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계신 곳: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어석리. | ||
가까운 여주나 안성처럼 이곳 이천에도 석불이 많다. 민불형(民佛形, 전문가의 작품이 아닌듯한)이 특히 많은데 이는 너른 들판이 전쟁의 대상이 되어 백성들은 늘 불안하여 부처님께 의지한 결과물일 게다.
변의 길이가 각각 다른 7각의 보관을 쓰고 계신 어석리 석불은 조성시기가 고려 초 이전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두개의 큰 돌을 사용한 것이나 민머리 형태의 두상과 각진 얼굴 모습 등으로 봐서, 귀를 조각한 솜씨는 발상의 전환처럼 보인다. 워낙 높아서 그런지 온전한 코와 작은 입모양 그리고 턱은 완벽하다. 평범히 내려뜨린 대의의 주름은 밋밋한 흘러내림으로 처리했으나 왼손에 법의가 감기는 모습을 새긴 게 조화롭다. 속옷의 위쪽(가슴께)주름은 역 오메가(℧)형으로 시작하여 반원형으로 내려오면서 무릎까지 덮었고, 대의는 흘러내려 옆으로 종아리쯤부터 뒤로 가면서 조금씩 빗겨 내려가고 거기서 다시 군의 자락이 휘돌아간 모습이 드러난다.
아랫돌 몸체에 편한 옷 주름과 앙증맞은 양발은 꼭 맹꽁덩이 같다. 대좌 앞면에만 앙련과 복련을 함께 새기고 나머지 삼면은 그냥 두었다. 높이가 4.3m에 이르는 거대한 석불을 모시기에는 큰 돌 두개를 겹쳐놓는 이런 방법이 좋을 듯 하다(예: 장성 원덕리 석불, 전남 유형문화재 제13호). 수인은 딱히 이름을 붙이기 애매하게 두 손을 다 내장형(內掌形, 손바닥이 안으로 향함)을 하고 있다. 네 귀퉁이에 남아있는 주춧돌기둥은 불상을 전각 안에 모셨었음을 증명하는데 가까운 곳에 있는 매산리 석불(일명 태평미륵, 경기 유형문화재 제37호)에는 지금도 돌기둥 위에 지은 전각과 석불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렇게 석불이 민가와 아주 가까이 이웃한 경우(예: 남원 과립리 석불, 전북 유형문화재 제128호)에 갖는 의문 하나, 옆집 분들은 부처님의 음덕을 얼마나 입고 계시는가가 늘 궁금하다. 석불을 찾아 나서는 길은 이렇게 하나의 주제를 정해놓고 다니는 것도 좋을 듯하다.
[불교신문3097호/2015년4월15일자]
'불교유적과사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초선대 마애석불(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8호) (0) | 2017.02.23 |
|---|---|
| 망경암 마애여래좌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2호) (0) | 2017.02.18 |
| 논산 상도리 마애불(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75호) (0) | 2017.02.08 |
| 보문산 마애여래좌상 (0) | 2017.02.03 |
| 나주 만봉리 석조여래입상 (0) | 2017.01.3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