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모란꽃을 입에 문 쌍학.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보물 제486호)은 우리나라 현존 사찰의 불단 중 장식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장식 문양들이 아름답고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내용도 풍부해서 신축 사찰의 불단 장식 문양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신비롭고 환상적인 문양으로 가득 찬 수미단은 허공에 걸려 있는 닫집과 함께 백흥암 극락전을 서방 극락정토의 세계로 장엄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현존 사찰 불단 중 장식성 ‘으뜸’ 손꼽혀

27개면마다 궁정취향 동.식물 문양 빼곡

부처님 위신력 나타내는 ‘祥瑞 현상’ 표현


백흥암은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조선 명종 때 팔공산에 있는 인종 태실의 수호사찰(守護寺刹)로 승격되면서 번성했다. 정조 때 한 차례 중수가 있었는데, 현존 불단은 그 당시 아니면 그 이후 조성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불단을 수미단이라 부르는 것은 부처님의 격을 최상의 위치로 높이기 위해 불교 우주관의 중심인 수미산을 부처님이 앉는 자리로 삼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수미산 정상의 도리천궁에서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했다는 ‘위모설법(爲母說法)’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백흥암 수미단은 장방형을 기본으로 한 불단으로, 받침.신부(身部).덮개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받침과 덮개 사이의 신부는 3단으로 구획되어 있는데, 정면은 15개면, 양 측면은 각 6개면 씩, 모두 27개의 면으로 짜여 있다. 각 구획면마다 환상적인 색채와 신비로운 형상의 동물과 식물 문양이 가득 차 있는데, 일반적인 불단 장식과 달리 금니(金泥)를 사용한 점, 연꽃보다 모란꽃 문양을 많이 활용한 점, 장식성이 강한 표현 등에서 궁정 취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사진설명: 모란꽃을 입에 문 봉황과 황금색 연꽃.
제작 기법을 보면, 얇은 판자에 문양을 투각하되 가장자리를 둥글게 처리하여 부조 효과를 내었다. 이렇게 완성된 투각판 뒤에 적황색을 칠한 얇은 판자를 덧대어 배경 구실을 하도록 했다. 색채는 기본적으로 적색.황색.녹색의 삼원색과 흑색.백색을 사용했으며, 용, 학 등의 동물은 특별히 금니를 칠했다. 원색, 금니 등 화려한 색채 안료를 사용했음에도 전체적으로 무거운 느낌을 주는 것은 색의 채도와 명도가 낮고, 흑색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각 구획면의 문양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수미단을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측면에, ①연꽃 봉오리를 손에 든 가릉빈가 ②여의주를 든 거북 등의 인물상.익룡(翼龍) ③네 발 달린 물고기.게.사람 얼굴에 네 발 달린 물고기 ④인두귀갑(人頭龜甲)에 조족(鳥足)이 달린 동물.마갈어 ⑤달리는 기린 ⑥두 마리의 물고기.자라 등이 시문되어 있다.

오른쪽 측면에는 밑에서부터 ①두 마리 물고기 ②여의주를 들고 있는 반인반어(半人半魚) 형상의 동물 ③백호(白虎) 형상의 동물.여의주 ④인두어신(人頭魚身) 형상의 동물 ⑤ 기러기 형상의 청조 ⑥ 기러기 형상의 황조 등이 시문되어 있다.

그리고 정면에는 ①흰 코끼리 ②봉황 ③연잎 줄기를 잡고 있는 동자.황룡.개구리.여의주 ④말 형상의 동물.모란 꽃 ⑤용머리에 표범의 몸.용 발가락에 물고기 꼬리 형상.두 마리 공작.국화 ⑥ 연잎 줄기를 잡고 있는 두 명의 동자.여의주.물고기.황룡 ⑦두 마리 사자.모란 ⑧봉황.황금 연꽃 ⑨사슴뿔의 익마(翼馬) ⑩두 마리 꿩, ⑪두 마리 물고기.국화 등과 함께 다양한 식물문양이 시문되어 있다.

