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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

문경 희양산 봉암사는 문턱 높은 사찰로 유명하다. 조계종 특별수도원으로 운수납자들의 근본수행도량인 이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스님 뿐. 관광객은 물론 불자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사찰이다. 단, 1년 365일 중 딱 하루인 부처님오신날에만 출입이 가능한데, 이날만큼은 모든 사람들이 마음 놓고 봉암사를 순례할 수 있다. 이곳은 또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왜색불교를 벗어던지고 초기 부처님 가르침으로의 회귀를 주창했던 ‘봉암사 결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王師도 거절한 무욕을 기려…

사실 ‘태풍의 눈’으로 한국불교의 선풍을 진작시켜왔던 봉암사의 맥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통일신라시대 때에서나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봉암사는 지증스님(824∼882)이 창건한 사찰이다. 헌강왕 7년(881)에 왕사로 임명된 스님은 그러나 이를 사양하고 봉암사로 돌아와, 이듬해인 882년에 입적했다. 왕은 스님에게 ‘지증’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 이름을 ‘적조’라고 했다. 오늘날 대웅전 왼쪽에는 남아 있는 탑이 바로 지증스님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부도로, 보물 137호인 지증대사적조탑이다.

사진설명 : 보물 137호 지증대사적조탑.

883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적조탑은 특히 조각 표현이 섬세하고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먼저 기단부를 살펴보면, 상중하대로 나눠지는데 상대에는 둥근 기둥을 세우고 난간을 둘렀다. 중대석에는 비파, 피리, 북 등을 연주하는 주악인물상과 연꽃으로 장식된 사리함, 공양천인상이 조각돼 있다.

이외에도 중대받침석에는 각 모서리마다 구름기둥이, 면마다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한 가릉빈가가 새겨있으며, 하대에는 안상(眼象) 안에 사자를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통일신라 때 헌강왕 칙명으로 조성

적조탑 섬세하고 미려한 조각 정평

탑비는 최치원 글에 혜강스님 글씨

8각의 탑신에는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겨놓았고, 앞뒷면에는 각각 문의 모습을 표현, 문고리와 자물쇠를 조각했다. 양 옆으로는 사천왕상과 보살상 2위가 새겨져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지붕돌 역시 8각이며, 겹처마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일부가 손상돼 있다. 처마 끝은 살짝 들려있고, 낙수면의 끝에는 꽃이 조각돼 있다.

적조탑 옆에는 또 스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보물 138호인 적조탑비가 함께 조성돼 있다. 보물 138호로 지정된 이 탑비는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문장가 최치원(崔致遠, 857~?)이 글을 짓고, 당대의 명필인 혜강스님이 글씨를 썼다.

사진설명 : 보물 138호 지증대사적조탑비.사진제공 문화재청

비 받침의 문양도 독특하다. 머리는 용이고 몸은 거북모양을 하고 있다. 비 측면에는 공양천인상이, 머릿돌에는 연꽃무늬와 여덟마리의 용이 조각돼 있다. 통일신라 경애왕 원년(924)에 세워진 이 비는 조각과 비문의 글씨가 뛰어나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345호/ 7월21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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