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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법성포와 마라난타사

“저 넘실대는 물결따라 백제불교 전해지고…”

사계절 중 가장 빨리 지나는 계절이 봄이라지만, 그래도 5월의 한낮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것은 좀 너무했다. 봄이 봄 같지 않은 거야 이미 한 두 해 전의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속절없이 봄이 가버리는 게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이 아무리 투정을 부리고 변덕을 떨어도 인간이란 존재는 그에 순응할 수밖에 더 있는가. 5월 중순, 그래도 남녘 바닷가로 향하는 탐방 길은 그다지 덥지 않았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와 모처럼 늦봄다운 기분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접어들면서부터 맘이 그다지 편하지는 못했다.

‘法聖浦’라는 지명에 마라난타 해로전래설 담겨

포구지척 사찰에 모신 인도풍 아미타불 ‘눈길’

<사진설명> 마라난타사에서 바라본 법성포 포구. 이 포구를 통해 4세기에 중국으로부터 마라난타 존자가 상륙하여 백제에 처음 불교를 전했다.사진 제공=마라난타사

AI(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해 길 곳곳에서 SF영화의 장면들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만 빠끔히 내놓은 채 우주복처럼 머리꼭대기부터 발끝까지 온 몸을 가린 하얀 방역복 차림의 요원들이 도로 요소요소에 자리집고 있다가 지나다니는 차들에게 호스로 허연 분말을 연방 뿌려댔다.

‘살(殺)처분’이라는 섬뜩하기 그지없는 용어가 방송마다 흘러나오고 신문지상마다 커다란 활자로 박혀 있어 더욱 살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이런 길들을 지나노라니 여간 심란하지 게 아니다. 백제에 불교가 처음 전파된 지역인 전남 영광 법성포와 불갑사로 가는 길, 내가 탄 차는 도중 여남은 번이나 허연 분말가루를 뒤집어써야 했다(15분 달리는 동안에 무려 방역초소 세 곳을 지났다). 기왕 더러운 먼저 털어내는 일, 마음속 티끌까지 깨끗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오늘 가는 영광의 법성포와 불갑사는 이른바 백제불교의 초전지(初傳地)로 불린다. 백제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된 곳이라는 뜻이다.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 것과 관련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의문이 가장 핵심적이다. 먼저 백제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언제일까 하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그 경로가 과연 어떠하였을까? 하는 문제다. 앞의 것은 백제에 불교가 공인된 것이 384년인데 과연 공인 이전에 불교가 비공식적으로 신앙되었겠는가 하는 것인데, 이 부분은 정황상 당연히 불교가 학문적으로든 종교로든 일부 백제 사람들에게는 알려져 있었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내가 흥미 있어 하는 문제는 바로 두 번째로서, 한 마디로 말해서 백제에 처음 불교를 전래한 사람(혹은 사람들)이 걸어서 왔을까 아니면 배를 타고 왔을까 하는 점이다.

그 전에,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 상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알려져 있다시피, 제14대 임금 침류왕이 즉위한 해인 384년 9월에 중국 동진(東晉)에서 온 마라난타가 불교를 전했고, 이듬해 지금의 경기도 광주인 한산(漢山)땅에 절을 짓고 승려 10명을 출가시킨 것이 백제불교의 처음이라고 한다.

<삼국사기>라는 정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마라난타라는 인물이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동진에서 왔다고는 해도 그는 중국인이 아니라 건타라 출신으로 일찍이 포교를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었던 호승(胡僧), 곧 인도 사람이었다. <해동고승전>에서 나오는 기록이다. 그런데 그가 어느 경로로 해서 백제로 왔는지 자세히 나와 있지가 않다. 북쪽으로 고구려가 자리하고 있으므로, 고구려를 경유해서 왔는지 아니면 뱃길로 직접 건너왔는지 분명하지가 않다.

마라난타의 해로 입국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가 바로 법성포로 해서 백제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고 말한다. 법성포는 한자로 ‘法聖浦’인데, 글자 그대로 ‘불법(佛法)을 전한 성인(聖人)이 들어온 포구(浦口)’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법성포가 백제불교의 초전지라는 주장이다. 또 법성포가 자리한 영광군의 ‘靈光’도 ‘부처님의 신령한 빛이 들어온 곳’이라는 뜻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영광과 법성포는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법성포가 4세기 후반 중국과의 항로가 열려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니, 마라난타의 해로 입국설은 충분한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15번 국도로 해서 고창으로 향했다. 이 길이 영광으로 가는 가장 빠른 코스다. 고창읍을 지나 무장면에서 796번 국도를 타면 영광까지는 논스톱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창 고인돌도 볼 겸 고창읍내에서 점심도 먹으며 쉬어가면 좋으련만 빠듯한 일정이라 목적지에 먼저 가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달렸다.

