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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望京)이라는 의미는 다양하다. 그 중의 하나는 조정(朝廷)의 안녕과 왕실의 무운을 기원하는 의미일 것이다. 망경암은 여말선초(麗末鮮初)에 임금들이 행차하여 국태민안을 빌던 곳이다.

조선조 임금 중 세종이 일찍 죽은 아들 평원대군(1427~1445)과 그의 양아들인 제안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칠성단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명문(銘文)에 나타나 있다. 그중 하나에는 좌우 보필로 삼태(三台)와 육성(六星)을 새겼는데 이를 근거로 칠성신앙의 터로 봄직도 하나 바위에 새겨진 불상은 결가부좌를 한 여래상이다. 다른 명문에는 광무(光武)7년(1897) 이규승이라는 사람이 관음상을 새겼다는 기록도 있으나 분명 관음상은 아니다. 열 네 곳의 명문 중에는 칠성께 비는 내용과 함께 종묘사직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축원 각자도 보인다.

돌의 결을 잘 살려 감실(龕室, 불상을 모시는 공간)까지 만들어 정성으로 불상을 안치 했음에도 먹총이 같은 석질 때문에 자세한 기법은 보이지 않는다. 오른손은 항마인(降魔印)을 한 듯이 보이나 왼손은 가슴 중간에 두어 이름 붙이기가 애매하다. 웬만한 상안(上眼, 높은 안목)이 아니고서는 고졸한 멋을 감평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맨 위에 불상을 모시고 그 아래로는 돌을 다듬어 명문을 새겨 두었는데 글씨체로 봐서는 일시에 새긴 게 아니고 행사 때 마다 내용을 기록하여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암각자(岩刻字)가 많기로는 통도사가 단연 으뜸이다. 대략 370여명 정도의 유, 무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기생 이름만도 서른 댓 개나 되니 말이다. 그중에 무엇보다도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자연석에다 부도를 모신 것인데 요즘 웬만한 스님들의 부도를 보는 것보다 백배는 낫다.

예나 지금이나 어딜 가면 꼭 그곳에 표시를 해놔야 직성이 풀리는 종자들은 있게 마련인가보다. 보기 좋은 일은 아니다. 근처 하남 교산리 석불(보물 제981호)도 들러 볼 만하다.

◀ 계신 곳: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불교신문3099호/2015년4월22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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