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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본래부터 제자리에 있는데…
주왕산의 하이라이트인 주방계곡 협곡구간. 산 입구에서 평탄한 길로 30여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 용암이 식어 만들어진 화성암 바위위를 옥빛색깔 물이 흐르고 있다.

2003년에 개봉했던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영화 스틸사진을 보고 눈이 크게 떠졌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듯 아름다운 모습이였다. ‘한번 가봐야지’ 생각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

경상북도 청송에 있는 주왕산 국립공원을 지난 17일 찾았다. 먼저 영화 촬영지인 주산지(注山池)로 향했다.
주산지 입구 주차장에서 800m 걸어 들어가면 주산지에 닿는다. “청송사과 맛보고 가이소.” 입구 노점에서 할머니가 잘게 썰어놓은 사과를 내민다. 머뭇거리는데 “안 사도 됩니더” 라는 말에 한 조각 입에 베어 문다. 새콤하면 달달하다. 청송은 해발고도 250m이상, 연평균 일교차가 12도로 사과 재배에 최적의 자연조건을 가졌다고 한다. 15분 남짓 약간의 오르막을 걸으니 주산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와아~” 감탄과 동시에 탄식이 나온다.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촬영지였던 주산지.

늦었다. 새벽안개 담기엔 해가 너무 높이 떠 있고 단풍 잎도 이미 많이 떨어졌다. 또한 영화 속의 모습은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도 지났다.

길이 200m, 너비 100m, 수심 8m의 산중 호수는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명소로 사진찍는 분들에겐 매우 유명한 곳이다. 주산지는 하류지역 가뭄을 막기 위해 조선 경종 원년인 1720년 만들어졌다. 다른 곳과 다른 주산지의 매력은 물에 잠긴 채 자생하고 있는 왕버들(왕버드나무) 고목들이다. 잔잔한 호수에 반영된 나무는 마치 데칼코마니 같은 신비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호수에 잠겨있는 왕버들은 노화와 열악한 서식환경으로 인해 많이 사라져 가고 있다. 다행히 2014년 호수 안으로 이식한 4그루의 왕버들이 상태가 양호하다고 하니 언젠가 예전 같이 건강한 모습의 왕버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영화 속 ‘부유하는 암자’는 이제는 호수에 남아 있지 않다. 자연보호를 이유로 철거된 암자는 호수 위를 떠다니듯 먼 길을 떠나 지금은 강원도 평창에 있는 한 리조트에 있다.

대전사 보광전과 기암단애 모습.

호수를 나와 주왕산 들머리에 있는 대전사로 향했다. 주차 후 대전사로 향하면서 멀리서 보였던 기암단애가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손오공을 막는 부처님 손바닥처럼 거대한 바위가 방문객을 압도한다. 제10교구 은해사 말사인 대전사 보광전 앞에 서면 기암단애의 신비로운 모습을 제일 잘 감상할 수 있다. 첫 방문이지만 사진에서 너무 많이 봐서 낯설지가 않다. 대전사 앞에는 삼층석탑이 한 기 서 있다.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부재만으로 탑을 복원한 것으로 몸의 비례가 잘 맞진 않지만 박물관 같은 곳에서 부재로 흩어져 있는 것보단 좋게 느껴진다.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중국 당나라 당시 반역을 꾀했던 주왕과 그의 아들 대전도군이 피신했을 때 창건된 사찰이라고도 한다. 절터 크기로 보아 창건 당시 웅장했지만 고려 중기에 화재 등으로 많이 소실되어 조선시대에는 사격이 많이 작아졌다. 대전사를 참배하고 본격적인 주왕산 산행을 한다. 주봉마루길을 따라 주왕산 주봉을 올라 칼등고개 갈림길에서 후리메기 삼거리 용연폭포를 들르고 주왕산의 하이라이트인 주방계곡을 따라 다시 대전사로 내려가는 약 10km 코스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주왕산 주봉 등산 중에 바라보이는 병풍바위(왼쪽)과 급수대.

주봉으로 향하는 길, 설악산·월출산과 함께 삼대 암산(巖山)으로 불리는 주왕산 답게 혈암, 장군봉, 연화봉, 기암, 병풍바위 같은 커다란 바위들의 아름다운 비경을 선사한다.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정상으로 향한다.

726m로 그리 높진 않은 주봉을 지나면 작은 계곡과 만나는 후리메기 삼거리까진 가파르게 하산하게 된다. 작은 계곡은 떨어진 낙엽에 가려져 실줄 같은 물줄기만 간간히 햇살에 반짝인다. 후리메기 입구부터 용암과 물이 만들어 놓은 자연의 위대한 작품인 주방계곡을 만난다. 이 계곡은 폭포가 유명한데 용추(龍湫)폭포(제1폭포), 절구폭포(제2폭포), 용연(龍淵)폭포(제3폭포)가 가문 날씨에도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다. 주봉 쪽에서 보았던 거대한 바위산 사이로 작은 길이 이어진다. 커다란 바위가 둘러싼 웅장한 협곡이 나타난다.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기묘한 형상의 바위골을 타고 옥빛 계곡 물이 세차게 흐른다. 조선팔경 중 6위에 들었던 명성은 이 계곡에서 나온 듯 하다. 산 전체가 돌로 된 병풍 같아 주왕산의 옛 이름은 석병산(石屛山)이였다. 고려 말 이곳을 찾아 온 나옹선사는 ‘훗날 복되려면 주왕산으로 불러야 한다’ 해서 주왕산으로 이름 지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어쩌면 나옹선사는 가을이 유명한 이곳에서 ‘반청홍’ 이란 선시를 남겼을 지도 모르겠다.

주방계곡 협곡에 있는 용추폭포

半靑紅(반청홍)

金風一陣掃庭中(금풍일진소정중)
萬里無雲露碧空(만리무운노벽공)
爽氣微濃人自快(상기미농인자쾌)
眸光漸淡上連通(모광점담상연통)
明明寶月分雜盡(명명보월분잡진)
歷歷珍山數莫窮(력력진산수막궁)
法法本來安本位(법법본래안본위)
滿軒秋色半靑紅(만헌추색반청홍)


가을 바람 한 떼가 뜰 안을 쓸어가고/ 만리에 구름 없이 푸른 하늘 드러났네/ 상쾌한 기운 무르녹아 사람들 기뻐하고/ 눈빛은 맑아져 기러기 연달아 지나가네/ 밝은 저 보배의 달 가늠하기 어렵고/ 굽이치는 산맥은 끝없이 뻗어갔네/ 모든 것은 본래부터 제자리에 있는데/ 처마 가득 가을빛, 반은 붉고 반 푸르네 -나옹혜근 선사


늦게 찾아와 보지 못했던 새벽, 가을, 옛 모습의 아쉬움이 사라진다. ‘모든 것은 본래부터 제자리에 있는데… 모든 것은 본래부터 제자리에 있는데…’를 읊조리며 산을 내려간다.

[불교신문3252호/2016년11월26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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