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고 깨달았다는 뜻이 무엇인가요. |
문: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셨다는 성도재일 특별법회에 참석할 때마다, 새벽에 밝은 별을 보고 깨달으셨다는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별을 보고 깨닫는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끝까지 멈춰서는 안 되는 의심 별은 다만 깨달음의 인연일 뿐 답: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의문이지요. 그런데 그 의문을 지속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스님들은 그 의문에 대한 설명을 잘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설명들은 것을 정답으로 잘못 알고는 의심을 멈춰 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마치 사진으로만 본 풍경을 자신이 직접 가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저 히말라야 외줄기 산길을 찍은 사진을 보면 문득 그 길을 직접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 멀리 보이는 만년설과 계곡의 그림 같은 작은 마을, 그리고 잉크를 뿌린 것 같은 하늘과 맑은 눈빛의 아이들이 사진에 있다면, 사람들은 현지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길 위에 선다면 마치 천상의 길을 걷듯이 행복할 것이라고 믿어 버립니다. 그러나 정작 그 길에 서 보면 이전의 상상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나를 알게 됩니다. 책이나 법문을 통해 알게 되는 부처님 성도의 장면이나 옛 스님들의 깨달음에 대한 얘기는 사람들을 상상의 세계로 이끕니다. 그래서 매력적인 것들을 다 떠올리게 되지요. 이런 상상을 한 사람들이 출가를 원할 때, 그 출가목적을 들어보면 피식 웃음이 나올 얘기들을 나열합니다. 그들은 출가생활을 얼마하지 않아 자신이 얼마나 황당한 상상을 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 결과로 포기하는 사람과 생각을 바꿔 본격적인 수행의 길로 들어서는 사람으로 나뉘게 되지요. 흔히 도를 깨닫는다는 말을 할 경우에, 대체로‘도(道)’라는 고정된 실체를 얻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이렇게 공부해서는 끝내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어떤 이들은 껍질을 깨트린다는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라면 ‘행복을 담고 있는 알’을 가정해 보면 좋겠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이 단단한 껍질 속에 있는데, 그 껍질을 깨트리면 행복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껍질이 한 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를 깨고 나면 그 안에 또 껍질이 나타나지요. 이것을 계속 되풀이 하면 결국엔 마지막 껍질까지 깰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안에 있는 행복이 어떤 모양인지는 아무도 설명해 줄 수가 없습니다. 직접 깬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사람에 따라서는 겹겹의 껍질을 한꺼번에 깨 버리는 이도 있을 것이고, 하나씩 어렵게 깨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 껍질에는 번뇌라고도 하고 괴로움이라고도 하는 것이 같이 있지요. 부처님께서는 별을 보시고 도를 이루셨다고 하는데, 이 또한 아무도 설명해 줄 수가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캄캄한 밤 섣달의 추위에 몸을 떨며 하늘의 별을 응시한다면, 어쩌면 문득 깨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별이 깨달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부처님이 보셨다는 별도 문득 어디서 새로 나타난 것은 아니지요.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그때였을까요? 부처님께서는 항상 당신이 새롭게 만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늘 그렇게 있던 것을 보고 설명했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항상 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면 어리석다고 표현하는 것이고, 확연히 보고 최후의 의심까지 사라지면 깨달았다고 할 뿐입니다. 송강스님 / 개화사 주지 [불교신문 2494호/ 1월2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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