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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각사가 운영하는 흥부네 책놀이터 1호점에는 언제나 아이들로 북적댄다. |
지난 2014년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크나큰 충격을 줬다.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9명의 탑승자는 여전히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오지 못한 채 차디찬 바닷물 속에 갇혀 있다.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시 7시간에 대한 각종 의혹이 증폭되면서 세월호 참사문제는 또 다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시흥시 월곶동의 이름 모를 작은 산 중턱에 위치한 대각사는 세월호 참사 발생 전과 후가 달라진 사찰이다. 1959년 7월 보육원인 ‘송암동산’과 함께 개원한 대각사는 대웅전과 일로향실이 들어선 2층 규모의 전각과 요사채를 갖춘 산중 작은 기도도량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대각사는 세월호의 아픔을 잊지 않고,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듬어 안기 위해 사찰과 도심에 ‘흥부네 책놀이터’를 운영하면서 시흥지역의 불교 위상을 제고하는데 앞장서는 전법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대각사의 주 신도층은 시흥시와 안산시, 광명시 불자들이다. 특히 안산 단원고와의 거리가 약 10km에 불과할 만큼 안산시와도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대각사 주지 원돈스님은 틈나는 대로 진도 팽목항과 안산합동분향소를 찾아 생존자의 무사귀환과 더불어 희생자의 극락왕생을 빌며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줬다. 세월호 참사로 생을 달리한 학생 6명과 교사 3명의 49재도 대각사에서 엄수했다. 유가족에게 3년간만 추모제를 지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매년 4월16일이면 추모제를 지내겠다는 계획이다.
원돈스님은 진도와 안산을 숨가쁘게 왕래하던 와중에 ‘세월호 참사가 쉽게 끝날 일이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이 뇌리를 문득 스쳐 지나갔다고 회고했다.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의 아픔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듬어 안고 올곧게 키워 나가는 게 남아있는 우리에게 건네준 교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원돈스님은 지역 아이들을 보듬기 위한 방편으로 도서관 운영을 서원했다. 도서관 건립을 위한 종잣돈은 스님의 대학원 등록금으로 충당했다. 대학원 공부를 통해 보다 체계적으로 신도들을 상담하고 치유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지만 아이들의 미래 희망을 키우기 위한 도서관에 투자하는 게 더 큰 일이라는 생각에서 학업도 과감히 접었다. 이에 공감한 출판사와 지역 도서관, 불자와 시민 등도 힘을 보탰다. 원력과 십시일반 보시를 통해 지난해 3월 1200~1500권의 책을 각각 갖춘 ‘흥부네 책놀이터’ 2곳을 개원할 수 있게 됐다. 흥부네 책놀이터 본점은 사찰 신도와 보육원인 ‘송암동산’. 아이들을 위한 시설로, 대웅전 건물 1층 공간을 리모델링해 마련했다. 지역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놀이터 1호점은 시흥시 정왕1동 일반주택단지의 한 옥탑방을 임대한 뒤 책놀이터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아이들이 거의 찾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정일품(정왕1동을 품는 사람들)’ 모임을 통해 실패한 원인을 알게 됐다.
정왕1동 일반주택단지는 원룸과 투룸 등이 주를 이루고 주민 상당수가 저소득세대다. 한부모가정과 다문화가정, 이주민가정 등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이에 결식아동이 많은데다 방과 후 아이들을 돌봐줄 곳도 마땅치 않아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한 아이들도 적지 않다. 또한 4층 높이의 옥탑방도 아이들의 접근을 꺼리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됐기 때문이다. 이에 원돈스님은 곧바로 옥탑방에서 시화초등학교 정문 바로 옆 1층 공간으로 이사했다. 결식아동을 위한 아침공양도 제공하고 방과 후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현재는 매일 아침마다 20명 내외의 아이들이 흥부네 책놀이터 1호점을 통해 아침끼니를 해결한 뒤 등교하고 있다. 방과 후에도 15명 내외의 아이들이 오후5시까지 책놀이터에 머물며 플루트, 영어, 독서 등 요일별 방과 후 프로그램을 수강하며 맛있는 간식도 나눠 먹고 있다. 책놀이터 본점 주이용자인 송암동산 원생을 위해서는 매월 첫째 일요일을 ‘짜장면데이’로 정하고 간단한 법회에 이어 짜장면을 함께 나눠 먹으며 아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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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놀이터 입구에 위치한 나눔상자로 누구나 라면 등 공양물을 가져가 나눠 먹을 수 있다. |
또한 책놀이터 입구에는 어려운 이웃이라면 누구나 공양물을 가져갈 수 있도록 ‘나눔을 주는 상자(나눔상자)’가 설치돼 있다. 우체통처럼 생긴 나눔상자에는 매일 아침마다 봉지라면 10개와 밑반찬, 밥 등으로 채워지고 있다.
