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전기 불상 중 ‘최고’
Ω.u자형 곡선 옷주름 특징
조성연대 적힌 불복장 발견
설악산 대청봉에서 사찰까지 작은 웅덩이 100개가 있어 이름 지어졌다는 인제 백담사. 설악산 산행을 오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는 이곳은 특히 만해 한용운(1879~1944)스님이 출가했던 곳이자, 전두환 전대통령이 국민의 비난여론을 피해 은둔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만해스님의 <백담사 사적기>에 따르면, 신라 진덕여왕 원년(647)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한계사’를 창건하고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했다고 한다. ‘한계사’는 백담사 창건 당시 이름이며, 원래 한계령 중턱에 세워졌었다. 신라 원성왕 6년(790년)에 운흥사로 개칭됐고, 심원사, 선구사, 영취사 등으로 불리다가 178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백담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이후 여러 차례 소실됐던 사찰은 6.25 전쟁 직후인 1957년에 복원됐으며, 대규모 불사 끝에 법당, 법화실, 화엄실, 나한전, 관음전, 산신각 등이 세워졌다.
수차례 소실과 복원을 반복하며 오랜 세월을 이겨온 백담사에는 보물 1182호인 백담사목조아미타불좌상과 복장유물이 남아 있다. 극락보전 주불로 모셔진 이 불상은 조선 영조 24년(1748)에 조성된 것이다. 18세기 전반에 조성된 불상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머리에는 소라모양의 나발이 촘촘히 붙어있고, 정수리부분에는 상투모양의 육계가 금색으로 높이 솟아 있다. 얼굴은 둥근 편인데, 눈썹과 눈이 가늘게 표현돼 있고, 작은 입과 오뚝한 코가 더해져 독특한 인상이다. 두상에 비해 어깨와 가슴이 넓어 당당한 모습이다. 어깨의 Ω형 주름과 무릎사이의 옷 주름은 곡선으로 처리돼 있다. 가슴에는 또 U자형의 중복된 주름과 함께 내의(內衣)상단에 매듭을 지어놓았다.
백담사 목조 아미타불좌상.
이 불상은 특히 조성연대를 알려주는 발원문(發願文)과 많은 복장물이 발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복장에서 불상신조성회향발원문 1매와 다라니서입회향발원문 1매, 홍참의 다리연화방거 한글발원문 1매, 자식점지한글발원문1매와 만자소화(卍字小花)문 노란색단삼회장 저고리 1점, 유리와 수정 등의 파편수백점을 보자기에 싼 복장물 1괄이 확인됐다.
특히 영조 24년(1748)에 만들어진 것으로 만자(卍字)를 서로 연결한 문양과 함께 국화무늬를 단순화한 소화문을 도안으로 사용한 노란색단 삼회장저고리는 조선시대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 꼽힌다. 저고리 주인공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깃과 곁마기의 만자운용문 자단색으로 보아 궁중의 왕족이거나 왕실과 관계된 신분으로 추측된다.
한편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으로 활동했던 만해스님이 주석했던 이곳에는 스님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05년 연곡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백담사에서 <조선불교유신론>과 <십현담주해> 등을 집필하고 시 ‘님의 침묵’을 발표했다. 이런 인연으로, 백담사 곳곳에는 만해스님을 추모하기 위한 당우들이 세워졌다. 지난 1995년 지하 1층, 지상 1층 110평 규모로 건립한 만해기념관에는 스님의 동상을 비롯해, 저술과 사진, 오도송 등이 전시돼 있으며, 이밖에도 스님의 시비를 비롯해 만해도서관과 교육관, 연구관, 수련원을 통해 만해스님의 선사상을 고취시키고 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379호/ 11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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