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화불 호위한 불화
화려한 문양 은은한 색채
가뭄 구한 나옹스님 전설
진안 마이산 금당사는 백제 의자왕 10년(650)에 창건된 사찰이다. 고구려말 백제로 이주해 온 보덕스님의 열 한명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인 무상스님이 자신의 제자 금취스님과 함께 세웠다고 한다. 이밖에도 현덕왕 6년(814) 또는 헌강왕 2년(876)에 중국인 혜감스님이 창건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초창기 사찰은 혈암사(穴巖寺) 또는 금동사(金洞寺)로 불렸는데, 현재 위치에서 약 1.5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창건 이후 고려 말까지 열반종 계열 사찰로 발전했으나, 숭유억불이 국가이념이었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사세가 크게 위축된다. 게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국란을 겪는 과정에서 쇠락하고 만다. 그러다 숙종 1년(1675) 때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 중창된다. 금당사란 이름도 이 때 붙여졌다.
금당사는 또 나옹 혜근스님(1320~1376)이 주석했던 사찰로도 유명하다. 금당에서 북쪽으로 500m거리에 있는 고금당은 나옹대사가 대각을 얻은 곳이다. 또 보물 1266호로 지정된 금당사 괘불에도 나옹스님과 얽힌 전설이 있다.
괘불이란 야외에서 법회나 의식을 올릴 때 걸어 놓고 예경을 올리는 대형불화를 말하는데, 금당사 괘불은 길이 8.70m, 폭 4.74m의 크기이며, 관세음보살입상의 모습을 단독으로 그려진 불화다.
보물 1266호 금당사괘불.
괘불에는 오래전부터 전설이 전해진다. 가뭄이 심했던 어느 해 봄 사람들은 금당사에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어려운 사정을 들은 금당사 스님은 기우제를 올리라고 일러준 뒤 호랑이를 타고 사라진다. 사흘 뒤 돌아온 스님은 절의 뒷마당에 사람형상을 그리고 그곳을 백자만 파라고 말했다. 스님이 가리킨 곳의 땅을 파보니 그곳에 한 폭의 괘불이 묻혀있었고, 이 괘불을 걸고 기우제를 올리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등장한 스님이 바로 공민왕 때의 고승 나옹스님이라는 것이다.
전설과는 달리 금당사 괘불은 조선시대 때 조성됐다. 숙종 18년(1692)에 화가 명원(明遠) 등 4인이 그린 이 괘불은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은은한 무늬와 색상이 17세기 후반 불화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통도사관음보살괘불탱화 및 무량사미륵보살괘불탱화 등과 함께 보살괘불탱화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독존도 형식의 이 괘불은 중앙에 관세음보살이 용화수 가지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다. 관음보살은 오색의 원형두광과 함께 광배가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형상이며 광배 밖으로는 색색의 선들이 뿜어져 나와 불꽃무늬를 연상시킨다. 광배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화려한 선 주변에는 총 20십 명의 화불이 그려져 있어 당당하게 서 있는 관음보살을 호위하는 듯하다.
관음보살은 연꽃위에 수많은 부처님의 얼굴이 그려진 보관을 썼으며, 보관 좌우에는 봉황이 있다. 뒤로는 머리칼을 묶은 흰 매듭이 표현돼 있다. 신체에 비해 얼굴이 비교적 크게 묘사돼 있는데 눈은 가늘며, 입술은 얇고 작다. 특히 관음보살을 장엄하는 영락장식과 더불어 광배 안쪽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문양들은 괘불의 화려함을 더한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383호/ 12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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