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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동대관음암과 구정선사

구정스님이 아홉번 솥을 걸며 인욕의 길을 배웠다는 월정사 산내암자인 동대관음암 전경.평창=김형주기자

비단장수 청년이 당대의 선지식이 되다

이와 벼룩에게 피공양 하는 노스님 모습에 ‘감화’

행자생활 도중 아홉 번 솥 옮기며 인욕의 길 배워

출가 수행자의 모범 보이며 大禪師로 이름 날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번지에는 월정사 산내암자인 동대관음암이 있다. 이곳은 신라시대 왕자였던 보천태자가 관음방을 두어 1만 관음상을 그려 봉안해 관세음보살님이 머무는 곳이라 전해진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해오던 암자는 6.25 전쟁으로 소실돼 버렸다. 이후 1971년에 중건됐고 1996년 월면(月面)스님이 오래된 요사채를 헐고 새로 지었다. 동대 관음암에는 출가 수행자들에게 모범을 보인 구정선사(九鼎禪師)의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주 옛날 비단행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 오늘도 비단을 많이 팔아 맛있는 반찬을 어머님께 올려야지.”

어느 날 청년은 비단을 가득지고 강원도 고갯길을 넘어가고 있었다. 너무도 가파른 길이라 잠시 쉬고 갈 요량으로 등짐을 내려놓았다. “아이고, 힘들어라 여기 널찍한 바위가 있으니 좀 쉬어야겠어.” 청년은 등짐을 내려놓고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런데 바로 옆에 행색이 남루한 노스님이 서 있었다. 노스님은 누더기 옷을 입고 있었는데 풀섶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행동이 조금 이상해 청년은 넌지시 스님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스님, 지금 풀 섶에 앉아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요?”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던 스님은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뜨면서 대답했다. “젊은이, 나는 지금 중생들에게 공양을 베풀고 있는 중이네.”

“네? 공양이라구요. 제가 보기에는 가만히 앉아 계시는 것 같은데요.”

스님은 자비로운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지. 내 옷 속에 있는 이와 벼룩에게 신선한 피를 먹이고 있느니 자네는 알 길이 없겠지.”

“스님, 그런데 왜 꼼짝도 않고 그렇게 좌정해 계시는 것이지요?”

“이 사람아, 내가 움직이면 이와 벼룩이 피를 먹는데 힘들것이 아닌가. 그러니 이렇게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야.” 청년은 스님의 말에 큰 감화를 받았다.

“아, 세상에 이런 분들도 있었구나. 나는 지금까지 스님과 같은 생각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어쩌면 저렇게 자비심을 가질 수가 있을까. 나도 스님과 같이 수행하며 평생 살아봤으면….”

<사진설명> 월정사 산내암자인 동대관음암 현판.

하지만 청년의 이런 생각도 잠시뿐이었다. 집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감히 출가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렇지만 청년의 몸과 마음은 어느 새 노스님을 따라 가고 있었다. 노스님이 고갯길을 넘어서자 부랴부랴 그 뒤를 따라 간 것.

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 스님의 뒤를 따라가자 마침내 도착한 곳이 월정사 산내 암자인 동대관음암이었다. 자신의 뒤에 청년이 따라오고 있음을 알고도 가만 내버려 두었던 스님은 암자에 도착하자마자 뒤를 돌아보며 소리를 내 질렀다.

“그대는 왜 내 뒤를 따라오는고?”

깜짝 놀란 청년은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스님, 저는 비단을 사다가 이곳 저곳을 다니며 팔아서 연명하고 있는 비단장수이옵니다. 저에게는 노모가 계신데 제가 봉양을 하고 있습지요. 그런데 지난번 스님께서 보여준 행동을 보고 차마 스님 곁을 떠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제 평생 그렇게 자비스런 마음을 낼 수 있는 스님을 보고 저도 꼭 한번 그 길을 가고 싶어졌습니다. 저를 거절하지 마시고 부디 받아 주십시오.”

노스님은 자비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청년이 수행자가 되겠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대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어야 해. 그렇게 하겠는가?”

