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사 영산암 |
![]() 영산암으로 통하는 우화루 밑 통로. 은밀하고 신비로운 공간으로 안내한다. ![]() 영산암으로 오르는 길. ![]() 돌담과 어우러진 나무 담. ![]() 응진전 내부 모습. 늦겨울의 따사로운 햇살들 전각 사이 꽃비되어 내리네 서안동IC로 빠져 나와 20여분 봉정사 이정표를 따라 이동한다. 양반들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안동 봉정사로 향하는 길, 거리 곳곳에 각 성(姓)의 본가임을 알리는 안내판들이 이어진다. 많은 고택들을 보면서 유교로부터 탄압받던 불교를 떠올린다. 봉정사 입구를 지나면 명옥정이란 정자가 하나 서 있다. 숭유억불 시대의 상징처럼 풍류를 찾아 올라온 선비들이 경내지에 자리 잡은 곳이다. 신라 문무왕 12년(672) 창건된 봉정사도 당시엔 심한 수모를 겪었을 것이다. 봉정사는 국내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물인 극락전을 비롯, 유수의 성보들이 이어져 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또는 미적으로 이미 유명한 봉정사 옆에도 오래전부터 건축가들로부터 극찬이 이어져온 암자가 있다. 봉정사 영산암이 그 곳이다. 1989년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난해했던 영화내용을 이해 못했던 학창시절 어렵게 찾은 극장에서 꾸벅 꾸벅 고개를 떨구며 본 영화지만 세 스님이 생활했던 아름다운 암자와 그 강렬했던 영상만은 기억속에 남아 있다. 봉정사 대웅전을 바라보고 우측으로 50여 미터 지나면 영산암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살짝 보이는 영산암의 기와와 하늘을 향해 자유롭게 가지를 뻗고 있는 고목들이 어우러져 보이는 계단길을 한 발 내딛으면서 영산암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느끼기 시작한다. 영산암 앞에 서면 내부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하는 소극적인 암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면의 우화루(雨花樓) 밑의 작은 통로만이 영산암 내부를 엿볼 수 있다. 고개를 숙이고 살펴 봐도 돌계단과 작은 석등만이 보일 뿐이다. 누아래 좁은 통로를 통해 영산암 내부로 들어선다. 영산암 내부로 통하는 돌계단을 올라서면 정면에 보이는 응진전 외에 시선이 가는 곳이 있다. 바위를 뚫고 나온 듯한 소나무가 공간을 조율하듯 서 있다. 응진전, 염화실, 송암당, 삼성각, 우화루, 관심당 등 여섯개 동으로 이루어진 영산암은 어느 전각 하나 화려하지 않다. 대웅전인 응진전마저 누화루를 지나 올라서는 정면에서 빗겨 서 있다. 어느 전각들에서도 대칭이나 정렬같은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무엇 하나 주연이 아닌 듯 영산암의 전각은 서로를 존중하며 자리 잡고 있다. 찾는 이들은 그 모습으로 인해 편안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외부의 폐쇄적인 모습은 내부에선 찾아 볼수 없다. 건물이 전체적으로 ‘ㅁ’자형으로 폐쇄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지형의 높이를 이용한 3단 마당 구성과 우화루 벽체를 없애고 화루에 연결된 오른편의 송암당은 앞부분을 넓은 누마루로 처리하면서 공간을 위해 생활 공간이 뒤쪽으로 많이 물러나 있다. 우화루와 송암당에서 만들어진 열린 공간으로 시야가 환하게 열린다. 응진전 참배 후 가장 높은 마당에 잠시 서 있는다. 영산암은 바깥의 세상과 통하며 서로가 투과한 빛을 주고 받는다. 전각들의 단청이 사라져간 긴 시간이 주는 아름다움이 잔잔하게 가슴을 울린다. 겨울 따사로운 햇살이 오래된 전각을 부딪치면서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첫 법화경을 설하실 때 내린 꽃비(雨花)처럼 영산암에 떨어진다. 안동=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 2598호/ 2월13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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