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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산청 내원사는 계곡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봄꽃의 기운과 녹음의 짙푸름, 색색의 단풍, 순백의 설산의 모습을 간직한 내원사 계곡에는 사계절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신라 말 무염(無染, 801∼888)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데 당시에는 덕산사(德山寺)라고 불렸으나, 어느 때인가 내원사로 개칭됐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사찰답게 이곳에는 신라인들의 혼이 담긴 성보들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보물 1021호 석남암수(石南巖藪)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다.

 

 

비바람에 깎여도 세련된 자태

현존하는 비로자나불상 중 最古

납석제호 명문으로 진가 드러나

두툼한 코-가는 눈 ‘8세기 특징’

비로자나불은 원래 지리산 중턱에 있던 석남암사지에 모셔졌던 것인데, 내원사로 옮겨졌다. 신라 혜공왕 2년(766) 조성된 이 불상은 현존하는 비로자나불상 가운데에는 조성시기가 가장 빠른 것으로, 조각사 편년 및 사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 석조비로자나불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1980년 부산시립박물관에서 납석제사리함을 발견하면서부터다. 국보233호로 지정된 영태2년명납석제호(永泰二年銘蠟石製壺)가 바로 그것이다. 지리산 암벽 아래 있는 암자터에서 불상이 없는 대좌의 가운데 받침돌 안에서 발견된 이 항아리에 쓰인 명문 덕분에 우리나라 조각사가 한층 향상될 수 있었다.

<사진> 보물 1021호 석남암수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사진제공 문화재청

총 높이 14.5㎝, 병 높이 12㎝, 아가리 지름 9㎝, 밑 지름 8㎝인 이 항아리 표면에는 15행으로 돌아가며 비로자나불의 조성기록과 ‘영태 2년 신라 혜공왕 2년(766)’이란 기록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불상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다 한 미술사학자의 노력으로 석조비로자나불 대좌의 중대석에서 출토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신라 비로자나불 좌상의 제작 연대가 8세기로 올라가게 된 것이다. 항아리의 전체적인 제작 기법이나 뚜껑 처리 방식, 글자의 새김 등도 물론 중요하지만, 특히 명문에 새겨진 비로자나불의 제작연대에 대한 기록과 함께 석불의 복장봉안 양식을 보여주기 때문에, 항아리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높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여 세부표현이 명확하지 않지만, 석조비로자나불은 당당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코는 두툼하며, 눈은 길고 갸름해 8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상투처럼 생긴 머리위에 있는 육계는 넓고 큼직하게 표현돼 있다. 어깨가 넓어 듬직한 모습이며, 옷주름은 마모되긴 했지만 얇고 촘촘하다.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감싸쥐고 있는 수인을 통해 비로자나불임을 알 수 있다. 연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는 광배는 오른쪽의 3분의1가량이 깨져 없어진 상태다.

 

대좌는 상.중.하대로 이뤄졌는데, 8각으로 된 하대에는 아래로 핀 연꽃무늬가 새겨져있고, 8각의 중대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또 상대에는 연꽃무늬를 2겹으로 조각했다. 신라 혜공왕 2년(766)에 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석남암사에 모신다는 내용이 새겨진 사리호(舍利壺)가 발견된 곳이 바로 대좌 중앙의 구멍이었다.

이밖에 내원사에는 보물 1113호인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올린 모양이다. 불에 타서 심하게 훼손된 상태이지만, 기단부 구성이나 각부의 조각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하대 석탑의 원형을 보여준다. 

어현경 기자

[불교신문 2377호/ 11월17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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