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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신 곳: 전북 부안군 행안면 역리.

세간의 잣대를 거부한 채 오로지 자기의 신념하나를 지키기 위해 한 평생을 몰수한 인생을 가끔 본다. 설잠이나 반계 같은 경우다.

조선 중기의 실학자 중에 균전제(均田制)를 바탕으로 만민이 같이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한 탁월한 경세치용의 대가 유형원(1622~1673)의 고향 부안이다. 부의 쏠림현상이 승속을 막론하고 너무 심대하기에 해보는 소리다.

고성산 미륵골을 지키고 계시다 넘어져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고종 대에 와서 우연찮게 나무꾼이 발견해 갖은 공력을 들여 모신 이후로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깍짓동만한 석불의 다 파먹은 코를 시멘트로 발라 구색은 갖췄으나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높은 곳에 있는 코를…” 하겠지만 아마 오랜 기간을 넘어져 누워 있었던 까닭이리라. 두상에 견주어 작은 맷돌형의 보관은 안을 파서 머리에 끼우는 기발한 방법을 동원했다. 보통은 육계를 평평히 해 보관을 얹어 놓는데 말이다. 게다가 석질 또한 그렇게 야물어 보이지 않아 오랜 세월의 풍상이 얼굴의 곳곳에서 느껴진다. 코는 호선의 굴곡이 완만해 커 보이기는 해도 전체적 균형은 그런대로 완벽해 보인다. 군턱아래 삼도를 넉넉한 간격으로 두었고 양쪽 귀 또한 축 처져 있어 편안하다.

통견에 법의는 수직에 가까운 V자형으로 명치까지 내려오고 양손은 법의 안에 읍(揖)하는 형상에 차수(叉手)를 하고 있다. 배꼽 아래로는 다시 둥근 반원형을 양쪽으로 흘러내리는 법의 자락 사이로 새겨 넣었다.

보관의 비 가림 덕분에 가운데로는 돌 자체의 갈색을 띄고 있어 양쪽 가장자리로 흘러내린 법의의 검은색에 비하여 너무 희다보니 흰색 옷에 검은색 숄(shawl)을 걸친 듯한 매력이 가상하다. 보관이 없었으면 까마귀차림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불교신문3146호/2015년10월21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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