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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대장경판과 판전


놀라워라, 8만장 한결같은 새김

눈물겹다, 800년 변함없는 보존

대장경판 8만1258매 국보 32호

부처님 가피로 외세 극복 기원

국보 52호 판전에 과학적 보관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사진〉을 순례한 사람은 한번쯤 판전의 창 사이로 손을 넣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판전을 만져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가까운 것 같아 막상 손을 넣으면, 안타깝게도 경판은 눈에 보이는 것처럼 쉽게 닿지 않는다. 직사광선을 피해 안쪽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옛 사람들의 지혜가 있어, 8만장을 웃도는 대장경판을 800년이 지난 지금도 볼 수 있다.

국보 52호인 장경판전은 모두 4동이다. 남쪽의 당우를 수다라전, 북쪽은 법보전이라 하며, 동서방향으로 지어진 당우를 동사간전, 서사간전이라고 부른다. 그곳에 국보 32호인 고려대장경판 8만1258매와 국보 206호인 고려각판 2275매가 보관돼 있다.

경판은 고려 고종 23(1236년)부터 16년에 걸쳐 조성된 것이다. 몽고군의 3차 침입을 겪은 고려는 부처님 가피로 외세의 침략을 이겨내길 기원하며 대장경 불사를 시작했다. 바닷물에 담궜다 말린 나무판에 경전을 새겨 옻칠을 하고 경판이 휘지 않도록 양쪽 끝에 나무를 덧댔다. 1251년에 완성된 경판은 강화도 대장경판당에 보관됐다. 하지만 이곳에 왜구가 자주 출몰하면서 서울의 지천사로 옮기게 된다. 지금의 해인사로 이전된 것이 조선 태조 때(1398)이다.

현재 팔만대장경은 초기 목판제작술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놀라운 것은 수천만자의 글자 새김이 한결같이 고르다는 것, 그리고 잘못 쓰거나 빠진 글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토록 뛰어난 경판을 수백년간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은 장경판전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이미 지정된 판전의 창건연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해인사 중수기〉에 따르면 조선 세조 3년(1457) 어명으로 판전 40여 칸을 중창했고, 성종 19년(1488)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30칸의 당우를 중건한 뒤 보안당이라 했다고 한다. 또 광해군 14년(1622) 에 수다라전을, 인조 2년(1624)에는 법보전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판전은 현존하는 해인사 당우 중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판전이 오랜 시간 팔만대장경을 손상 없이 보관해올 수 있었던 까닭은 그곳에 과학적 보존방식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선조들은 통풍과 방습, 적정한 실내온도 유지를 위해 절묘한 방법을 고안해냈다. 우선 수다라장의 창을 살펴보면, 앞벽 남향창은 아랫창이 위창의 4배고, 뒷벽의 북향창은 윗창이 아래창보다 1.5배 정도 크다. 법보전도 다르지 않은데, 크기가 서로 다른 창이 공기의 순환을 도와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준다.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숯과 소금, 횟가루, 모래, 찰흙 등을 섞은 흙으로 지반을 다졌다. 이런 과정이 있어 습기나 해충으로부터 경판의 변형을 막을 수 있었다.

경판과 판전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된다. 해인사의 스님들은 법보종찰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봄가을로 소방훈련을 한다. 화재로부터 고려대장경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해인사는 2004년부터 판전 출입도 제한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310호/ 3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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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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