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불교에서는 깨달음의 경지나 도인의 삶을 말할 때 무애자재라는 표현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거침없는 언행을 일삼아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을 무애행이라고도 하여 혼란스럽습니다. 무애자재란 어떤 경지입니까?
걸림 없이 자유로운 깨달음의 삶
제멋대로의 언행은 막된 것일 뿐
답 : 무애자재(無碍自在)란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깨달음의 경지란 매사에 걸림이 없고 자유롭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제멋대로의 언행은 결코 무애행이 아닙니다.
무애자재라는 표현에 가장 적합한 경우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 성불 이후의 삶을 따라가 보면 당신의 고집으로 인한 투쟁이 전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절대평화의 열반을 체득하셨고, 그 열반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모두가 그 길을 깨닫고 행복해지길 바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45년간을 쉼 없이 중생제도의 길을 걸으셨던 것이지요. 이것은 곧 다양한 계층의 엄청난 사람과의 만남을 뜻합니다. 결코 당신의 추종자만을 만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부처님 당시의 인도는 100가지가 넘는 사상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고, 이 사상들은 거의 종교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5년의 긴 여정에서 살상이 일어날 정도의 심각한 대립이 없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독단적이거나 타인을 무시하는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삶에는 자기중심적이거나 자기만을 위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걸릴 것이 없고 자유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질문에서도 언급했듯이 무애자재라는 말이 아주 터무니없이 쓰이기도 합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막된 언행을 하면서도 자신은 그것을 무애행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애행이라고 강변을 하는 자체가 이미 많은 것들에 걸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겠지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기에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따르게 되고,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당하고만 있으려 하질 않습니다. 그래서 빠름과 느림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항상 충돌이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비록 직접적인 피해는 아니라하더라도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게 될 것이고, 이것도 또한 충돌로 이어질 것입니다.
무애자재는 대상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도 걸림 없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반야심경에서는 무애자재의 인물로 관자재보살을 등장시켜서, 무애자재에 이르는 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걸림 없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의 몸과 정신작용이 공(空)한 것임을 밝게 봐야 한다. 공의 이치를 터득하면 죽음에 대한 공포도 사라지고, 삶에 대한 우아함과 추함의 분별도 사라지며, 재산 등의 많고 적음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학문과 종교적 지식의 틀에도 매이지 않게 되고, 늘 깨어 있어 자유로울 수 있다. 이 경지가 되면 마음에는 아무것도 걸릴 것이 없고 두려움도 없으며, 눈앞의 경계를 거꾸로 잘못 판단할 일도 없어서, 마침내 항상 평화로울 수 있게 된다.”
무애자재는 이론과 현실의 충돌이 전혀 없는 경지이고, 정신적으로는 언제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를 뜻합니다. 이 무애자재는 시작과 과정과 결과가 모두 명쾌하고 좋은 상황으로 전개되는 최고의 삶을 가리킵니다.
송강스님 / 개화사 주지
[불교신문 2496호/ 1월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