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고해라면 행복은 불가능한가 |
문 : 부처님께서 가르치셨다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의하면 이 세상은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고통이 없는 세상은 어디이며 언제 어떻게 갈 수 있는 것입니까?
고해는 번뇌속의 삶을 가리킴 번뇌만 소멸되면 세상은 정토 답 : 불교에서 가장 많이 오해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세상은 고해(苦海)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해라는 표현은 깨닫기 전의 어리석음의 상태를 지적한 것으로, 객관적 세상과는 상관없는 심리상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태자시절의 싯다르타는 세상을 매우 고통스런 곳이라고 보았습니다. 태자로서 수학했던 모든 학문이 그렇게 지적하고 있었고, 당시의 모든 종교가 그렇게 강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싯다르타가 배운 모든 학문에는 신(神)이 인간의 운명을 쥐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었고, 그 신에 복종하는 체념적 업(業)의 삶과 출가하여 고행을 행함으로써 신과 가까이하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길은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왕이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체념적인 삶을 살아야하는 왕의 길보다는 출가를 택하게 되는 것이지요. 고행을 통해 정해진 고통의 업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출가 직후 선택한 길은 현실을 잊는 명상법이었지만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어도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역시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고는 지도자의 자리도 마다하고 고행을 선택하게 됩니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거의 죽음의 문턱에 이르는 극심한 고행으로 성자에 가까운 존경을 받게 되지만, 스스로는 역시 극복되지 않는 상태임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결국은 그 고행을 끝내고 맙니다. 6년 고행 후 자리를 옮긴 보리수 아래의 수행은 밖의 문제가 아닌 철저한 자기 성찰로 전환됩니다. 거친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 미세한 심리상태까지도 철저히 관조(觀照)하기 시작했고, 이윽고는 생각이 일어나는 근본자리까지를 관통하는 삼매(三昧)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하여 35년에 이르도록 자신을 얽매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탈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도를 깨치신 후의 부처님께는 더 이상 고통 따위가 남아 있질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눈으로 본 세상 또한 더 이상 고통의 세상은 아니었지요. 그래서 고통이라는 것은 그저 아지랑이처럼 어떤 조건에 의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 바로 사성제(四聖諦)라는 가르침입니다. 사성제에서의 고성제(苦聖諦)는 부처님께서 ‘세상은 고통이다’라고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집(集)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즉 지혜롭지 못한 번뇌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번뇌로 인해 스스로 고통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혼탁한 심리상태인 번뇌를 제거하면(道) 온갖 고통도 사라진다(滅)는 것이 부처님께서 사성제를 말씀하신 본뜻입니다. 문제는 오염되지 않은 마음상태로 완전히 돌아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며, 따라서 팔정도(八正道) 등의 수행을 통해서 언제나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 ‘세상은 고해다’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셨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지난 악몽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건 단지 악몽일 뿐이다’고 일깨워줬는데, “내 삶은 악몽일 뿐이다”고 집착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송강스님 /개화사 주지 [불교신문 2452호/ 8월2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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