다시 종류별로 분류 정리해 보면, 새 종류로는 학.기러기.꿩.공작.가릉빈가. 봉황 등이 있고, 동물로는 코끼리.사자, 수생동물로는 물고기.자라.개구리, 인물상으로 연꽃 동자, 그리고 식물로는 연꽃.모란.국화.매화.당초가 있다. 수미단에는 상상의 동물이라는 개념을 신비롭고 기괴한 동물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 익룡.황룡.기린.백호(白虎).마갈어 등은 이미 그런 이름으로 불리고, 또한 일반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는 동물이지만, 그 외의 것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기괴한 동물들이다. 그 형상은 반인반어(半人半魚).인신귀갑(人身龜甲).사족어(四足魚).사조족인두어(四鳥足人頭魚).조족인두귀갑상(鳥足人頭龜甲像).인두어신상(人頭魚身像).용두표신용족어미상(龍頭豹身龍足魚尾像).마신녹각상(馬身鹿角像) 등인데, 모습이 기상천외하여 상상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사진설명: 가릉빈가.
그런데 위에서 꿩, 학 등의 새 이름을 댔지만 그것이 꿩이나 학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다만 꿩이나 학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물고기도 잉어인지 쏘가리인지 아니면 무슨 물고기인지 할 도리가 없는데, 이 또한 새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이점은 예시한 몇 몇 사례에만 국한되어 있는 아니라 수미단에 시문된 모든 문양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다. 결국 수미단 장식 문양은 불자들의 관념과 환상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극락전은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고, 아미타여래는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이다. 불자들에게 있어서 서방 극락정토는 불자들에게 있어서 영원한 안락을 누릴 수 있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세계로 관념되어 있다. 극락정토에 대한 이같은 관념은 〈불설관무량수경〉, 〈불설아미타경〉 등 아미타여래 관련 경전에서 설한 극락국토의 모습을 바탕으로 해서 형성된 것이다. 극락정토의 정경을 설명한 〈불설아미타경〉의 내용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극락국토에는 밤과 낮 여섯 번 만다라화 꽃비가 내리고, 하늘에서는 백 천 가지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고, 땅에는 온갖 새들이 노닐고 있다. 흰 고니와 공작과 앵무와 사리조(舍利鳥)와 공명조와 가릉빈가와 같은 새들이 밤낮으로 여섯때에 걸쳐 아름답고 온화한 소리를 내는데, 이 새들은 모두 아미타여래께서 법음을 널리 펴기 위해 화현(化現)한 것이다.”

이 대목에 나오는 가릉빈가를 백흥암 수미단 좌측 아래쪽에서 볼 수 있다. 하반신은 새, 상반신은 사람, 등에 새 날개를 단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수미단에 가릉빈가 외에도 많은 새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 역시 가릉빈가와 마찬가지로 극락세계를 노니는 새들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수미단의 새는 실재하는 새가 아니라 관념 속의 새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극락의 아름답고 한상적인 정경을 묘사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연꽃을 비롯한 여러 가지 종류의 꽃이다. 극락세계에는 주야로 만다라 꽃비가 내리고, 금모래가 깔려 있는 연못에서 황금빛 연꽃이 핀다. 실제로 백흥암 수미단에도 연꽃, 모란꽃을 비롯한 많은 꽃이 장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금니를 칠한 황금빛 연꽃이 눈길을 끈다.

사진설명: 사조족인두어(四鳥足人頭魚)와 게.
고대 동양 사람들은 제왕이 덕이 높아 선정을 베풀면 천신이 이를 상찬(賞讚)하는 표시로 평소에 보지 못하던 동물이나 식물, 물건 등을 지상에 출현시킨다는 믿음을 가져왔다. 그들은 제왕이 선정을 베풀어 봉황이 뜰에서 노닐고 기린이 교외에서 놀고, 신마(神馬)가 여물통에서 먹이를 먹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실제 일어난 일처럼 기록하기도 했다. 불전 설화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찾아 볼 수 있다.

부처님의 지혜와 복덕, 신통과 위신력에 의해 나타나는 여러 가지 징조를 천인(天人) 또는 신비로운 동식물의 출현에 비유해 설명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부처님이 탄생했을 때 아홉용이 물을 토하여 부처님을 목욕시켰다거나, 〈삼보감응록(三寶感應錄)〉 내용 중에, 사람이 아미타불을 부를 때면 나타난다는 ‘아미타어’ 이야기, 또한 힌두교 시바신이 선인을 구제하기 위해 천계에서 내려올 때마다, 멧돼지, 자라, 물고기, 인사자(人獅子), 난쟁이 등 10종 모습을 취한다는 이야기 등도 같은 맥락이다.

신비스럽고 경사스러운 현상을 상서(祥瑞)라고 한다. 상서가 나타날 때에는 주로 불가사의한 자연현상이나 상상적인 동물의 출현 등 평소에 겪지 못한 여러 가지 신비로운 현상을 동반한다. 백흥암 수미단의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문양들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기리고 옹호키 위해 나타나는 상서의 현상을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240호/ 6월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