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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옥천사(玉泉寺)는 신라 문무왕 17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옥천사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사찰이 창건되기 전부터 이곳에 맑은 샘이 솟아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는 이 옥천은 옛날부터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감로수(甘露水)로 여겨져 왔다. 오늘날에는 한국 100대 명수(名水) 중의 하나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옥천을 마시기 위해 사찰을 찾는다. 대웅전 우측에 위치한 팔상전 옆에 옥천수각에서 이 물을 마실 수 있다.

 

세월 비껴간 듯 ‘또렷한 무늬’

 

고려 고종 때 제작된 보물495호

법회-의식 봉행에 법구로 사용

조성유래 등 새겨 귀중한 자료

옥천사는 한국불교사의 맥을 이어온 천년고찰 가운데 하나이다. 의상스님이 화엄학을 전하기 위해 세운 화엄전교십찰(華嚴傳敎十刹) 중 한 곳이 이곳 옥천사이며, 조선시대에는 여수 흥국사와 함께 남해안을 책임지는 승군사찰이었다. 넓은 앞마당은 승군들의 연병장으로 쓰였고, 주둔하고 있던 승군이 340명이나 됐다고 한다. 또 이곳은 봉암사 결사와 한국불교 정화불사를 이끌었던 청담스님이 출가한 사찰이기도 하다. 이런 오랜 역사 때문에 사찰에는 조선 후기의 각종 불교문화재 400점이 남아 있고, 기문(記文), 명문(銘文)이 92점이나 있다.

 

<사진> 보물 495호 옥천사 임자명반자. 사진제공=문화재청

옥천사에는 특히 보물 제495호인 임자명반자(壬子銘飯子)가 유명하다. 반자는 금속으로 만든 타악기를 말하는데, 일종의 쇠북과 같다. 금고(金鼓) 또는 금구((禁口)라도고 불린다. 주로 법당에 걸어놓고,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하며, 대중을 불러 모으거나, 급한 일을 알릴 때에도 사용된 법구다.

동제(銅製)의 이 반자는 ‘임자명’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고려 고종 39년(1252)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반자의 크기는 지름 55㎝, 너비 14㎝이고, 무게는 60kg에 달한다. 750여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무늬가 뚜렷하고 손상이 없으며, 옆면의 글을 통해 만든 시기와 유래, 관계자의 성명을 알 수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표면을 살펴보면, 굵고 가는 선으로 4겹의 원을 만들고, 각각의 원 안에 조각을 해놓았다. 가운데 원에는 6개의 둥근 연꽃열매가 꽃문양을 하고 있으며, 그 다음 원에는 연꽃잎이 겹쳐진 모양으로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세 번째 원에는 아무 무늬도 새기지 않았고, 가장 바깥 원의 안쪽에는 덩굴무니를 조각했다.

옆면의 중앙에는 굵은 선을 양각했으며, 선 위로 둥근 모양의 고리 3개를 달아 매달 수 있게 해 놨다. 또 옆면 위쪽에는 4행 187자의 글씨가 남아 있어 조성시기와 유래 등을 상세히 알 수 있다. 명문 가운데에는 ‘고려이십삼왕환자갑지년임자사월십이일재어경사공인가중주성지리산안양사지반자(高麗二十三王環甲之年壬子四月十二日在於京師工人家中鑄成智異山安養社之飯子)’라는 기록이 있다. 이 반자가 고종의 환갑을 기념해 만든 것으로, 지리산 안양사에서 사용됐던 것임을 시사한다. 하지만 언제 옥천사에 옮겨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이밖에도 성보박물관인 보장각에는 반자를 비롯해 1701년에 주조된 경남유형문화재 50호인 대종과 1816년에 제작된 경남유형문화재 59호 청동은입사 향로, 1866년에 강원 교재로 판각한 금강경 목판과 천수경 목판, 다라니경 목판, 청담스님의 유묵 등 120여 점의 불교문화재가 보관돼 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367호/ 10월13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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