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갑사 석조여래좌상 |
3m 바위에 직접 새긴 마애불 형태 같은 돌에 광배-부처님 함께 조성 전남 영암 월출산에 위치한 도갑사는 신라시대 때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신라말 헌강왕 6년(880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도갑사는 서남권을 대표하는 대가람으로 자리잡았다. 조선 세조 2년(1456) 영암 출신의 수미(守眉)왕사가 국가의 지원을 받아 중창불사를 하면서부터다. 당시 산내 암자가 12곳에 달했고 966칸의 당우에는 800여명의 스님이 머물며 수행했다고 전해진다. 오랜 역사만큼 도갑사에는 많은 성보들이 있다. 이 가운데 놓쳐서는 안 될 유물이 바로 보물 89호 석조여래좌상이다. 대웅전을 지나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보면 미륵전이 나타나는데, 그곳에 이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돼 있다. 높이 3m의 이 불상은 같은 돌에 광배와 부처님을 함께 조성해 놓은 것으로, 마치 바위에 직접 불상을 새긴 마애불과 같은 형태다. 통일신라 불상 양식 계승하면서도 투박하고 생략강한 고려특징 뚜렷 먼저 불두를 보면, 머리카락은 소라처럼 오른쪽으로 감아 돌아가는 형태인 나발(螺髮)이고,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처럼 머리를 묶은 육계가 넓게 솟아 있다. 얼굴은 타원형이며 전체적으로 친근한 표정을 띤다. 눈 두덩이와 입술은 도톰하게 표현됐고, 코는 비교적 넓적하다. 나발 바로 아래에서 시작된 귀는 눈부터 턱까지 일자로 내려온다. 목은 긴 편인데, 목주름을 표현한 삼도(三道)가 뚜렷하게 보인다. 법의(法衣)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에 가사를 입은 우견편단(右肩偏袒) 형태다. 어깨위의 법의자락은 한 겹이 겹쳐 어깨 뒤로 넘어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옷 주름은 섬세하지 않고, 몇 가닥이 굵게 표현돼 투박한 느낌이다. 이는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양식 퇴화현상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결가부좌를 한 부처님은 오른쪽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고 왼쪽 손은 다리 위에 올린 항마촉지인 자세를 하고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반면 법의로 가려진 왼손은 매끄럽지 못하게 표현됐다. 양쪽 무릎 또한 각이 져 있으며, 상체와의 비율이 맞지 않아 어색하다. 또 작은 배(舟) 모양으로 부처님을 감싸고 있는 광배를 살펴보면, 상단에는 3분의 부처님이 앉아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 있으며, 불두 주변에는 연꽃문양이 조각됐다. 또 광배 전반에는 당초문과 불꽃무늬가 보인다. 전체적으로 살펴봤을 때,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계승하면서 한편으로는 투박하고 생략이 강한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는 고려 중기의 작품이다. 이와 유사한 양식의 유물로는 담양 영천리마애불을 꼽을 수 있다. 도갑사 석조여래좌상의 조성연대는 11세기로 추정된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국장생의 연대가 1090년인 것으로 미루어 대대적인 중창불사에 맞춰 함께 조성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석조여래좌상 외에도 조선불교를 대표하는 전통사찰답게 도갑사에는 많은 성보들이 남아있다. 국보 50호인 해탈문을 비롯해 보물 1134호 동자상, 보물 1395호 도선수미비 등 국가지정문화재와 전남도유형문화재 제152호 수미왕사비, 176호 도선국사진영, 177호 수미왕사진영 등 지방문화재들을 만나볼 수 있다. 어현경 기자 [불교신문 2335호/ 6월16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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