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22025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⑦ 신안 도초도

 

호수같이 잔잔한 바닷물이 조용한 바람에 밀려와 고운 모래톱을 적신다. 큰 산 뒤로 해가 떠오르고 바다와 모래알이 빛나기 시작하자 안개가 몰려와 온 세상을 덮는다. 혹시 여기가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한다는 남쪽 바다 위에 산 ‘보타낙가산’이 아닐까.

 

유인도 91개, 무인도 789개로 이루어져 섬들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신안. 그 섬들 중 한 곳인 도초도(都草島)를 찾아가는 길.

“오라이랑께~” 차 후진을 봐주는 사람의 사투리가 정겹다. 지난 3월31일 오전 목포 북항의 낯선 풍경과 사람들 모습. 배가 항구로 들어오자 내리는 사람과 차, 승선하려는 사람들, 마중 나온 사람들로 북항은 혼잡했다.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54.5km 거리에 위치한 도초도에 가기 위해 페리호에 차를 실었다. 목포 북항에서 하루 세 번 도초도로 향하는 배편이 있다. 배는 암태도와 팔금도 등 수많은 섬들 사이를 지나가 바다가 아닌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다. 섬으로 이루어진 골목길을 2시간 달린 페리호가 도초도 화도선착장에 도착한다.

도초도는 신라시대 당나라와의 교역 기항지였는데 당나라 사람들이 지형을 볼 때 꼭 자기나라 수도와 같은 형태이며, 지역마다 초목이 무성하여 목마지(말 기르는 땅)로도 활용했기에 ‘도초(都草)’라 칭했다고 한다. 초목이 무성했던 과거같이 현재 도초도는 이웃한 비금도와 함께 ‘섬초’로 불리는 시금치가 유명하다. 섬초뿐 아니라 이 곳은 천일염과 전복, 간재미도 명성이 자자하다. ‘꿈이 있는 인재(人才)의 고장 도초도’라 쓰여 있는 표지석이 화도선착장에서 방문객을 맞는다. 인구 3000명, 면적 41.94㎢의 작은 섬이지만 전국적으로 유명인사가 배출됐다고 한다. 

 

①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고란리 석장승과 같이 익살스런 표정의 ②외남리, ③궁항리 석장승. ④섬 특유의 낮은 돌담과 작은 일주문이 아름다운 도초도 전통사찰 만년사. 바닷가 사찰이 아닌 깊은 산속에 들어 있는 듯 고요하다. ⑤시목해수욕장 비아산에서 바라본 다도해 모습.

배에서 차를 내려 일단 차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다 보니 넓은 평야가 나온다. 신안지역 섬 중에서 가장 넓은 고란평야(孤蘭平野)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저미가(低米價)정책에 피해 입은 지주들은 소작농에게 부담을 넘겼다. 지주는 소작료를 8할까지 요구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소작농들은 소작료를 주지 않았고 일제 경찰이 개입해 강제징수에 나섰다. 이에 소작농들이 힘을 합쳐 저항하자 무장경관을 동원, 소작인회 지도부를 목포경찰서로 체포, 연행해 갔다. 소작농 200여 명은 목포경찰서까지 가서 동료를 구하고자 함성을 지르며 시위를 벌였다. 경찰들에게 무력진압됐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나주로, 광주로 동료를 구하기 위한 투쟁을 이어갔다. 이와 같은 지주와 일제에 맞선 소작농들의 투쟁은 1923년 도초도의 이웃섬인 암태도에서 처음 시작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고 한다. 손과 발이 닳도록 일했지만 많은 걸 빼앗긴 소작농 같은 이들의 울분과 한이 이제는 사라졌다 할 수 있을까. 발길을 돌린다.

도초도에는 특이한 석장승이 셋 있다.

화도 선착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외남리 석장승을 찾으러 마을로 들어섰다.

시금치 밭에 계신 할머니께 “석장승 찾으러 왔는데요? 어디로 가면 되나요?” 길을 물었다. “머시라고?” “석장승요!” “…” “석장승요” 할머니는 계속 알아듣지 못하시는 게 멋쩍으신지 웃으며 “어~서 왔소?” 묻는다. “네? 서울에서…” “아따 멀리서 와븟구만이” 할머니와 함께 웃는다.

어렵게 찾은 외남리 석장승은 이를 드러내고 익살스럽게 웃는 표정을 짓고 있다. 마을 청년들이 재앙을 당해 마을 기세를 가로막고 있는 바위에 대항해서 세웠다는 석장승은 나뭇가지 모양의 창을 들고 있다.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고란리 석장승과 궁항리 석장승도 해방 전후 동시대에 세워져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석장승을 팍팍한 현실 삶에서 도움을 받고자 세웠다고 한다면 비록 지금은 힘들지만 내세(來世)에도 행복하길 바라며 세운 매향비도 있다.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지점에 향나무를 묻고 내세에는 미륵부처님 세계에 태어나길 기원했다. 매일 못 돌아올지도 모르는 바다로 나가는 섬 사람들은 고통과 불안을 어딘가로부터 구원받고 싶었을 것이다. 고란리 매향비는 수항리에서 고항리로 들어가는 길가에 서 있다.

도초도 용당산에 고불총림 백양사 말사가 있다. 한 도인이 이 곳에 절을 세우면 큰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에 따라 1948년에 창건된 만년사. 예언이 맞는지 절 바로 아래에는 이 지역 식수원으로 쓰이는 작은 저수지가 있다.

섬 특유의 낮은 돌담이 작은 일주문과 이어진다. 대웅전과 요사채 2동이 전부인 아담한 절이다. 대웅전을 참배하고 나오는 데 진한 꽃향기가 경내에 가득하다.

대웅전 좌측에 활짝 핀 목련나무가 있다. ‘목련향이 이렇게 강한가? 도시 목련나무의 향기를 맡은 기억이 없었는데.’ 조용하고 평안하다.

발길은 일주문을 나서는데 마음은 더 머물고 싶은지 자꾸 돌아보게 된다. 

 

도초도 남서쪽은 전남 신안 홍도에서 경남 여수 돌산면까지 바다길까지 이어진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시목해수욕장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의 아름다움을 대표하고 있다. 2km 넘는 반월형의 고운 모래사변, 왼쪽은 큰산, 오른쪽은 비아산이 감싸고 있어 천연의 항구처럼 바람이 없고 파도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서쪽 해안가를 따라 도초도 국립공원 지정구역에는 접근이 아직 어려워 사람들의 손이 타지 않은 가는게해수욕장, 문바위, 아편바위 등 아름다운 절경들이 있다.

다음날 아침 다시 시목해수욕장을 찾았다. 왼쪽에 있는 큰산 뒤로 해가 떠오른다. 짙은 안개가 몰려온다. 안개 속을 걸으니 꿈속을 걷는 듯 관세음보살님을 찾아 나선 길 같다.

1박2일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배를 타기 위해 화도 선착장으로 갔다.

배를 기다리는 데 식당 아주머니가 바구니에 생선손질하고 남은 고기를 들고 부두로 걸어가며 “갈매가~, 갈매가~”를 외친다. “애기들이 다 어디 놀러가븟으까? 내가 인나기만 하믄 날라오는디.” 갈매기가 오지 않자 먹이를 바닥에 두고 돌아간다.

멀리 날고 있는 갈매기를 불러본다. “갈매가~ 갈매가.”

[불교신문3194호/2016년4월16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