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보문사 석굴법당 나한전바다그물로 건져 낸 돌덩이 나한존자로 변해 |
신라 때 동네 어부들에 3번 걸렸으나 버려 꿈 속에 ‘귀중한 분’ 계시로 보문사에 봉안 신이한 영험 많이 보여 ‘신통굴’로 불리기도
강화도에서도 배를 타고 건너가야 하는 석모도 낙가산 중턱에는 눈썹모양의 바위아래 관세음보살님이 서해를 굽어보며 중생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있다. <사진설명> 강화 보문사 석굴법당 외부모습. 이 도량의 창건은 신라 선덕여왕 13년으로 희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다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635년에 이 곳에 와서 사찰을 창건해 낙가산 보문사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 중에는 18분이 나한님이 포함돼 있었다. 그래서 보문사는 관음성지이자 나한도량으로 기도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 설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해마다 춘 사월이 되면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에 사는 어부들은 고기잡이에 나서느라 분주했다. 농사도 짓고 고기잡이도 나서는 마을 사람들은 봄철에 잡아 올리는 고기가 많아 만선의 꿈을 이때는 꾸곤 한다. 마을 사람들이 성황당에 모두 모여 풍어제를 떠들썩하게 올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 14년 전에 희정대사께서 창건한 보문사에 올라가 풍어를 기원하는 기도도 했다.
“이번에는 만선을 해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그럼. 이번에 잡은 고기를 내다 팔아 우리 집 딸년 시집보낼 밑천 삼아야 하겠는데 말이야.” 돛배는 순풍을 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내달렸다. “오늘 날씨 한번 좋구만. 꼭 만선에 대한 징조를 보여주는 것 같아 기분이 그만이야.” “그러게 말이야. 내 생각에도 오늘은 정말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네.” 어부들의 입에서는 저절로 흥겨운 뱃노래가 흘러나왔다. “어기여 디여, 노 저어라. 우리 배는 떠나간다. 만선의 부푼 꿈 안고 두둥실 떠나간다.” “돛을 내려라.” 선장이 고함치자 배는 속도가 줄었고, 이내 잠잠한 바다와 한 몸이 되어 유유히 흘러갔다. “어디에 그물을 내릴까.” 배가 적당하게 출렁임을 보였고 선장은 언제 그물을 내려도 만선이 될 것 같은 기대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물결이 팔랑거리는 모습을 보고 고기들의 움직임을 파악한 뒤 고함을 질렀다. “그물을 내려라!” 어부들은 일사불란하게 그물을 던졌다. 파도의 일렁임도 숨을 죽였고, 바닷속에는 고기들이 그물을 피하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듯 했다. 어부들은 흥분됐다. 자신들이 던진 그물을 들어올리는 순간 묵직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이쿠. 여보게, 손아귀에 힘이 잡히는 걸 보니 고기가 엄청 많이 걸렸나 보네.” “그러게 말일세. 이거 보통이 아니군. 빨리 끌어 올림세.” 마을 어부들은 부푼 꿈을 안고 힘차게 그물을 끌어올렸다. “영차. 영차. 영차….” 한참 그물을 끌어 올리던 어부들을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웬일이야. 기대했던 고기는 한 마리도 없고 무슨 돌덩어리들만 이렇게 수북해.” 그물에는 정말 고기 한 마리 보이지 않고 대신 올망졸망한 형상을 한 돌들이 가득 걸려왔다. 모두 22개나 되었다. 실망한 어부들은 끌어 올렸던 돌들을 모두 바닷 속에 다시 던져 넣었다. “참 이상한 일도 있구만. 여기에서 돌을 건져 올린 일은 없었는데 말이야.” “그러게 말이야. 나도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용왕님이 노하셨나. 달라는 고기는 안 주시고 돌만 주니 말일세.” 어부들은 그물을 정리하고 다시 자리를 이동해 그물을 내렸다. 이번에도 반드시 만선의 기쁨을 누리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다. 역시 그물이 묵직했다. 어부들의 얼굴에 또다시 부푼 기대감으로 가슴속이 가득했다. 그러면서 마음 한 켠에서는 처음 그물을 던졌을 때 생각을 했다. “이번에도 돌덩어리가 나오는 게 아닐까?” 힘차게 그물을 끌어 올리던 어부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이번에도 돌들이 수북하게 그물에 걸렸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단 한 개도 빠지지 않고 22개의 돌덩어리가 올라왔어.” 어부들은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용왕님이 조화를 부리는 게 틀림없을 거야….” 저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선장이 용기있게 소리쳤다. “여보게들. 우리는 고기를 잡으러 오지 않았던가. 그러니 한 번 더 그물을 내려 보고 돌덩어리가 계속 나온다면 오늘 조업을 그만 접도록 하세.” 일제히 “그러세”하고 다시 그물을 내렸지만 이번에도 똑같이 22개의 돌덩어리들이 올라왔다. “오늘은 철수하세.” 선장의 외마디가 떨어지기 무섭게 어부들은 내렸던 돛을 올려 마을로 돌아왔다. 그날 밤 고기잡이에 참가했던 어부들은 똑같이 꿈을 꾸었다. 하얀 수염을 한 노인이 나타나 “너희들은 왜 그렇게 귀한 물건을 건져 올리지 않느냐. 