‘영광굴비’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듯이 영광은 바다가 상징이다. 하지만 제법 커다란 항구를 머릿속에 그렸던 사람이라면 막상 영광에 들어서면 깜짝 놀라기 일쑤다. 항구라고는 하지만 부산이나 인천같이 일망무제의 수평선을 보여주는 게 그런 항구가 아니라, 항만이 들쭉날쭉 하고 그나마 길게 이어지지도 않고 고개 한 번 돌리면 이쪽 끝과 저쪽 끝이 금세 눈에 들어올 정도로 좁다면 좁은 곳이다. 하지만 이게 바로 영광 포구의 진면목이다. 무턱대고 크고 넓고 길어야만 좋은 건 아니니까, 영광은 이렇게 아담하면서도 토속적 맛이 그야말로 갯냄새 물씬 풍기듯 뿜어져 나오는 곳이라서 더욱 정겹게 느껴지는 것이다.

왁자한 포구의 활기 넘치는 소리들과 검푸른 바다빛깔이 너무 잘 어울리면서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 쌓인 여독이 확 풀리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코끝에 착 달라붙는 짠 냄새는 20여 년 전 ‘이까배’(오징어잡이배)를 타고 동해 앞바다를 헤매던 얼치기 어부 시절 싫도록 맡아봤던, 퍽이나 익숙했던 그 냄새 아니던가. 영광 포구는 항구기는 하지만 어쩐지 뱃사람으로보다는 관광을 나온 사람들에게 더 어울려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들어보니 백수읍 백암리에서 법성포까지 이어지는 77번 국도로 달리는 18㎞ 가량의 백수해안 도로는 탁 트인 바다와 해안을 따라 가는 환상적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 옛날 서해바다 멀리서 마라난타가 타고 온 돛배가 점처럼 보이더니 점점 가까이 다가와 이윽고 포구에 내리는 일행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중국까지 뱃길로 반나절, 백제 때에도 거기서 예까지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게다. 그 만큼 지리적으로 가깝고 해류도 알맞다. 거리가 멀고 오는 도중 여기저기 귀찮은 일도 훨씬 많은 육로보다야 이렇게 바닷길 타고 오는 게 훨씬 그럴싸한 것 같다.

<사진설명> 마라난타가 법성포에 내려 백제에 첫발을 내딛는 모습의 재현.사진 제공=마라난타사

법성포 주변에 옹기종기 들어선 주점 아무 곳에나 들어가 바다를 향해 앉아서 종일토록 바다나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것을 겨우 억누르고, 불갑사에 가기에 앞서서 먼저 마라난타사로 발길을 옮겼다. 마라난타사는 마라난타 존자를 기리기 위해 지은 절이다. 1996년 영광군에서 착수한 것인데, 말하자면 요즘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붐처럼 일고 있는 일종의 성역화 사업인 셈이다. 이런 사업은 지역의 문화발전과 역사인물 선양이라는 면에서 장려할 만하고, 특히 불교문화계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마라난타사는 법성포에서 거리가 지척이라 금세 경내에 들어섰다.

지대가 약간 높은 곳에 자리하므로 계단으로 올라가보니 경내 어디에서든 법성포를 바로 바라다 볼 수 있어 장관이었다. 경내엔 만불전, 탑원, 부용루, 전시관 등이 들어서 있고 한가운데에 아미타 대불이 우뚝 솟아 있다. 아미타대불은 인도불상의 모습으로 조각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 자못 우리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경내 규모에 비해서 좀 큰 게 아닐까 싶기는 하지만, 그만큼 영광과 불갑사, 그리고 법성포에서 차지하는 마라난타 존자의 위치가 지대한 것은 느끼겠다.

법성포는 사실 마라난타 존자 도래 이전의 이름은 아니다. 옛날에는 ‘아무포’라고 불렀는데, 이를 불교적으로 해석해서 마라난타가 온 뒤 아미타신앙이 퍼졌으로므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고려 때는 연꽃이 활짝 핀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부용포’라고 했다가, 고려 중후기에 들어와서 마라난타를 기리기 위해 법성포라고 했다.

아무포든, 부용포든, 혹은 법성포든 이 포구가 불교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은 이런 이름의 변천으로도 넉넉히 짐작된다. 이제 법성포와 마라난타사는 다 보았다. 이 두 곳은 기실 불갑사를 탐방하기 위한 전초전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불갑사 탐방에 나설 시간이다.

신대현 / 논설위원ㆍ사찰문화연구원

[불교신문 2429호/ 5월28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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