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쌍계사는 문성왕 2년(840)에 진감국사 혜소(774~850)스님이 중창한 사찰이다. 창건 초기에는 옥천사(玉泉寺)라고 불렸지만, 헌강왕 때 쌍계사로 개칭했다. 쌍계사는 다도와 범패의 모태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은 차(茶)를 처음 재배한 곳으로 유명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흥덕왕 3년(828)에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왔고, 왕의 명을 받아 지리산 일대에 차를 심었다고 한다. 그 뒤 830년 혜소스님이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를 심어 보급했다. 이런 인연으로 현재 쌍계사 입구 근처에는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遠碑)가 세워져있으며, 사찰 일대에 있는 차나무 재배지역은 경상남도 기념물 제61호로 지정돼 있다.

 

갈라진 탑…무심한 세월…

국보 47호 탑비엔 최치원 비문

대웅전은 임란 중 화마로 손실

인조 때 중수 후 최근 해체보수

또 우리나라 범패의 시원지이기도 하다.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혜소스님은 쌍계사에서 범패를 가르쳤다. ‘진감선사대공탑비문’을 보면, 신라에서 어산의 묘음을 익히려는 사람들이 진감국사가 남긴 음향을 본뜨려 했다고 한다.

오랜 역사에 걸맞게 쌍계사에는 많은 성보들이 전해져온다. 국보 47호인 진감선사대공탑비를 비롯해 보물 500호 대웅전, 보물 380호 쌍계사 부도, 보물 925호 팔상전 영산회상도 등이다. 이 가운데 진감선사대공탑비는 혜소스님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것이다. 진성여왕 원년(887)에 세워진 이 비는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통일신라 후기의 탑비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인데, 받침돌은 용머리를 한 거북형상이 조각돼 있고, 머릿돌에는 용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 탑 전체가 갈라지고 깨져있다.

 

<사진> 진감선사대공탑비.

해체보수작업을 마치고 최근 모습을 다시 드러낸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화마로 손실된 것을 벽암스님이 인조 10년(1632)에 다시 세운 것이다. 어간 종도리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1632년에 벽암 각성스님의 중수한 이후, 숙종 21년(1696년)에 백암 성총스님과 영조 11년(1735년) 법훈스님이 다시 지었다고 한다.

대웅전은 팔작지붕의 다포양식이며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3칸이다. 가운데 3칸에는 4짝의 여닫이문이, 양쪽 끝 칸에는 두 짝의 여닫이문이 달려있어, 건물 규모가 비교적 큰 편이다. 기둥은 민무늬흘림기둥이며, 기둥사이는 화려하게 장식된 공포가 얹혀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을 주존으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이 봉안돼 있으며, 불단 위 지붕모양의 닫집이 화려하다. 특히 조선시대 불교 목조 건축의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어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연구 자료이기도 하다.

<사진> 쌍계사 대웅전. 사진제공=문화재청

쌍계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육조스님 정상탑이다. 쌍계사에 따르면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대비.삼법스님이 중국 육조 혜능스님의 두상(頭像)을 모시고 와 탑에 봉안했다고 전해진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369호/ 10월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