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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의 천태산에 위치한 영국사는 영동 양산팔경 중 하나이다. 신라 문무왕 8년(668) 때 창건돼, 고려시대인 12세기에 이르러 원각국사(?~1174)가 중창한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 초기에는 만월사(滿月寺)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고려 고종 때 감역(監役) 안종필이 왕명을 받아 탑과 부도, 금당(金堂)을 중건하고, 국청사(國淸寺)라고 개칭했다. 영국사로 부르게 된 것은 고려 공민왕에 이르러서이다. 당시 원나라의 홍건적(紅巾賊)이 개성까지 쳐들어오자, 공민왕은 영국사까지 몽진(蒙塵)을 와 이곳에서 국태민안 기도를 올렸다. 이후 홍건적을 물리치고 나라가 평안해지자 사찰이름을 영국사로 바꿔 부르게 했다고 한다.

 

‘천년 보물’에 합장 올리고…

1000살 은행나무가 먼저 반겨

삼층석탑 통일신라 후기 조성

8각 부도 받침돌엔 연꽃 장식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만큼 영국사에는 많은 유적들이 남아있다. 주요문화재로 보물 532호인 부도(浮屠)와 보물 533호인 삼층석탑, 보물 534호인 원각국사비, 보물 535호 망탑봉 삼층석탑 등을 꼽을 수 있다.

보물 532호 영국사 부도.

하지만 영국사 가는 길에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성보가 아니라 커다란 은행나무 한그루다. 절에서 200m 가량 떨어져 있는 이 나무는 수령이 1000살로 추정되는 고목이다. 천연기념물 223호로 높이가 31.4m이며, 가슴높이 둘레가 11.54m에 달한다. 무심하게 뻗은 가지의 조화로움이 더해진 이 은행나무는 영국사를 찾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사찰에 들어서면 대웅전 앞에 서 있는 보물 533호인 삼층석탑을 볼 수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다.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겨놨으며, 1층 몸돌 정면에는 자물쇠와 문고리가 달린 문(門)모양을 새겨놨으며, 2층으로 올라가면서 몸돌의 높이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3개의 옥개석은 네 귀퉁이 모두 날렵하게 위로 올려간 모양을 하고 있다.

경내에는 원각국사 덕소스님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 있다. 스님은 1174년 영국사에서 입적했는데,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따르면, 비문을 지은 이는 한문준이고, 비석은 스님이 입적한 6년 뒤인 고려 명종 10년(1180)에 세워졌다. 높이 110cm의 이 비는 거북 모양의 비받침인 귀부(龜趺) 위에 비몸을 세우고, 비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귀부는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양식을 보여주는데 용의 머리를 한 거북머리는 퇴화됐고, 거북이 등딱지의 육각무늬나 비를 끼우는 곳의 덩굴무늬가 생략된 모습이다.

보물 533호 영국사 삼층석탑.

또 영국사 안에서 남쪽 언덕 위에 있는 보물 532호 부도는 원각국사비와 연관지어볼 때 1180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8각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기단부와 탑신부, 머리장식부로 나눌 수 있다. 기단은 3겹으로 돼 있는데, 가운데 받침돌에는 면마다 안상(眼象)이 조각됐고, 윗받침돌에는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탑신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을 새겼고, 옥개석은 기와골을 본뜬 모양을 하고 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371호/ 10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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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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