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송림사는 진(陳)나라에서 이운해 온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신라 진흥왕 5년(544) 때 세운 사찰이라고 한다. 고려 선종9년(1092) 대각국사 의천스님에 의해 중창됐던 사찰은 그러나 몽골과의 전쟁을 거치면서 전탑만 남고 대부분의 당우가 소실됐다. 폐사되다시피 한 사찰은 1597년과 1858 년에 각각 중창됐으며,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사찰마당 탑서 나왔지만 ‘박물관行’
문화재로만 인식, 신앙의미는 퇴색
대웅전 앞에 조성된 보물 189호 오층전탑(塼塔)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살아 남아 약 1200년 간 송림사를 지켜온 수호신장이다. 높이 16.13m의 이 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돌이 아니라 흙으로 벽돌을 구워 만들어진, 국내에 몇 개 남지 않은 전탑 가운데 하나이며, 꼭대기 부분의 금동 머리장식이 그대로 남아 통일신라 탑 상륜부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사진>보물 325호 송림사오층전탑 내 유물 가운데 금제 사리기와 녹색 유리잔.
탑은 조성된지 1000년이 훌쩍 지난 1959년 해체 복원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다량의 유물이 발견된다. 당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웠던 탓에 주목을 받았던 유물들은 전국순회전시를 갖는 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특히 탑에서 통일신라와 고려 등 시대를 망라한 유물들이 출토돼 눈길을 끌었다. 1층 탑신에서는 나무와 돌, 동으로 만든 불상이 각각 2구씩 수습됐으며, 2층에서는 채색된 돌로 만든 거북이 모양의 함 안에서 신라 때 조성된 사리장엄이 발견됐다. 또 3층 탑신에서는 나무 뚜껑으로 된 돌 상자 안에서 부식된 종이가 나왔고,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은제도금나무가지모양관장식과 각종 공양품이 발견됐다. 이외에도 5층 위 머리장식부인 복발 안에서는 고려 때 만든 상감청자 원형 합과 금동으로 만든 원륜 2개가 확인됐으며, 이 유물은 모두 보물 325호로 지정됐다.
사리장엄 신앙을 보여주는 2층 탑신에 봉안된 금제사리기는 8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판을 하나 하나 잘라 모양을 낸 금제 사리기는 통일신라의 금속공예는 물론 당시 성행했던 사리신앙의 단면을 보여주기 충분하다. 이 사리기는 기단 위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2단의 지붕을 올린 형태이다. 기단은 연꽃 모양으로 장엄했으며, 그 위에 난간을 만들었다. 기단 위에는 녹색의 유리잔이 올려져 있는데, 잔 표면에는 12개의 고리모양의 장식이, 안 쪽에는 옥과 진주가 붙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잔 안에는 다시 녹색의 유리로 만든 목이 긴 사리병이 들어 있는 형태다.
사찰 마당에 세워진 탑에서 출토됐음에도, 사리장엄 일체는 발견과 동시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귀속됐고, 이후 국립대구박물관으로 이관됐다. 때문에 이제는 송림사가 아닌 대구박물관 전시실에서 사리장엄구들을 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부처님 입멸 이후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탑을 세우고, 탑 안에 부처님 사리를 모시기 위해 사리장엄구를 만들었던 불자들의 신심을 고려해보면, 사리장엄구만 따로 떼어 보관하는 것은 불교의 신앙적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할 수 있다. 전시장 유리 너머 사리장엄구는 조형미와 예술성이 뛰어난 문화재일 수 있지만, 탑을 떠나서는 부처님 사리를 봉안했던 신앙의 의미는 자연히 퇴색될 수밖에 없다.
어현경 기자
[불교신문 2520호/ 4월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