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불교신도증 · 해인사 사진 발견 |
| 일제강점기에 사찰에서 발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교 신도증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강릉 현덕사 주지 현종스님은 불교신문을 통해 일제강점기 당시 인쇄된 신도증 1장과 해인사 대적광전 사진 1장을 공개했다. 현종스님은 “외세에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펴고자 노력했던 선대 스님들의 원력을 느낄 수 있는 자료”라면서 “근세불교 연구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증명서 곳곳 신행 덕목 강조 ‘눈길’ 4페이지 구성…앞면엔 ‘불교 상징’등 실려
첫 장에는 동그라미 안에 불교를 상징하는 ‘卍(만)’자 표시가 들어 있으며, 위에서 아래로 ‘信徒證(신도증)’이라고 한문으로 적혀있다. 신도증이란 글씨의 좌우로는 (신도증)발행 호수와 주소 氏名(씨명, 지금의 성명)을 적을 수 있게 해 놓았다. 또한 첫 장 하단에는 가로로 신도증 발급 사찰과 주지 스님의 법명이 적혀있다. <사진>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신도증 1면과 4면. 육바라밀과 불자로의 생활 등에 대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아래 신도증 2면과 3면에는 삼귀의, 찬불게, 사홍서원 등 신행활동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적혀 있다. 자료제공=강릉 현덕사 현종스님
신도증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네 번째 장이다. 이 페이지에는 ‘신조(信條)’와 ‘주의(注意)’라는 제목으로 특별히 강조한 내용이 게재돼 있다. 신조는 어떤 종교를 갖고 있을 때, ‘신앙의 조목 또는 교의(敎義)’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신도증 발급당시 스님과 불자들이 신행 활동을 하는데 어떤 덕목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는지 확인할 수 있다. 신도증에 기록된 신조는 ‘육바라밀(六波羅密)’이다. 육바라밀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보살의 여섯 가지 수행법으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를 나타낸다. 신도증에는 육바라밀의 줄인 말에 해당하는 ‘六度(육도)’라는 타이틀 아래, 윗부분에는 한문으로, 아랫부분에는 한글로 그 내용을 적어 놓았다. 한글로 적혀있는 부분을 신도증에 기록된 원문 그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요즘 표현으로 바꾼 것이다. “륙도(육도) 보시는 행할 일. 제이 게행(계행)을 가질 일. 제삼 인욕해 참을 일. 제사 노력 정진 할 일. 제오 선정을 닥을(닦을) 일. 제륙 지혜를 닥글(닦을) 일.” 신도증의 같은 면에는 주의 사항 5가지가 적혀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고, 괄호 안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요즘 표현으로 바꾼 것이다. “△설교일마다 내참하야(동참하여) 법문과 강연을 드르시요(들으시오) △신도는 서로 형제자매와 갓치(같이) 경애하시요. △신도는 오게(오계)를 가시고(갖고) 륙도(육도)를 닥가서(닦아서) 모범이 되시요. △보천하인을 권하야 불교를 밋게(믿게) 하시요. △차증서(이 증서)를 유실하거든 또 청구하시요.” 주의 사항 5가지 가운데 앞부분 4가지는 신행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안내하고 있다. 법회 때마다 동참하고, 신도끼리 화합하고, 오계를 수지하며, 육바라밀을 실천하고, 포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의 사항은 지금도 유효한 가르침이다. 주의 사항이 끝나는 부분에는 釋尊降生(석존강생) 二千九百 十 年月日(이천구백십년월일) 이라 표시되어 있는데, 十(십)자 앞뒤와 月(월)日(일) 사이에 여백을 두고 있다. 이는 해가 바뀌어도 연월일을 쓰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신도증은 1900년대 중반 이후에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조계종 포교부장 계성스님은 “오래전에 나온 신도증을 보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면서 “신도증에 게재되어 있는 가르침들은 지금의 불자들에게도 교훈이 되는 내용”이라고 반가움을 표시했다. 계성스님은 “예전에도 포교에 대한 열망이 싹트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라면서 “근대에 스님과 불자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일제강점기인 1925년경 사용된 엽서에 실려 있는 해인사 대적광전 모습. 해인사 대적광전 모습 ‘선명’
스탬프 ‘대정 14년’표기…1925년인 듯
강릉 현덕사 주지 현종스님은 일제강점기 당시 해인사 사진 1장도 입수하여 공개했다. 이 사진에는 해인사 대적광전과 앞마당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대적광전 앞마당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나무를 연결해 놓은 것인데, 어떤 용도로 사용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사진의 아래 부분에는 ‘海印寺本堂(해인사본당)’이라고 메모돼 있으며, 발행처는 ‘海印寺 紅流旅館(홍류여관)’으로 기록돼 있다. 엽서 형태의 이사진 앞면에 찍힌 스탬프에는 ‘14.11.25’로 표시돼 있는데, 이는 대정(大正) 14년을 나타낸 것으로 서기 1925년에 해당한다. 해인사 대적광전은 창건주인 순응스님과 이정스님이 서기 802년에 법당을 지은 자리에다가 1818년에 다시 건축한 것이다. 해인사 대적광전 아래 있는 석탑은 넓은 뜰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 ‘정중탑(庭中塔)’이라고도 불린다. 강릉=이성수 기자 [불교신문 2483호/ 12월1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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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공개된 불교 신도증은 가로 14.5㎝, 세로 11㎝로 양면 인쇄되어 있으며 절반으로 접을 수 있는 형태로 사실상 4페이지이다.
신도증에 기록된 발급 사찰은 ‘晋陽郡文山面寂光寺(진양군문산면적광사)’ ‘海印寺南文山布敎所(해인사남문산포교소)’라고 한문으로 쓰여 있다. 또 주지 스님에 대해서는 ‘住持兼布敎師(주지겸포교사) 香村寂光(향촌적광)’이라고 한문으로 기록돼 있다. 진양군은 지금의 진주시로 바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