청년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스님이 시키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겠으니 분부만 내려 주십시오.”

청년의 굳은 결심을 확인한 노스님은 출가를 받아 들여 다음날부터 행자생활을 할 것을 명했다. 다음 날이 밝기가 무섭게 새 행자에 대한 일이 산더미같이 쌓였다. 우선 노스님은 가마솥을 거는 일을 시켰다.

“행자야, 오늘 안으로 저기 부엌 가마솥을 바깥으로 옮겨서 걸도록 해라. 시간에 늦지 않도록 해야 하느니라.”

행자는 산 기슭으로 가서 진흙을 가득 퍼서 암자로 옮겨 놓고 큰 가마솥을 옮기기 시작했다. 비지땀을 흘리며 청년은 하루가 가기 전에 새로 솥을 옮겨 걸었다. 그리고는 노스님께 말했다. “스님, 어제 시키신 일을 오늘 다 마무리 지었습니다.”

“어디 보자. 으음, 잘 했구나. 잘 걸긴 걸었다만 이 아궁이에는 이 솥이 어울리지 않는구나. 다시 옮겨야겠다. 그럼 내일은 이 솥을 다시 안으로 옮겨다 놓도록 해라. 시간이 늦지 않도록 말이다.”

다음날 행자는 불평 한마디도 하지 않고 노스님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다시 산기슭으로 가서 진흙을 퍼서 아궁이에 솥을 건 뒤 부뚜막을 정성스럽게 만들기 시작했다. 솥을 거의 다 옮기자 노스님이 갑자기 나타나서 나무라기 시작했다.

“아니,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이걸 솥이라고 걸어 놓았어. 한쪽으로 기울어도 한참은 기울었어. 다시 걸어라.”

노스님은 짚고 있던 지팡이로 솥을 밀어 넘어뜨려 버렸다.

“이상하다. 아무리 보아도 기울어진 데가 없는데 우리 노스님이 왜 저러지? 어쨌거나 스님이 시키시는 일이니까 다시 해야지.”

청년 행자는 이렇게하여 매일 솥 거는 일을 아홉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자 노스님은 행자의 인욕심을 인정하게 됐고, 정식 제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래 그동안 나는 너의 인내심이 어느정도인지를 시험해 보았느니라. 오늘 너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겠다. 너는 그동안 아홉 번의 솥을 옮겼어. 그러니 너의 법명을 ‘구정(九鼎)’이라 지었으니 잘 간직하도록 하여라.”

법명을 받은 구정행자는 뛸 듯이 기뻤다. 무엇보다도 이 일을 고향에 계신 어머님께 알려 드려야겠다고 하고 노스님께 말했다.

“고향에 계신 노모를 만나고 오겠습니다. 제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전해 드려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노스님은 조용히 말했다. “그래. 이미 내가 먼저 너의 고향에 가서 어머님께 말씀을 드렸다. 네 어머니도 흔쾌히 승낙을 하였으니 어서 가서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도록 하여라.”

구정행자는 고향으로 달려가 어머니를 찾아 뵙고 인사를 올렸다. “잘 오시었습니다. 구정스님. 이 어미 걱정을 하지 마시고 부디 만 중생을 제도하시는 큰 스님이 되어 주세요.”

어머니의 넒은 마음에 감복한 구정행자는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소자 열심히 정진해 만인에게 존경받는 수행자가 되어 널리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겠습니다.”

수행처로 돌아온 구정행자는 정식으로 계를 받아 구정스님이 되었다. 훗날 구정스님은 수행자로 큰 명성을 얻게 되어 ‘구정선사’는 사찰의 벽화에 자주 그려지게 되었다. ‘인욕보살’로 불리는 구정선사의 수행정신은 요즘도 출가 수행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찾아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진부 나들목에서 나와 월정사로 향한다. 월정사에서 상원사 방향으로 400m 정도 올라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작은 골짜기 사이로 산길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약 1.5km 올라가면 동대 관음암이 나온다. (033)332-0298

참고 및 도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 동대 관음암 월면스님

[불교신문 2477호/ 11월19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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