책놀이터 본점과 1호점 운영은 대각사가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로 등록하면 지자체 후원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제안도 적지 않게 받았지만 원돈스님은 정중히 사절했다. 옛 사찰들이 구휼에 앞장섰던 것처럼 힘들더라도 사찰에서 신도들과 힘을 합쳐 책임지고 운영하겠다는 생각에서다. 매일 아침공양을 조리하고 간식을 마련하는 일은 원돈스님의 몫이다. 이에 신도들도 합세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이는 아침공양과 간식을 준비해주거나 아이들을 돌보는 자원봉사자로,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신도는 방과 후 프로그램인 영어와 독서수업 등의 강사로 나섰다. 또한 정육점을 운영하는 신도는 매달 고기를, 식당을 운영하는 신도는 밑반찬을 제공하는 등 신도와 후원자들은 각자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 둘씩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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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각사 전경, |
특히 세월호 희생자인 고(故) 황지현 양의 어머니는 매주 수요일 아침이면 아침공양 자원봉사자로 나서고 있다. 매주 식혜와 밑반찬도 집에서 만들어 오는 등 지현 양에게 못다 쏟은 사랑을 책놀이터 아이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아울러 현재 70~80명이 참여하고 있는 후원조직인 ‘흥부네 책놀이터를 움직이는 100명의 사람들’ 회원도 스님을 돕는 든든한 우군이다.
대각사는 여느 사찰과 달리 기도나 제의 동참비가 정해져 있지 않다. 지난해 동지 때부터 각자 형편에 맞게끔 기도, 제사 비용을 불전함에 직접 넣도록 했다. 대웅전 한켠에 놓인 신도카드를 신도들이 직접 찾아 스님 자리에 놓아두면 축원을 올린다. 종무소에서 기도비를 접수받던 일은 자연스레 중단됐다. 제나 49재를 올릴 때에도 밥과 국을 제외한 나머지 떡과 과일 등 각종 공양물은 영가가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을 중심으로 직접 신도들이 정성껏 마련해 올리도록 했다. 10개월 넘게 새로운 시스템으로 사찰을 운영하다보니 사찰 재정은 조금 줄었다. 하지만 비구니 스님 특유의 알뜰한 사찰 운영을 통해 대각사는 지난 1년 동안 장학금 수여, 3곳의 군법당 지원, 송암동산 원생 자립기금 지원 등 각종 자비나눔기금으로 6000만원 넘게 회향할 수 있었다. 책놀이터를 즐겨 찾고 있는 윤다인(시화초교 2년)양은 “제가 좋아하는 책도 많은데다가 스님이 해주시는 음식도 맛있어 매일같이 찾고 있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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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걱정 하지 말고 언제든 오세요”
“아무런 차별 없이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고 누군가가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 준다고 생각한다면 비행청소년이 될 가능성은 훨씬 줄어들겠지요. 아이들이 성장한 뒤에도 매일같이 맛있는 아침밥과 간식을 준 스님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불교 이미지를 좋게 한 또 다른 포교방편이라고 봅니다.” 지난 10월31일 시흥 대각사에서 만난 주지 원돈스님<사진>은 이같이 강조했다. 스님은 흥부네 책놀이터를 10곳까지 확대하겠다는 원력을 실현시켜 나가기 위해 매일같이 책놀이터를 찾고 있다. 대각사가 재정적인 부분을 맡고, 지역민들이 지역의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맡아서 뒷받침해준다면 10호점 개원은 실현 불가능한 게 아니라고 피력했다. “야간 경비를 통해 번 빠듯한 월급으로도 매달 라면 1박스를 지원해주거나 방과 후 프로그램 강사를 맡아주는 등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 손길을 내밀더군요. 그게 곧 부처님의 가피라는 생각으로 즐겁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답니다.” 여느 사찰과 다른 운영 시스템도 대각사만의 특색 가운데 하나다. 돈 걱정으로 사찰에 오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원돈스님의 지론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10만원이라도 대기업 회장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노숙자에게는 엄청나게 큰 돈일 것이다. 돈이 없는 것도 서러운데 돈 때문에 절에도 못 온다면 얼마나 큰 상처를 입겠냐는 생각에서다. “늘 사찰을 찾던 보살님이 한동안 보이지 않아 그분과 가까운 지인에게 이유를 여쭤보니 사업이 망한 뒤 돈이 없어 절에 못나온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충격이었지요. 그래서 형편이 어려우면 기도비를 안 낼 수도 있고 형편이 좋으면 남들보다 조금 더 낼 수도 있게끔 바꿨는데 어느 정도 정착단계에 접어든 것 같아 다행이네요.” |
시흥=박인탁 기자 parkintak@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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