국의 영명사와 국청사 등에서 수행하다 962년 귀국했다. 현종 재임 초에 대선사(大禪師)가 되어 광명사에 주석하다가, 현종 4년(1013)에 왕사로 추대됐다. 스님은 5년 후 거돈사에서 입적했으며, 입적 후에는 국사로 추증됐다. <사진>보물 190호 거돈사지 원공국사 승묘탑. 사리탑은 전형적인 고려 전기 전형적인 8각부도 양식이다. 바닥돌이 없는 상태에서 3단의 기단으로만 세워졌다. 8각으로 이뤄진 기단은 각 층마다 연꽃문양, 8부신중 등이 새겨져 있다. 탑의 몸돌을 보면 8각의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했고, 기둥마다 꽃무늬 장식을 더했다. 앞뒤 양면에는 문(門)과 자물쇠를 형상화하고, 좌우 양면에는 창문모양을 조각했다. 남은 4개의 면에는 사천왕상을 입상으로 새겼다. 지붕돌은 목조건축 지붕의 양식을 본떠 만들었는데, 서까래와 처마, 기와골, 조각 등을 세심하게 묘사했다. 탑이 언제 세워졌는지 기록은 없지만, 탑비에 ‘태평을축추칠월(太平乙丑秋七月)’에 건립됐다고 나와 있어, 사리탑 또한 현종 16년(1025)에 해당하는 이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거돈사터에 마땅히 서있어야 할 탑은 현재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실에 전시 중이다. 일제강점기 때 반출돼 일본인의 집에 소장돼 오다가, 해방 이후인 1948년 경복궁으로 옮겨진 뒤, 오늘날까지 박물관 앞뜰에 세워지게 됐다. 탑이 처음 반출된 것은 1912년 이전이다. <석조문화재, 그 수난의 역사>에 따르면, “1912년 11월 누군가 경성으로 몰래 탑을 이관했으며, 이후 1939년 조선총독부가 보물 314호로 지정할 때 소유자는 경기도 경성부 남미창정 220번지에 사는 ‘와다’라는 일본인”라고 돼있다. 그러나 와다의 정원에 있던 탑은 광복 뒤에 자취를 감춘다. “1948년 승묘탑 실종에 대한 기사가 보도돼 세간에 회자됐는데, 와다의 집에 살았던 이 모씨가 성북동 자택 정원으로 옮긴 것을 신고”하면서 분실사고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 씨는 국립박물관에 탑을 다시 세우겠다는 내용이 담긴 서약서를 문교부 측에 전달해놓고 1년이 넘도록 탑 부재를 박물관 정원에 방치해뒀다. 결국 1년 후에 탑이 건립됐는데, 다시 선 탑은 옛 모습과 달랐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통에 훼손된 것은 물론, 보주 윗부분도 사라졌다. 수난 끝에 탑은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출 수 있었지만, 원래 자리로는 돌아가지 못했다. 현재 거돈사지에는 원주시가 2007년 원공국사 승묘탑을 재현한 복제품이 대신 사찰터를 지키고 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532호/ 6월13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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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돈사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유물인 보물 190호 원공국사 승묘탑은 고려 현종 때 왕사를 지낸 지종스님(930~1018)을 기리며 세운 탑이다. 고려 때 법안종(法眼宗)을 처음으로 전했던 인물이다. 스님의 시호는 원공, 탑호는 승묘다. 고려 태조 20년(937)에 출가한 스님은 946년 구족계를 받고, 중국의 영명사와 국청사 등에서 수행하다 962년 귀국했다. 현종 재임 초에 대선사(大禪師)가 되어 광명사에 주석하다가, 현종 4년(1013)에 왕사로 추대됐다. 스님은 5년 후 거돈사에서 입적했으며, 입적 후에는 국사로 추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