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분황사석탑아쉬워라! 사라진 6층… |
원래 9층서 임진왜란 때 훼손 목탑과 전탑 특징 고루 갖춘 현존最古 신라석탑 국보30호 경주 분황사탑 전경. 국보 30호인 경주 분황사석탑은 현존하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탑이다. 언뜻 보면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 전탑(塼塔)처럼 보이는 이 탑은 돌 하나하나를 벽돌모양으로 깎아서 만든 석탑이다. 전탑의 모양을 모방해 조성했다고 해서 모전석탑(模塼石塔)이라고 불리는데 목탑과 전탑의 특징을 골고루 갖고 있다. 선덕여왕 3년(634) 분황사의 창건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분황사탑은 중국 전탑의 형태와 인도의 탑 재료를 본뜬 형식이다. 일향 한국미술사연구원 강우방 원장은 “분황사 탑이 건립된 선덕여왕대는 신라가 당나라와 본격적인 교류를 취했던 시기”라며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으로 544년에 조성된 산둥성 신통사사문탑의 형식이 신라 수도인 경주에 재현된 것”이라고 봤다. 벽돌을 구울만한 기술이 없었던 신라석공은 비교적 결이 고운 회흑색의 안산암을 벽돌모양으로 잘라 탑을 쌓아올렸을 것이다. 분황사탑은 현재 3층만 남아있지만, 기록에 의하면 원래 9층탑이었다고 한다. 〈동경잡기(東京雜記)〉를 보면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하여 허물어지고, 그 뒤 분황사의 한 스님이 개축하려다가 허물어뜨렸다. 지금의 모습을 띠게 된 것은 1915년으로 일본인에 의해 개축.보수되면서 부터다. 거대한 탑신에 비해 2층과 3층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모습을 갖게 된 것도 수차례 이어진 개축과 보수의 결과이기도 하다. 벽돌이 아닌 자연석을 쌓아 만든 기단에는 모퉁이마다 화강암으로 조각된 사자상이 한 마리씩 앉아있다. 북동쪽 끝에 다리 없이 앉아있던 돌사자는 최근 복원돼 원래 모습을 되찾은 것이고, 모두 네 마리의 사자가 탑을 지키고 서 있다. 하지만 분황사탑 사자는 사실 여섯 마리로 현재 두 마리는 경주박물관을 가야 볼 수 있다. 분황사탑은 1층 탑신의 동서남북 4면마다 석문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 감실을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문 좌우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상이 조각돼 있고, 석탑 감실에는 석조불상이 봉안돼 있다. 이것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국보 11호 백제미륵사지석탑의 형태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휘날릴듯 섬세하게 조각된 천의를 입고 당당하게 서있는 금강역사상은 특히 7세기 신라 조각양식을 살피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또 다른 특징 하나가 지붕이다. 분황사탑의 지붕은 아랫면과 윗면 모두 계단모양인데, 아랫부분은 내어쌓기로, 윗부분은 들여쌓기 방식으로 조성돼 있다. 이런 계단식 지붕은 목조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다. 3층 지붕돌만 윗면이 네 모서리에서 위쪽으로 둥글게 솟은 모양이며, 그 위에 화강암으로 만든 꽃장식이 놓여 있다. 1915년 일본인이 탑을 수리했을 당시, 2층 탑신 중앙에서 화강암으로 만든 사리함이 발견됐다. 당시 사리함 속에서는 동제가위나 원뿔형 조개껍데기, 금으로 만든 바늘, 고려시대 동전인 숭녕통보(崇寧通寶), 상평오수(常平五銖) 등 일반 사리함에서 발견되지 않는 많은 종류의 유물이 확인돼 화제가 되었다. 특히 고려시대의 동전은 이 탑이 고려중엽인 숙종이나 예종 때에 해체.수리됐음을 보여주는 사료다. 석탑에서 출토된 유물은 현재 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306호/ 3월3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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