最古 금속활자본 귀환 언제쯤…40. <직지> 금속활자본 〈끝〉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가운데 하나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心體要節, 이하 직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발간된 이 책은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구텐베르크의 <42행 성경>보다 70여년 앞선 것이기도 하다. 박병선 박사, 佛 국립도서관서 발견 많은 이들 반환 원하지만 메아리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사진제공=청주고인쇄박물관 <직지>는 ‘직지인심 견성성불’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볼 때 그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뜻을 갖고 있다. 고려 백운경한(1299~1375)스님이 선의 요체(要諦)를 집대성해서 만들었다. 중국유학당시, 스승인 원나라 석옥선사에게서 <불조직지심체요절>을 받은 스님은 <경덕전등록>과 <선문염송> <오등회원> <치문경훈> 등을 참고해 과거칠불과 중국의 110명 선사 등의 법어와 게송, 시, 찬(讚) 등을 뽑아 엮었다. 이를 제자인 석찬과 달잠스님이 청주의 흥덕사에서 간행함으로써 탄생하게 됐다. 상.하 2권으로 돼 있는 책은 현재 하권 한권만 전해진다. 하권은 39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째 장은 없고 2장부터 39장까지 총 38장만 남았다. 그나마도 국내에 없다. 우리나라에도 없는 이 책은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소장돼 있다. 국내에는 보물 1132호 백운화상직지심체요절 목판본과 조선시대 때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필사본만 남아있다. 목판본은 1378년 백운화상이 입적한 여주 취암사에서 제자 법린스님 등이 금속활자본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한국불교는 물론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이 책이 멀고먼 유럽까지 건너 간 시기는 대략 1900년 전후이다.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불란서대리공사로 부임한 꼴랭 드 플랑시(1853~1922)라는 사람이 근무기간 중 우리나라의 각종 문화재를 수집해 갔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직지>였다. 청주고인쇄박물관에 따르면, 모리스 꾸랑(1865~1935)이 1901년에 저술한 <조선서지> 보유판에 게재된 것으로 보아 1900년경에는 이미 수집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플랑시는 국내에서 수집한 고서 대부분을 모교인 동양어학교에 기증했는데, 유독 <직지>만은 경매골동품수집가였던 앙리 베베르(1854~1943)에게 넘어갔다. 1911년 드루오호텔에서 그는 180프랑을 주고 이 책을 구입했다고 한다. 그가 사망하자, 책은 그의 유언에 따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됐다. 책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한국인 박병선 박사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던 그는 1967년 <직지>를 발견한 뒤, 연구 끝에 이 책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2001년 책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우리나라의 앞선 인쇄술과 함께 불교문화를 보여주는 <직지> 가치를 세계인이 인정한 것이다. 얼마 전 한 연구자가 자신의 저서에서 <직지>의 경제적 가치가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값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그런 유산을 외국인에게 판 것은 귀한 문화재 가치를 못 알아본 우리의 잘못이 크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절, 프랑스의 외교관이 무지한 약소국의 문화재를 수집해간 것 또한 그리 좋은 변명거리는 되지 못한다. 국내 불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불교유산의 반환을 누구보다 바라고 돌려줄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이런 목소리들은 메아리처럼 돌아오고 있다.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의 귀한은 요원하기만 하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586호/ 12월26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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