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357호 정도사지오층석탑은 높이 4.63m로 신라 석탑의 양식을 이은 고려 초의 것이다. 2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세운 전형적인 탑의 모양을 하고 있다. 2층 기단 중 아래층 각 면에는 세 개의 안상(眼象, 인도에서 코끼리 눈의 형상을 본떠 만든 문양)이 조각됐는데, 바닥의 선이 꽃모양처럼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 고려시대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위층에는 기단마다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그 중 한 면에는 탑의 이름과 함께 국가의 안녕을 빌기 위해 태평11년에 조성됐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는 고려 현종22년(1031)에 해당되는 시기다.
몸돌은 2층으로 올라갈수록 급격하게 줄어드는데, 1층 몸돌 정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이 조각돼 있다. 그러나 탑의 상태는 온전하지 못하다. 5층의 지붕돌은 사라졌고, 상륜부도 탑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인 노반(露盤)만 남아 있다.
일제 경부선 철도건설위해 탑 이전
경복궁 이관 됐다 원위치 인근으로
이전 과정에서 탑을 조성한 시기와 시주자 등을 기록한 형지기(形止記)와 녹유사리병(綠釉舍利甁) 및 동합(銅盒)이 함께 발견됐다.
형지기에는 탑의 이름과 함께 1019년부터 1031년까지 상주계(尙州界) 경산부(京山府)에 속했던 약목군(若木郡)의 향리와 백성들의 발원에 의해 건립됐다는 내용이 수록돼 있다. 형지기는 현재 탑과 함께 박물관 미술실에 전시돼 있는데, 전시된 유물은 복제품이다.
원래 경북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에 있었던 탑은 1924년 경복궁으로 이전됐다가 1994년 국립대구박물관 개관되면서 다시 대구로 옮겨졌다. 현재 대구박물관 앞마당에 세워져 있다.
<사진> 국립대구박물관에 있는 정도사지오층석탑(사진 위). 탑에서 발견된 형지기.
탑이 경복궁으로 이관된 것은 1924년이지만, 정도사지를 떠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당시 일본은 경부선 철도건설을 추진 중이었는데, 정도사터는 경부선 약목역 위치였다. 즉 철도 준설을 위해 탑을 이전했다는 것이다. 경부선 전구간 개통이 1905년인 것으로 볼 때, 탑 이전은 이보다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대와 1920년대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정도사터를 떠난 탑은 경성으로 운반돼 철도국 관리의 관저에 세워졌고, 이후 1924년 총독부박물관이 개관하면서 경복궁으로 이관됐다. 그 사이 형지기와 녹유사리병 등 출토유물들도 일본인 개인에게 소장돼 오다가 1945년 이후 박물관으로 돌아오게 됐다.
<석조문화재 그 수난의 역사>에서는 전도사지오층석탑의 이전사에 대해 “철도공사를 위해 탑을 이건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정도사와 철도는 적어도 200m이상 떨어져 있었고, 30m이내에 일본 신사가 설치됐었다는 노인들의 말로 보아 부득이한 것이 아닌 계획적인 철거임을 알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 “철도준설에 저항하는 조선인을 처형할 수 있었던 때 석탑이전을 저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애꿎은 탑은 단지 일본인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제자리를 뺏겼고, 다시 돌아왔다고는 하나 인근으로 옮겨져 여전히 부초처럼 떠돌아다니고 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510호/ 3월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