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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대상인 사리…거래가 웬말

37. 보스턴미술관 라마탑형 사리구

미국 보스턴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금은제라마탑형 사리구는 13세기에 조성됐다. 높이 22.5cm의 사리구는 라마탑 양식을 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사리장엄구 형태다. 사리구 내부에는 5cm의 팔각원당형 소형사리탑 5개가 봉안돼 있다. 탑신에 새겨진 명문에 따르면, 5개의 사리탑에는 삼세불과 두 명의 조사스님 사리가 안치돼 있다. 정광여래, 가섭여래, 석가여래, 지공조사, 나옹조사가 그 주인공으로, 각각 5매씩 사리를 봉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확인돼 전해지는 사리는 석가모니부처님과 지공.나옹스님의 사리탑에 있던 것으로, 총 4매가 보스턴 미술관에 보관돼 있다.
일제 때 도굴된 뒤 美 박물관 구입
사리, 신체일부…선의취득 ‘어불성설’
지공.나옹스님은 고려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인도 고승인 지공스님은 마갈제국에서 태어나 원나라에서 법을 전하다 충숙왕 13년(1326)에 고려로 왔다. 양주 회암사에는 지공선사의 부도와 석등이 남아 있는데, 부도비에 새겨진 내용을 보면, 지공스님이 회암사를 창건했으며, 3년간 고려에 머물며 후학들을 가르쳤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원나라 황제의 부름을 받아 다시 원나라로 돌아갔고, 고려인이 세운 연경 법원사에 주석하며 교화활동을 벌였다. 지공스님은 공민왕 12년(1363) 중국에서 입적했다. 사도인 달예가 유골을 수습해 고려로 돌아왔다. 공민왕의 명에 의해 1372년 회암사에 스님의 탑이 세워졌다.
고려 말 왕사를 지낸 나옹스님(1320~1376)은 지공선사의 제자이기도 하다. 20세 때 공덕산 묘적암의 요연스님을 찾아가 출가한 스님은 충목왕 4년(1348)에 원나라로 유학을 갔다. 연경 법원사에 주석하던 지공선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1371년 왕사로 임명돼 회암사에 주석할 때는 사찰을 중창했다. 스님의 사리탑은 입적한 곳인 신륵사와 회암사 두 곳에 전해진다.
<사진>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사진 출처=문화재제자리찾기
지공.나옹스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두 스님이 중국 연경에서 사제의 인연을 맺었음을 알 수 있다. 지공스님은 또 회암사의 창건주이며, 나옹스님은 병란으로 불탄 회암사를 일으킨 주역이기도 하다. 또 기록에도 공민왕이 지공스님의 사리탑을 회암사에 건립했고, 나옹스님의 사리탑이 신륵사와 회암사에 각각 조성했다고 한 점을 미뤄보아, 보스턴미술관에 소장된 라마탑형사리구는 회암사에 봉안됐을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소장처로 추정되는 곳은 개성 화장사이다. 화장사는 지공스님이 중창한 사찰로, 이곳에도 고려 때 세운 사리탑이 있다. 몸돌 상단에는 두 겹으로 된 연꽃잎이 새겨졌는데 여기에 ‘지공정혜영조지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화장사에 봉안됐던 사리구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문화재제자리찾기와 조계종 중앙신도회는 보스턴미술관 라마탑형 사리구 환수운동을 벌이고 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혜문스님은 “신앙의 대상인 사리는 결코 돈으로 사고 팔 성질의 것도 아님은 물론 신체의 일부로 볼 때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다”며 “미술관 측에서 사리구를 일본에서 구입했지만 사리는 불융통물로 거래의 객체가 될 수 없고 선의취득 대상이 될 수 없음”을 피력했다. “일제강점기 때 도굴돼 미국까지 건너간 것은 한국민과 불교도에게는 유감스런 일”이라고 강조한 스님은 “사리가 지닌 종교적 의미를 감안해 원산국 사찰에 봉안할 수 있도록 협조해줄 것”을 미술관 측에 당부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580호/ 12월5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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