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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관룡사 약사전

경남 창녕 관룡사는 신라 내물왕 39년(394)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신라 8대 사찰 중 하나였던 이곳은 원효스님이 중국스님 1000여명에게 〈화엄경〉을 설했던 곳으로도 전해진다. 현전하는 〈관룡사 사적기〉에 따르면 경덕왕 7년(748) 추담스님이 중건하고 또 조선 태종 1년(1401)에 대웅전을 중건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대부분 당우가 화재로 소실되고 약사전만 남았으며, 광해군 9년(1617)에 재건됐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이여…

특히 보물 146호인 관룡사 약사전은 전란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뎌온 조선 전기의 건축문화 유산이다.앞면 1칸, 옆면 1칸으로 규모는 작지만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의 의미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약사전 지붕은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목조건축의 가장 기본 양식이지만, 몸체에 비해 지붕을 크게 지은 것이 특징이다. 처마 밑에서 올려보면 지붕을 받치고 있는 도리를 볼 수 있는데, 무려 일곱 개나 되는 7량임을 확인할 수 있다.

좌우로 길게 뻗어 건물을 덮을 정도로 큰 지붕이지만, 균형이 잘 이뤄져 건물의 안정감을 준다. 이처럼 약사전은 작은 규모에도 짜임새가 훌륭한데다,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관룡사 약사전

몸체 비해 큰 지붕…보물 146호

조선전기 건축사 연구 중요자료

내부엔 보물 519호 석조여래좌상

◀ 관룡사 석조여래좌상.

이곳에는 보물 519호인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고려시대인 13~14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불상은 관룡사 서쪽 계곡에 있는 보물 295호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을 본뜬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은 채색됐는데, 머리와 눈썹, 입술, 수염 등이 뚜렷하게 표현돼 있다. 머리에는 상투모양의 육계가 있고,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는다. 법의는 양 쪽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이며, 얇은 선으로 옷 주름을 고르게 표현했다. 편편한 가슴 위에 드러난 내의(內衣)는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양식을 쫓은 대표적인 예이다.

약사전은 본래 약사여래불을 모신 당우. 그러나 관룡사 약사전 부처님은 조금 독특한 수인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왼발 위에 올려놓고, 왼손은 또 오른발 위에 놓은 모습인데, 왼손에는 약함이 놓여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약사전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이 바로 벽화다. 대웅전에서 약사전으로 가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뒷면 벽화다. 외벽에는 산수화가 4폭으로 나뉘어서 그려져 있는데, 풍화작용으로 훼손되는 바람에 희미하게나마 모습이 남아 있다.

또 약사전 내부도 산수화로 장엄했는데, 비교적 손상이 적어 이를 통해 외벽화의 모습까지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약사전 앞에는 3층 석탑 한 기가 남아있다. 경남유형문화재 11호인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규모도 작고, 전체적으로 표현이 간소화된 이 탑은 고려 전기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339호/ 6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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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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