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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때 전리품으로 약탈 추정

38. 다이겐지 소장 원효암 종

범종은 소리를 듣는 순간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울림이 강한 불구이다. 법당이나 종각에 가면 항상 만날 수 있어 쉽게 지나치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 중에는 중생 곁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것들도 많다. 특히 우리나라 범종은 ‘한국종’이라는 학명(學名)으로 불릴 만큼 우수성이 널리 알려져 있는 보물 중에 보물이다. 특히 국내에 전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평창 상원사범종이나 구리 12만 근이 들어갔다는 성덕대왕신종의 크기나 소리, 표면에 조성된 비천상 등은 제작수법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선조들의 뛰어난 금속공예기법을 담고 있기 때문일까. 많은 수의 종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보살상 · 여래상 새겨진 ‘고려 범종’
도요토미, 전쟁 끝난 후 日사찰 기증
2003년 직지사성보박물관이 개최한 ‘한국의 범종 탁본전-하늘꽃으로 내리는 깨달음의 소리’에 소개된 통일신라 때부터 조선까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범종을 보면, 우수한 제작기법 때문인지 몰라도, 상당수의 범종이 일본으로 옮겨졌음을 알 수 있다.
목수현 직지사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이 발표한 ‘일본의 한국종을 찾아서’에 따르면, 일본에 남아 있는 한국종은 60여기로,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소재가 확인된 것만 봐도 통일신라 종이 6기, 고려 종이 52기로 가장 많고, 조선시대 종이 5기로 총 63기에 달한다. 이 가운데 고려 종은 국내에 전해오는 고려 종의 수보다 많다.
이 종들이 일본으로 건너간 이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목수현 연구원은 위의 논문에서 크게 두 가지로 정리했다. 하나는 고려 말기 왜구의 침탈이 극심해지자 고려 조정이 토야마 막부에 이를 막아달라고 요청을 했고, 막부는 그 대가로 경전과 범종을 구해줄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이자 가장 많은 경우는 고려 말 왜구의 침탈에 의한 것이다. 이외에도 진주 연지사 종처럼 임진왜란 때 옮겨진 종들도 있다.
<사진>다이겐지 소장 원효암 종.사진출처=<한국의 범종 탁본전>
일본 히로시마현(廣島縣) 사에키군(佐伯郡) 미야지마쵸(宮島町) 다이겐지(大願寺)에 소장돼 있는 원효암 종도 임진왜란 때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직지사성보박물관이 발간한 도록 <한국의 범종 탁본전>에 따르면, 다이겐지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이츠쿠시마 진자(嚴島神社) 옆에 위치한 사찰이다.
여기에 소장돼 있는 원효암 종은 일본에서 확인된 52기의 고려 종 가운데 하나다. 전체높이 38.3cm, 종높이 22.3cm, 입지름 22.5cm 크기의 작은 종으로, 13세기 말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종의 몸통에는 구름을 타고 합장한 보살상과 몸 전체를 둘러싼 광배를 갖고 있는 여래상이 조형돼 있는데, 흔치 않은 도상이다. 음통 아래쪽에는 원효암 소종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러나 원효암의 정확한 위치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종 앞에 팻말이 세워져 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기진(寄進) 조선종(朝鮮鐘)’이라는 글귀가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의 전리품으로 가져가 이 절에 기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범종 중에는 일본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경우도 있다.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자부심은, 그러나 소중한 문화유산이 반출됐다는 씁쓸한 과거를 덮기에 역부족이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582호/ 12월12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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