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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자리 복귀’ 선택 아닌 필수

34. 경주 남산 삼릉곡 약사여래좌상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자, 사적 311호로도 지정돼 있는 경주 남산은 신라 1000년의 역사 동안 가장 신성시돼 왔던 산이다. 산 구석구석마다 전해오는 숱한 유물들과 전설과 역사적 사실들이 이를 증명한다. 남산은 주봉인 금오산을 비롯해 도당산, 양산과 외산(外山) 주봉인 고위산 등으로 이뤄졌는데, 높이 468m의 정상으로부터 사방으로 흘러내린 계곡이 30여소 이상으로 알려진 명산이다. 여기에는 왕릉, 무덤, 궁궐터 외에도 수많은 절터와 불상, 탑 등이 남아 있다. 경주남산연구소에 따르면, 지금까지 확인된 것 만해도 절터가 147개소, 불상이 118구이며 석탑이 96기, 석등이 22개에 달한다.
일제가 저지른 악행에 터전 떠나
이젠 경주남산 품으로 돌려보내야
유물로는 국보 312호 칠불암 마애불상군을 비롯해 보물 136호 미륵곡 석불좌상, 옥룡암 계곡의 부처바위, 포석정, 배리삼존석불, 약수계의 대마애불, 용장사지, 백운대의 마애불, 사적 22호 남산성, 천룡사지, 창림사지 등이 대표적이다. “땅만 파면 문화재가 나온다”는 속설답게 지난 2007년에는 1300여년 전에 조성된 마애불이 발견되기도 했다. 산을 오를 때마다 친견하는 불상과 탑들은 그 옛날 신라인에게 남산은 불국토의 상징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삼릉곡은 많은 절터와 불상이 남아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석조여래좌상을 비롯해 마애관음보살입상, 석조약사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마애여래좌상과 선으로 그려진 여래입상삼존불.좌상삼존불, 여래좌상, 마여여래좌상과 상선암 여래좌상이 전해진다.
이 가운데 석조약사여래좌상은 대좌와 광배, 불상 모두 완벽한 모습을 갖춘 보기 드문 성보다. 원래 삼릉곡 선각마애대불 건너편 절벽 중간 단에 있었는데, 사람이 좀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지대에서 1000년 이상 서 있어, 인위적으로 훼손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절벽 중간에 만들어진 단에 세워진 이 불상을 일제 시대인 1914년 조선총독부가 경복궁으로 옮겼으며, 현재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사진>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경주 남산 삼릉곡 약사여래좌상.
대좌와 광배를 합한 높이가 3.32m인 이 불상은 높은 대좌 위에 앉아 있다. 팔각의 연화대좌의 하단과 상단에는 각각 아래위로 향한 연꽃이 조각돼 있다. 팔각기둥 형태의 중대석에는 향로가 앞뒷면에 새겨져 있고, 나머지 여섯 면에는 보살상이 조각돼 있다. 대좌 위에는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을, 왼손에는 약함을 든 약사여래가 앉아 있다. 맨 바깥쪽에는 불꽃문양이, 두 겹으로 표현된 신광과 두광 안에는 5명의 화불이 새겨졌다.
통통한 얼굴, 건강한 신체, 계단식으로 흘러내린 주름 등에서 8세기 불상들의 양식이 나타난다. 반면 근엄한 표정이나 웅크린 자세, 광배나 장식 등 9세기 불상의 특징도 함께 갖고 있어 8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000년 이상 경주 남산에서 중생과 함께 세상의 파고를 겪었을, 이 불상은 그러나 일제가 한일합방 5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조선물산공진회의 전시물 가운데 하나로 선택돼 자신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천불동’ 그 자체인 경주 남산 곳곳에 아직도 많은 석탑과 불상이 남아 있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존.관리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약사여래좌상의 제자리 찾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570호/ 10월31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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