그것은 나라의 복락을 성취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멀리서 온 귀중한 분들이니 어서 모셔 오도록 하라.” 핼쑥한 표정으로 아침을 맞은 어부들은 서로 꿈 이야기를 하며 장차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을 하다가 의견을 모았다. “어찌됐든 수일 내로 바다로 가서 그물을 한번더 내려보세. 만약 돌덩어리가 나온다면 꿈에 나타난 노인 말대로 보문사에 모셔 놓아야 되지 않겠나.” 뜬 눈으로 풍랑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린 어부들은 다시 바다로 나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물을 내렸다가 올렸다. 역시 손에는 묵직한 느낌이 왔고, 올려보니 22개의 돌 덩어리였다. 어부들은 이전에 약속한대로 배에 싣고 와서 보문사로 향했다. 낙가산이 명산이고, 부처님도 계시니 그곳에 갖다 놓으면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부들은 돌덩어리를 지고 보문사 석굴앞 부근에 이르러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움직이려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저마다 지고 온 돌덩어리들이 무거워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곳에 이 돌덩어리들을 모시라는 뜻인가 보다.” 마을사람들은 스님을 만나 자초지정을 이야기하자 돌덩어리들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냈다. “아. 저것이 돌덩어리가 아니라 부처님이였어!” 어부들은 일제히 엎드려 새로 태어나듯 나투신 석가모니불, 미륵보살상, 제화갈라보살상을 비롯해 나반존자와 18분의 나한상에 예경을 올렸다. 그로부터 얼마 뒤 보문사에 도둑이 든 적이 있었다. 도둑은 법당의 향로, 다기, 촛대 등 유기그릇 일체를 훔쳐 달아났다. 도둑은 무거운 유기그릇을 짊어지고 밤새 달아났다. 새벽녘이 가까울 무렵 도둑은 유기그릇을 내려놓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쯤 왔으면 안심해도 될 거야. 아마도 80리는 왔을 테니까.”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도둑이 긴 한숨을 내 쉬는데 옆에서 범종소리가 들렸다. “아니. 여기도 절이란 말인가?” 때마침 새벽예불을 올리기 위해 일어난 동자승이 법당 옆에 앉아 있는 도둑을 보고 주지스님에게 알렸다. “스님 법당 옆에서 불구(佛具)를 훔친 도둑이 앉아 있어요.” “그래 알았다.” 주지스님은 법당에 나가보니 잔뜩 짐을 지고 법당 옆에 앉아 있던 도둑은 깜짝 놀라 머리를 조아렸다. “스님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짓을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스님. 저는 몇시간을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것입니까?” “이게 다 저기 석굴 나한님들이 신통력을 부려 당신을 도망 못가게 한 것이지요. 잘못을 참회하고 참한 부처님 제자가 되십시오.” 도둑은 그 자리에서 석굴로 들어가 참회를 했고 이후에 착실하게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어 보문사의 대화주가 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석굴법당 앞에는 배탈이 나지 않는 약수가 나온 이야기며, 고려왕실로부터 하사를 받은 ‘깨지지 않는 석굴 앞 옥등잔’ 등 신통스런 영험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을 이 석굴을 ‘신통굴’이라 부르게 되었다. 강화=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찾아가는 길 강화군 강화터미널에서 외포리로 이동해 카페리호를 타고 석모도로 간다. 이곳에서는 보문사행 버스가 30분마다 운행된다. 강화터미널에는 20분마다 외포리로 가는 버스가 있다. 참고 및 도움주신 분: 보문사주지 성월스님, ‘보문사 안내 리플렛’ <동봉스님이 풀어 쓴 불교설화>, 강화문화원. [불교신문 2418호/ 4월16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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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에 위치한 낙가산 보문사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와 경남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다.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산이라고 해서 ‘낙가산’이라 했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님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절 이름을 ‘보문사’라고 했다. 이후 14년이 지난 진덕여왕 3년(649)에는 석가모니부처님과 미륵보살 등 22분 석상을 건져 올려 석굴법당에 모셨다고 한다. <사진설명> 내부에 모셔진 존상들. 언제부터인지 한분의 존상이 더 배치돼 23존상이 봉안돼 있다.
“돛을 올려라.” 선장님의 큰 고함소리에 선원들은 일제히 “돛을 올려라”를 반복하며 고기잡이에 나섰다. 봄바람이 바다의 갯내음과 섞여 비릿하게 코끝을 찌른다. 항상 맡는 냄새지만 어부들은 이때가 되면 언제나 살아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