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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 같은 마애불, 중생 아픔 달래주니…
대웅전보다 약간 높은 천불전 옆에서 해를 기다렸다. 구름 사이로 일출을 볼수 있었지만 아쉽게 운해가 생기지 않았다

바위 뚫고 나와 

구름의 바다 위

걸어갈 듯… 

아침 햇살 퍼지듯 

부처님의 자비가 

새벽 하늘 가득 

지리산 천왕봉에서 운해를 뚫고 올라오는 붉은 해의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다. 자연이 선사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는 단연코 일출이다. 

짙은 어둠에서 점차 파란색으로 변하는 하늘, 기다림에 지칠 때 쯤 불쑥 올라오는 강렬한 붉은 기운. 

한 번에 기대하는 모습을 바라는 것은 조금 무리였을까. 지난 7일 일출 명소로 유명한 옥천 용암사를 찾았다. 일교차가 크고 습도가 높은 요즘이 용암사에서 아름다운 운해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적기이다.  

용암사 대웅전과 천불전. 

새벽어둠을 뚫고 부지런히 달려 여명이 밝아오기 전에 용암사에 닿았다. ‘산 아래 마을에 안개가 끼여 있어야 하는데….’ 오르막을 올라 용암사로 향했다. 몇 해 전 찾았을 때 모습과는 달라져 있었다. 공양간이 새로 단장됐고 지금은 요사채 불사 중이다. 조금씩 날이 밝아오는 느낌이 있어 서둘러 대웅전을 향하는 계단을 오른다. 천불전 옆에서 자리를 잡고 일출을 기다린다. 맑은 하늘은 점점 붉게 달아오르는데 좀처럼 운해가 생기지 않는다. 양떼구름 속으로 붉은 기운이 퍼져나가더니 붉은 해가 떠오른다. 몇몇 작가들은 이미 발길을 돌리고 있다. 아쉽긴 하지만 운해 없는 일출사진을 담는다. ‘몇 해 전에 이곳에 왔을 때도 운해를 보지 못했는데….’ 일출 같은 자연모습을 한두 번 방문해서 생각했던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아쉬운 일출을 뒤로하고 천불전 옆으로 난 대나무 숲길을 지나 계단을 오른다. 천불전 바로 뒤쪽으로 거대한 암반이 솟아올라 있다. 용암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그 곳에서 보는 일출이 가장 유명하다. 운해가 넓게 펼쳐진 일출을 맞이하고 있는 신비로운 바위에서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은 부처님을 발견했다. 그 바위 속 부처님을 조심스레 돌을 깨어 찾아냈다. 

충북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마애불. 가사 쪽에 붉은 기운이 남아있는데 바위에 특유의 색깔 같기도 하지만 예전에 채색했던 부분이 남아 있는 것이다. 

충북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마애불이 붉은 아침햇살을 받고 따뜻한 기운을 보인다. 인사를 올리니 자비로운 미소를 맞아준다. 중생의 아픔을 보듬어 주기 위해 불쑥 바위에서 한 걸음 내딛어 나올 듯하다. ‘운해가 깔리는 아침이었다면 연화대좌를 타고 구름 위에 나투는 모습을 상상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용암사 마애불은 높이는 3m에 달하며 연화대좌를 새기고 그 위에 두 발을 양쪽으로 벌린 채 서 있어 안정감이 느껴진다. 머리는 소발이며 두툼한 육계가 솟았다. 마애불의 오른손은 가슴께로 올리고 있다. 시무외인이란 수인으로 “모든 중생에게 두려움을 없애주고 평정을 주는 힘을 가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왼손을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내보이는 자세인 여원인은 “중생의 어떠한 소원이라도 들어주는 자비를 베푼다”는 의미이다. 정성으로 기도를 하면 소원을 들어줄까 생각하며 잠시 손을 모아 눈을 감고 작은 욕심을 부탁해 본다. 

보물 1338호 용암사 쌍삼층석탑. 산천비보사상으로 세워진 탑 중에 유일한 쌍탑이다.

용암사는 진흥왕 13년인 522년 속리산 법주사를 창건한 의신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법주사보다도 창건이 1년 빠르다.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마애불을 참배하고 대웅전으로 향한다. 용암사 대웅전에는 효종 2년인 1651년에 조성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1880년 복장유물로 경북 문경 오정사에서 만들어진 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90cm 크기의 아미타불은 조성시기가 정확히 기록돼 있어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옥천사에서 마애불 못지않게 유명한 성보가 쌍삼층석탑이다. 일반적인 가람배치와는 달리 대웅전 앞이 아닌 대웅전 좌측 언덕을 이루는 거대한 바위 위에 삼층석탑 두 기가 서있다. 보물 1338호인 용암사 쌍삼층석탑은 고려시대 성행했던 산천의 쇠퇴한 기운을 복돋아 준다는 산천비보사상(山川裨補思想)을 바탕으로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산천비보사상으로 세워진 석탑들은 대부분 단탑(單塔)이고 높이가 2~3m 높이인데 이 탑은 유일한 쌍탑(雙塔)이고 동탑은 높이가 4.3m, 서탑은 4.1m이다. 거의 비슷하게 생겼지만 상륜부가 조금씩 다르다. 쌍탑은 용암사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장소에 서 있으나 지금은 불사 중인 요사채를 덮고 있는 파란색의 지붕이 보인다. 

마애불로 올라가는 대나무 숲길.
 

부처님 자비가 퍼지듯 붉은 기운이 가득했던 화려한 새벽시간이 끝났다. ‘다음에 오면 운해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바람을 영험 있는 마애부처님이 들어 주실까.’ 멀리서 마애부처님께 다시 인사를 하고 산사를 내려간다. 

[불교신문3244호/2016년10월29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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