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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선사시대 때 낙동강 유역의 군집생활로 시작해 기원후 532년에 금관가야(김해 금관국)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가 김해의 역사다. 가히 전기 가야역사의 중심축은 김해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 아미타마애불은 금관가야 중 하나인 가락국 2대왕인 거등왕(수로왕의 장남, ?~253)이 적적할 때마다 김해 동북쪽 칠점산 신선들을 불러 모아 바둑을 두었다는 초선대(招仙臺) 한켠에 있다. 마삭줄로 휘감긴 바위 수십여 개가 전부인 김해시 남쪽 자그마한 동산이 오늘날 초선대의 전부이다.

대략 높이 5m 정도의 큰 바위에 깊은 곳은 3cm 정도로 선각을 하여 4m 내외의 산기둥 같은 불상을 새겨 모셨다. 전체적으로 박락이 심하여 법의의 선이 분명하지 않다보니 불상이라기보다 실제 인물인 거등왕을 새겨 놓았다는 속설도 있다. 법의 속 양손은 바위의 요철(凹凸) 때문에 쉽게 구별하기가 어렵다. 두발의 발개찌트린 모양이 앞에 놓인 두개의 커다란 바위가 양발을 대신해 주는 것 같다. 좌대의 하단에는 물결무늬와 분방한 연잎을 새겼으나 거의 떨어져나가 전체를 보려면 안에 보다는 오히려 문 바깥에서 보는 것이 좋다.

고려시대에 조성한 불상은 대체로 우람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문경 대승사 묘적암마애불(경북무형문화재 제239호)도 그 중의 하나이다. 너무 커서 거부감이 있을 것 같기도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은 아마 근엄함 보다는 자상한 얼굴 모습에서 친근함을 느끼게 되는 연유 때문일 것이다.

김해지역은 삼한시대 이래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유적과 유물이 많이 남아 있는걸 보면 곡창이 주는 넉넉한 인심 덕분이 아닌가 한다. 수로왕이나 허씨 부인의 유적과 선사시대 유물 또한 곳곳에 남아 있어 역사의 변화무쌍함을 느끼기에는 여기만한 곳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 계신 곳: 경남 김해시 안동.

[불교신문3101호/2015년4월28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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