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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연구는 수행에 방해되나

문 : 스님들은 흔히 경전을 중심으로 한 공부가 수행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을 합니다. 불교를 공부할 때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까?
‘敎버리라’는 것은 ‘지식 넘어서라’ 뜻
교학은 수행에 꼭 필요한 설계도와 같아
답 : 수행에 중점을 두는 입장에서는 지식을 ‘알음알이’라고 표현하며, 경전에 대한 이해도 지식이라고 볼 수 있기에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옛 스님들이 흔히 하시는 말씀인 “문자를 버려라”는 표현은 경전 공부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경전 그 자체가 수행의 목표인 깨달음은 아니라는 지적을 하는 것이지요.
실참(實參) 수행을 강조할 때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경 율 론 삼장(三藏)을 충분히 공부한 사람이라면 그 이론적 지식에 만족하거나 집착하지 말고, 삼장에서 가리키고 있는 그곳을 향해 나아가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아예 경론을 보지 말라는 뜻도 아니며, 또한 수행 도중에 다시는 경론을 보지 말라는 뜻도 아닙니다. 자신의 수행에 의심이 생기면 당연히 부처님의 말씀인 경이나 옛 스님들의 말씀인 어록을 참고로 살피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곁에 훌륭한 스승이 계셔서 곧바로 점검받을 수 있다면 굳이 경이나 어록을 보지 않아도 되겠지요.
선불교의 대표적인 스승인 육조 혜능대사만 해도 금강경에서 발심하게 되고, 오조 홍인대사와의 전법도 금강경의 법문을 통해 의심 없는 경지에 들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스님들이 공부하는 승가대학에서 교재로 쓰는 <금강경 오가해>에는 육조대사의 강의(口訣)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건축에 대해 공부한 세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갑은 설계도를 비롯한 각종 이론을 모두 공부했으나 실제로는 집을 지어보질 못했고, 을은 여기 저기 공사판을 돌아다니며 대충은 집을 지을 정도가 되었으나 이론은 전혀 모르며, 병은 이론은 말할 것도 없고 훌륭한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세부적인 기술을 다 익혔습니다.
이 세 사람이 직접 집을 지어서 겨울을 나야 되는 상황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갑은 우왕좌왕하다가 집을 짓지도 못하고 겨울을 맞아 자신은 물론 식구들까지 큰 고생을 시키게 될 것입니다. 을은 대충 집 모양을 만들어 겨울을 맞겠지만 큰 눈이 오기라도 하면 집이 무너질 위기를 맞게 되겠지요. 병이라면 완벽한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며, 겨울이 되어 아무리 큰 눈이 오더라도 불안에 떨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수행을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많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경전만 하더라도 초심자일 때 이해하던 것과 부처님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경안(經眼)이 열린 후의 간경(看經)은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뿐만 아니라 깨달음에 방해가 되는 잘못된 경계도 무수히 나타납니다. 이런 병폐에 대해서 경이나 어록에서는‘도깨비 굴’이나 ‘귀신 소굴’이라는 표현을 하면서 경책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눈 밝은 스승도 가까이하지 않고 경이나 어록도 멀리한다면 우려할 일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불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스승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자기 것으로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참선 염불 예참 간경 등의 정진을 하되 자칫 그릇된 길로 들어섰을 때는 꾸짖어줄 수 있는 스승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불교 외에도 많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만약 불교수행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벗어나면 그때는 불교의 옷을 입은 외도(外道)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론을 중심으로 한 교학을 소홀히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송강스님 / 개화사 주지
[불교신문 2420호/ 4월23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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