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갑부, 정원 만든다며 ‘반출’31. 발산리 오층석탑과 석등 |
발산리 오층석탑과 석등은 현재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에 발산초등학교 뒤뜰에 세워져 있다. 원래는 완주 봉림사에서 조성된 탑이었는데, 일제 때 군산으로 옮겨졌다. 봉림사터는 전북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 있던 사찰이다. 고려 초에 창건됐던 사찰로 추정되는데, 사료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하지 않다. 절터에 남아 있던 석탑과 석등, 불상 등은 일제강점기 때 모두 반출됐다. 초등학교로 바뀐 뒤에도 ‘그 자리에’ 석탑 석등 불상, 군산 전주로 뿔뿔이 봉림사터 문화재가 군산까지 오게 된 이유는 일제 때 이곳에서 농장을 운영하던 한 일본인 때문이다. 시마타니 야소기치라는 일본인은 옥구군(현 군산)일대에 전답과 임야를 소유했던 거부로, 농장 정원을 꾸미겠다고 지역의 문화재를 마음대로 옮겨다 놓았다. 오층석탑과 석등도 그 때 옮겨왔다. 지금 탑이 서 있는 발산초등학교는 야소기치의 옛 정원이었던 곳이다. 1947년 초등학교가 건립될 당시 유물들이 반환되지 않고, 그대로 남겨진 탓이다. 여기에는 두 점의 유물 외에도 출처를 알 수 없는 석등과 석탑이 서 있다. 그가 옮겨온 석물 가운데 대표적인 유물이 보물 276호로 지정된 석탑과 보물 234호 옥구 발산리 석등이다. 발산리오층석탑은 고려 때 조성됐다.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있으며, 고려시대 탑 특유의 간결함이 살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아쉽게도 탑의 원형이 그대로 전하지는 않는다. 2층의 기단위에 5층의 몸돌을 올린 형태였는데, 지금은 탑신 한 층이 사라져 4층만 남아 있다. 기단의 신라 석탑을 본떠 만들었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는데, 몸돌에는 4개의 기둥을 새겼고, 지붕돌은 삼단의 받침에 추녀 끝이 하늘로 올라간 곡선 형태이다. 상륜부에는 다섯 개의 보륜과 보개가 남아 있는데, 후에 보수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군산 발산 초등학교 뒤뜰에 있는 보물 234호 옥구 발산리 석등.사진출처=문화재청 함께 반출된 석등은 고려 초기 때 조성됐다. 2.5m의 석등은 불을 켜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는 3단의 받침돌이 있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을 하고 있다. 받침 맨 아랫단과 위단은 연꽃이 아래, 위를 향해 피어 있는 것을 묘사했다. 가운데 기둥은 사각의 네 모서리를 둥글게 깎은 형태이며, 표면에는 구름 사이를 뚫고 오르는 용이 조각돼 있다. 8각의 화사석에는 4개의 창 사이에 악귀를 밟고 있는 사천왕상을 새겨, 부처님 법등을 꺼뜨리지 않겠다는 고려인들의 불심을 형상화했다. 지붕돌 역시 8각으로 처마 끝이 하늘을 향해 있으며, 꼭대기에는 연꽃무늬가 장식된 받침대가 있다. 석주나 화사석 모두 우리나라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양식이다. 이 석등은 화사석이나 사천왕상, 지붕돌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지만, 4각에 가까운 8각의 화사석이나, 받침기둥이 4각으로 변하는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여줘 10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봉림사터에서는 석조아미타여래삼존불상도 발견됐다. 1961년 인근 초등학교 교사가 봉림산 기슭에서 불상을 수습했는데, 삼존불 가운데에는 아미타불은 불두가 훼손된 상태였다. 석불상은 발견 초기 삼기초등학교에서 보관돼 오다가가 1977년 전북대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결국 봉림사터 유물들은 원래 자리인 완주가 아니라 군산과 전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561호/ 9월26일자] |
'불교유적과사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최고 금석문 ‘수차례 수난’ (0) | 2010.07.10 |
|---|---|
| 전시 위해 옮겨진 뒤 귀향 못해 (0) | 2010.07.03 |
| ‘걸작’ 명성에 더 큰 수난 (0) | 2010.06.19 |
| 인간 탐욕으로 얼룩진 ‘천년불상’ (0) | 2010.06.12 |
| 제행무상(諸行無常) - 법만스님 (0) | 2010.06.05 |
봉림사터 문화재가 군산까지 오게 된 이유는 일제 때 이곳에서 농장을 운영하던 한 일본인 때문이다. 시마타니 야소기치라는 일본인은 옥구군(현 군산)일대에 전답과 임야를 소유했던 거부로, 농장 정원을 꾸미겠다고 지역의 문화재를 마음대로 옮겨다 놓았다. 오층석탑과 석등도 그 때 옮겨왔다. 지금 탑이 서 있는 발산초등학교는 야소기치의 옛 정원이었던 곳이다. 1947년 초등학교가 건립될 당시 유물들이 반환되지 않고, 그대로 남겨진 탓이다. 여기에는 두 점의 유물 외에도 출처를 알 수 없는 석등과 석탑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