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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불교이야기

부처님, 보리수 아래서 成道


세계 여러 종교 중 불교만큼 나무와 가까운 종교는 없을 것 같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성도에 이르신 것도 보리수 아래이셨고 최초의 절 ‘죽림정사(竹林精舍)’도 대나무 숲에 지어졌으며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장소도 ‘사라쌍수’ 아래였으니 불교에서 나무가 차지하는 상징성은 상당히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의 형상을 만들지 않았던 무불상 시대에 부처님을 표현했던 상징 중의 하나가 보리수였음은 이를 더욱 확연히 알게 해준다. 불교와 나무의 친밀함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더욱 깊어지는데 ‘00총림(叢林)’, ‘수계산림(山林)’ 등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절이 산속에 위치하면서 이러한 특징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절과 함께 사는 노거수(老巨樹)의 존재들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 속리산 법주사 입구의 정이품송뿐만 아니라 매년 3월 삼짓날 비구니스님들로부터 막걸리를 받아먹는 호사(?)를 누리는 운문사의 소나무에 이르기까지 천년 세월을 함께 해 온 거대한 나무들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신성함까지도 느끼게 된다.

이렇듯 나무에 대한 경외감과 신앙심을 표현한 대표적인 의식이 당산제(堂山祭)이다. 이 당산제로 대변되는 수목신앙의 뿌리는 멀리 환웅님이 이 땅에 내려오실 제 태백산 아래로 오신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정도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이 당산 신앙은 가족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소박한 신앙이기도 했지만 조선시대에는 수탈과 억압을 일삼는 양반과 탐관오리에 맞선 민초들의 구심체로, 일제 때는 저항의 마당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최초의 사찰 ‘죽림정사’도 대나무 숲에

‘총림’‘수계산림’ 등 불교용어에도 반영

이러한 당산신앙이 심각한 위기를 맞은 것은 정작 1960년대 이후의 새마을 운동과 개신교계의 미신타파운동에 의해서다. 이 때 대다수의 당산목들이 베어졌는데 이들에 의해 베어진 것은 단지 나무만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유지되어 왔던 역사전통과 마을 공동체, 그리고 고유의 정신세계도 함께 베어져 버렸다.

그 와중에서도 몇몇 절에서는 고유한 당산나무 전통을 유지해오고 있는데 공주 갑사의 괴목제와 부안 내소사의 당산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내소사의 당산나무는 지역민들이 할아버지 당산과 할머니 당산으로 부르는 두 그루의 당산나무가 절 마당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 특이함을 더해주고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 되면 인근 마을 사람들이 풍물을 치면서 당산제를 드리러 올라오면 절에서는 떡을 내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풍어를 축원해주며 함께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사람과 절이 하나 된 유구한 전통을 발견하는 기쁨과 함께 동네 입구와 뒷산에 늠름하게 버티고 앉아 마을의 안녕을 감당했어야 할 당산나무들이 조변석화(早變夕化)하는 사람들의 변덕에 쫓겨 이제는 절 집 마당에서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것 같은 씁쓸함도 지울 수 없다.

얼마 전 국립공원 오대산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500년 가까이 된 금강송이 말라 죽어서 이를 기리는 천도재를 지냈다고 한다. 오대산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역주민, 그리고 월정사 스님들이 금강송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사명대사가 왜적을 물리치려 승병을 일으킬 때부터 이곳 마을을 지켜 온 금강송이라고 하니 나무에 대한 천도재라는 특별함과 함께 새삼스레 당산나무가 지닌 의미를 되짚어 보고자 몇 자 적어 본다.

김 유 신

불교문화정보연구원 이사

[불교신문 2482호/ 12월6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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