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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다리 북쪽 끝에서 정읍천을 따라 한참을 가다가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어 멀리 산중턱에 제실이 보이면 거의 다 온 셈이다. 정읍 북쪽 두승산 동쪽줄기 치마바위 아래 망월사 터를 지키고 계시는 이 석불은 일명 ‘대암(大岩)석불’로도 불린다.
몸에 비해 상당히 큰 편인 갓 모양의 보관은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중기까지 성행했던 석불 조성방법의 특색 중의 하나이다(예: 담양 오룡리 석불입상. 전남 유형문화재 제192호). 몸체는 5m에 가까운 거구지만 거의 석주(石柱, 돌기둥)에 가까운 사각형이라서 떨어져서 보면 어색한 구석도 있고 삼도가 생략된 목은 얼굴이 동자승 같은 모습에 맞추려 한 것 같다.
수인은 일반적이지 않은 왼손과 오른손이 바뀐 어색한 모습이고 더욱이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 끝을 붙여 의미가 애매하다. 통견의 법의는, 목에는 두 줄의 주름으로 처리하고 아랫도리의 양옆 매무새는 세 줄로 처리하여 다감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고 가운데 옷 주름은 V자형으로 내려오다 U자형으로 마감을 한 것이 인상적이다.
석불의 발이 몸과 따로 노는 데는 그만한 연유가 있다 한다. 근동에 살다 42살에 요절한 익제(이희맹, 1475~1516)가 유년시절 석불상 앞에서 책읽기를 즐겨했다. 훗날 그가 해남 현감으로 있을 적에 석불이 당신의 벗이었던 꼬맹이가 장성해 벼슬을 사는 모습이 하도 그리워 옆으로 반 발짝을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아마 넘어진 것을 다시 세우면서 이와 같은 사단이 난 것은 아닐까?
지대석 안상에 새겨진 향로는 피어나는 향연(香烟)의 소리(옛 스님들은 ‘향-소리 참 좋다’고 말씀하셨다)가 코끝을 간지럽힐 정도로 빼어나다. 석불 앞 석등의 지대석이 그대로 있고 흩어진 것을 모아놓은 화사석(火舍石, 장명등이 놓이는 구멍 뚫린 돌)도 지금까지 잘 보존 되고 있다. 최고 경배대상이 되어야 할 분이 여기 이렇게 초라히 서 계신다.
[불교신문3081호/2015년2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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