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차역에서 내려 장성호를 따라 들어가는 백양사 길은 늘 운치가 있다. 일주문에서 사찰까지의 거리는 비록 멀지만 우거진 단풍나무 숲길과 연못을 바라보다 보면 지루하지 않다. 그길 끝에 바로 쌍계루가 있다. 그곳에 서면 연못에 비친 가장 아름다운 백양사의 사계를 볼 수 있다.
“국내 유일 전통 범종 양식”
백양사 출가한 태능스님
서산대사 의발 전수 받아
연곡사 등에도 비문 있어
<사진> 소요대사 부도. 사진제공=백양사
주변과 어우러져 경관이 빼어난 백양사는 백제시대의 고찰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백제 무왕 때 창건된 이 사찰의 본래 이름은 백암사로, 1034년 중연선사가 크게 불사한 뒤 정토사라고 불렸다. 백양사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조선 선조 때다. 당시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했는데, 법회 3일째 되던 날부터 흰 양 한 마리가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듣고 돌아갔다. 7일간의 법회가 끝나던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 한 마리가 나타나 “전생의 업보로 양이 됐으나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할 수 있게 됐다”며 절을 했다. 꿈에서 깬 후 영천암 아래 흰 양이 죽어 있자 그 때부터 백양사라고 불리었다.
특히 백양사에는 보물 1346호인 소요대사부도가 유명하다. 백양사 입구에 있는 부도전 안에 있는 이 부도는 백양사 주지를 지낸 소요대사 태능스님(1563∼1649)의 탑이다. 13세에 백양사에서 출가한 태능스님은 13세 때 백양사에서 출가한 스님은 부휴대사의 문하에서 경률을 익혔고, 서산대사로부터 의발을 전해 받았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승군에 가담했으며, 이후 지리산 연곡사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연곡사와 대흥사, 심원사 등에 비가 남아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스님의 부도는 국내 유일의 전통적인 범종의 양식을 보이 석종형부도이다. 높이 156cm의 부도는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로 구성돼 있는데, 기단부는 8각형으로 각 면에는 초화무늬가 조각돼 있고, 한 면에만 거북이가 새겨져 있다. 이 부도는 특히 탑신부가 종모양인 점이 특이하다. 전체적으로는 범종 모습으로, 하대, 유곽, 상대, 용뉴가 표현돼 있다. 하대에는 2줄로 돌출된 선을 그리고 사이에는 게를 비롯한 8마리의 동물을 새겼다. 부도에 게를 표현한 것은 바다가 그리 멀지 않은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것이고, 8마리의 동물은 팔부신중을 대신한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학설이다. 유곽은 4면에 배치됐는데, 안에는 9개의 유두가 조각됐다. 하대와 유곽 사이에는 모두 4마리의 용이 새겨져있으며, 상대에는 아래를 향한 연꽃무늬를 볼 수 있다. 또 전면의 액자모양에는 위 아래로 연꽃이 조각돼 있고, 안에는 ‘소요당’이라고 새겨져 소요대사의 부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상륜부는 4마리의 용두(龍頭)가 석종을 움켜 물은 상태인데, 사이에 구름무늬가 있고 그 위에 보주를 올려놓았다.
우리나라 석종형 부도의 역사는 9세기 말에 조성된 태화사지 12지상부도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고려, 조선시대를 지나오면서 많은 부도가 건립됐는데 대부분 석종형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부도의 전체적인 모습이 범종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지, 범종의 세부양식을 보여주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소요대사의 부도는 전체적인 것만 아니라 탑신부 자체가 범종형식을 보여주고 있어 다른 부도와는 다르다. 현재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이런 양식의 부도는 백양사 부도가 유일한데, 이는 석종형부도가 범종에 근원을 두고 조성되기 시작했음을 반영한다. 소요대사의 부도가 역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389호/ 12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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