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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내변산의 봄

 

봄을 만나기 위해 간 변산. 변산바람꽃, 직소폭포, 실상사, 내소사에서 봄이 이미 와 있음을 느낀다. 내변산 한 마을에 핀 변산바람꽃. 척박하고 추운 땅을 뚫고 피어난 아주 작지만 아름다운 꽃이다.

입춘이 지났다. 봄비가 내린다. 남쪽으로 행선지를 정한다. 봄을 찾으러 길을 나설 때마다 늘 떠오르는 글이 있으니 송나라 어느 비구니 스님의 오도송이다. “종일 봄을 찾아 다녔건만 봄을 보지 못했네/ 산으로 들로 짚신이 다 닳도록 헤멨네/ 집에 돌아와 매화향기를 맡으니/ 봄은 가지 끝에 벌써 무르익었네.”

봄을 비유한 오도송이지만 왠지 봄을 찾아다니는 내 모습이 허상만 좇는 듯 하다. 하지만 아직 집에서 매화향기가 나지 않으니 어쩌랴. 봄을 찾아 변산반도로 향했다. 변산은 설악산, 금강산 같이 외변산, 내변산으로 나눠진다. 산 이름도 능가산(楞伽山), 봉래산, 영주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명산인 만큼 내소사, 개암사, 월명암, 실상사 등 이름만 들어도 찾아가고 싶은 명찰들이 많이 있다.

볼거리 많은 변산반도에는 봄이 되면 아주 작지만 무엇보다도 대접받는 특별한 생명이 있다. 약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높이 10cm의 아주 작은 꽃, 조용히 차가운 눈을 뚫고 나와 꽃을 피우는 모습이 비밀스럽게 사랑을 속삭이는 것 같다 해서 ‘변산아씨’라고 불리는 변산바람꽃이다. 마이산, 설악산, 한라산 등 전국적으로 자생하지만 변산에서 최초로 발견되어 변산바람꽃이라 불린다.

“바람꽃 찾으러 왔소잉? 저~짝 끄트머리집서 꼬랑따라 저 산 돌아가믄 되라.” 지난 4일 내변산의 한 마을에서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는 내 모습을 본 어르신이 길을 알려준다. 길을 따라 가니 인터넷에서 본 낯익은 장소가 나온다. ‘어디있지?’ 발 아래를 조심히 살피며 걷는다. ‘아 이 꽃인가’ 감나무 뿌리 부분에 아주 작은 흰 꽃 다섯 송이가 있다. 처음 본 변산바람꽃은 생각보다도 너무 작아 쪼그려 앉는 걸로도 부족했다. 바짝 엎드려야 ‘변산아씨’와 눈을 맞출 수 있었다.

5개의 꽃잎과 노란 꽃샘, 자색의 꽃밥, 작고 여린 변산바람꽃이 방긋 웃으며 맞아준다. 밭을 갈다 나온 돌멩이 틈 사이에서 솟아 나온 야생화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제법 시간이 지난 후 일어나서 살펴보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꽃들이 여기저기 솟아있다. 반가움에 한 송이 한 송이 인사를 나눈다.

변산아씨와 헤어진 후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녹아 시원하게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을 직소폭포로 향했다.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분소에서 직소폭포까지 2.3km. 완만한 경사의 산책길이다. 우산을 쓸까 말까 망설여지는 이슬비가 내린다. 우산을 지팡이 삼아 걷는다. 이슬비가 시원하다. 20분 정도 걸으니 실상사가 나온다. 신라 초의스님이 창건한 실상사는 천왕봉을 뒤로 하고 앞으로 인장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옆으로 변산 신선대에서 발원한 봉래구곡이 흐르고 있다. 남원 실상사만큼 넉넉한 절터엔 미륵전과 삼성각만 외롭게 서 있다. 법등을 이어오던 실상사는 한국전쟁 당시 전소됐다. 하지만 최근에 복원불사가 진행되고 있다. 

 

내변산의 자랑 직소폭포. 30m 높이에서 폭포를 받히고 있는 둥근 못에 곧바로 물줄기가 떨어진다고 해서 직소(直沼)라 불리게 됐다.

실상사를 지나니 부안시민의 비상 식수원을 위해 만든 직소보가 나온다. 직소보가 담고 있는 맑은 물이 자욱한 물안개 속에서도 산 모습을 그대로 비춘다. 호수에 담긴 산을 감상하며 걷다보니 장쾌한 물소리가 들린다. 변산의 자랑 직소폭포다. 얼었던 눈이 녹은 탓일까.

30m의 폭포는 생각보다 많은 수량을 쏟아내고 있다. 약간의 땀이 폭포의 시원함에 사라진다. 직소폭포부터 재백이고개를 넘으면 내소사까지는 3.6km, 2시간 남짓이면 닿는다.

내변산 관음봉 아래 기암을 병풍 삼아 살포시 내려앉은 능가산 내소사는 633년 두타스님의 ‘모든 이 다 소생하소서“라는 원력으로 창건됐다. 전나무 숲을 지나 대웅전으로 향한다. 여름이면 강렬한 침엽수 특유의 향내음 만큼은 아니지만 나무도 봄을 느꼈는지 조금씩 향기를 내고 있다.

 

단아한 모습의 내소사 대웅전.

숲이 전해주는 건강함을 느끼며 천천히 걷는다. 참배객을 처음 맞이하는 천왕문을 지나면 1000년 묵은 느티나무가 손님을 맞는다. 해마다 정월보름이면 마을사람들은 연중무병과 평온무사를 바라며 1000세 할머니 당산나무 앞에 모여 당산제를 지낸다. 이곳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는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당산제로 선정됐으며, 전북도 무형문화재 등록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1000살 된 할머니는 얼마 전에 당산제에 쓴 새끼줄을 꼬아 만든 금줄을 두르고 있다. 대웅전으로 향한다. 봉래루 아래 계단을 오르면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서로 결합하여 만든 보물 제291호 내소사 대웅전이 모습을 나타낸다.

대웅전을 조성한 도편수는 호랑이가 화현한 대호선사이며, 대웅전 내부의 단청과 그림을 그린 새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이었다는 대웅전 건조과정에 설화가 전해 온다. 특히 내소사 대웅전 꽃살문은 단청이 퇴색되어 화려함은 덜하지만 문양의 다양한 변화와 조화, 그리고 뛰어난 솜씨로 조각되어 있다.

꽃살문에는 피기 시작한 꽃 봉우리와 만개한 연꽃이 함께 있다. ‘활짝 핀 연꽃… 안 핀 연꽃…’ 꽃살문 연꽃을 바라보니 알 듯 말 듯한 비구니 스님 오도송이 다시 떠오른다. ‘종일 봄을 찾았는데 난 봄을 찾은 건가? 집에 가면 매화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 

 

내소사 대웅전 꽃살문. 만개한 연꽃과 봉우리 연꽃이 같이 조각되어 있다.

[불교신문3184호/2016년3월12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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