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비구니 스님 수행도량 중 하나인 청도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21년(560)에 창건된 사찰이다. <운문사사적>에 의하면, 한 신승(神僧)이 도우(道友) 10여명의 도움을 받아 7년 동안 운문산 일대에 오갑사를 세웠는데,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지금의 대비사), 남쪽에 천문갑사(지금의 운문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운문사는 또 세속오계로 잘 알려진 원광법사와도 인연이 깊다. 진평왕 30년(608)에 운문사에 주석하며, 사찰을 중창했다.
소박한 자태…무엇에 쓰였을까
천년 고찰답게 운문사에서는 많은 성보들을 친견할 수 있다. 보물 제193호 운문사 금당 앞 석등을 비롯해 보물 제208호 운문사동호, 보물 제316호 운문사 원응국사비, 보물 제317호 운문사석조여래좌상, 보물 제318호 운문사 사천왕석주, 보물 제678호 운문사 삼층석탑, 보물 제835호 운문사 대웅보전과 운문사 입구에서 자라고 있는 천연기념물 제180호인 처진소나무까지 다양하다.
특히 보물 제208호인 운문사 동호(銅壺)는 고려시대 때 조성된 항아리이다. 형태가 특이해 보기 드문 유물이기도 하다. 높이 55㎝, 입구 지름 19.5㎝, 몸 지름 31㎝의 이 항아리는 장식이나 섬세한 기교 없이 남성적이고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깨는 넓고 밑에 굽이 달린 모양을 하고 있다.
항아리 전체가 흑색(黑色)을 띤다.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어디에 사용됐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감로준(甘露樽)이라는 이름이 전하고 있어, 사찰에서 사용하던 불기(佛器) 중 하나로 짐작될 뿐이다.
사진설명 : 보물 208호 운문사동호. 사진제공=문화재청
고려 때 조성…장식 없이 ‘남성적’
사리 모신 용기 추정…보물208호
사라졌다 꿈속 계시로 회수’일화’
이 항아리는 뚜껑 중앙에 비교적 높은 손잡이가 달려있는 게 특징이다. 열십(十)자형의 막대 위에는 6장의 연꽃잎이 장식돼 있으며 맨 위의 불꽃문양이 손잡이 구실을 한다. 이 불꽃문양은 특히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에 조성된 스님들의 사리를 봉안하는 부도의 머리장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사리를 모신 용기로 추정된다. 몸의 높이 33.5㎝에 비해 뚜껑 높이가 24㎝로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 또한 여느 항아리와 다르다. 또 몸체 좌우에 달린 굵은 고리는 손잡이 구실을 하는데, 형태는 여의두문(如意頭紋)과 유사하다.
어깨부분에는 또 21자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데, 고려 문종(文宗) 21년(1067)에 수리된 것으로 무게는 30근이었다고 전하고 있어 제작 시기는 이보다 앞선 고려 초나 신라 말로 추측된다.
운문사에는 이 청동항아리와 관련해 숨겨진 얘기가 전해진다. 임진왜란을 겪는 동안, 자취를 감췄던 항아리를 조선 인조 10년(1632)에 인담선자(印湛禪子)가 되찾아왔다는 내용이다.
어느날 인담선자가 운문사 오백전 뒤 계곡 뒤 약아계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한 스님이 나타나 계곡을 가리키며 “이곳에 귀한 물건이 있으니 잘 보관하라”며 사라졌다. 잠에서 깬 인담선자는 꿈이 너무 생생해 약아계로 가서 스님이 가리켰던 곳을 찾아봤다. 그곳에서 청동항아리 1점과 <서하집(西河集)> 한 권을 발견한 인담선자는 항아리를 감로준이라 칭한 뒤 사찰에 봉안하고, 문집은 후손에게 돌려줬다고 한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352호/ 8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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