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 오간 곳 없고 사자상만 남아23. 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호 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은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탑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1580년대에 간행된 함주지(咸州誌)에 따르면, 주리사(主吏寺)는 여항산에 자리 잡고 있는데, 현재 주서리 좌촌마을과 대촌마을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이한 형식 탓, 20세기초 수난 시작 복원됐지만 의미 없는 곳에 우두커니 이 탑은 기단에 네 마리의 사자를 배치해 놓은 것이 특징인 이형탑(異形塔)이다. 사자상의 조각을 보면 단순한 형태이지만, 눈, 코, 입, 갈기가 세밀하게 조각돼 있다. 가지런히 앞 발을 모으고 앉은 모습이며,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탑신에는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조각했으며, 옥개석은 네 모서리 모두 하늘로 치켜 올라간 모습을 하고 있다. 석사자 4마리가 탑신을 받들고 있는 유례는 드문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리사탑을 포함해 국보 35호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보물 94호 제천 사자빈신사지석탑, 북한국보급 45호 회양 금장암 사자탑 등 4기만이 전해져 온다. 특이한 형식 때문에 탑은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917년에 이미 옮겨져 제 모습을 잃었다. <사진>복원되기 이전의 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 현재 함성중학교 운동장에 외롭게 서 있다.사진출처=문화재청 <석조문화재 그 수난의 역사>을 보면 “다이쇼(大正) 6년 조선고적조사보고에 따르면 함안군청 고적조사 서류에 주리사가 언제 어느 때 폐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석사자사석탑 1기가 지금 군청에 옮겨졌고 4사자 중앙에 있어야 할 불상 등을 잃었다”는 기록과 “1912년 경 함안군청으로 이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탑은 일제시대 면사무소로 옮겨졌다가 광복 후 다시 함성중학교로 이전됐다고 전해진다. 여기저기 옮겨다닌 탓인지 탑 부재들은 하나같이 훼손되고 없어졌다. 원래는 5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탑 부재들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4마리 사자상을 제외하고는 옥개석 4개, 탑신 2개, 노반 보주가 하나씩 남아 있고, 기단부는 아예 사라졌다. 그나마 남아 있는 탑재 양식으로 신라 하대 때 조성된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탑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1999년 문화재전문털이범들이 석사자상 4구 가운데 2구를 훔쳐 달아난 것. 사자상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절도범으로 추정되는 자들이 사자상 2마리를 쌀가마니에 담아 군청 앞에 놓고 돌아갔다고 한다. 이후 도난을 우려해, 4구의 사자상은 모두 함안면 창고로 옮겨졌다. 탑을 떠난 석사자상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 것은 지난 2005년 탑이 복원되면서다. 기존 5층으로 추정되는 탑은 3층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자가 올려진 기단부분은 제작연대가 비슷한 사자빈신사지석탑을 참고해 만들었고, 상륜부는 지리산 실상사 탑의 양식을 따랐다. 창고에 보관되던 사자상들도 모두 자기 자리를 되찾았다.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탑은 여전히 타향살이다. 교정에 덩그러니 남아, 탑이 갖는 원래의 의미는 되찾지 못하고 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542호/ 7월18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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