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무량사는 신라 문무왕 때 범일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당우 대부분이 전소됐다. 오늘날 모습을 갖게 된 것은 조선 인조 때 진행된 중창과 1872년 원열스님에 의한 불사의 결과이다.사찰의 오랜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무량사에는 많은 성보들이 남아 있다. 보물 제185호 무량사오층석탑을 비롯해 보물 제233호 석등, 보물 제356호 극락전, 보물 제1265호 미륵불괘불탱 등이다.

무량세월 변함없이 꿋꿋한…
백제-통일신라 계승한 보물185호
사다리꼴 5층 몸돌 ‘절묘한 균형’
살짝 올린 처마끝 아름다움 더해
이 중 석탑과 석등은 모두 극락전 앞에 위치해 있다. 특히 고려시대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량사오층석탑은 백제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이 그대로 계승된 고려 전기의 탑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같은 양식을 보이고 있다. 높이 7.5m의 이 탑은 1층의 기단과 5층의 몸돌로 이뤄져 있다.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세운 모습을 하고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낮아지는 몸돌은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어 균형을 이룬다.
사진설명 : 보물 제185호 무량사오층석탑. 탑에서는 금동불상과 사리구가 출토됐다. 사진제공 문화재청
또 옥개석은 얇고 넓으며, 처마 끝은 살짝 올라가 있어 아름다움을 더하고, 옥개석을 받치는 돌은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들어 전체적으로 알맞은 비례를 보여준다.
탑에서 출토된 유물도 9점에 달한다. 지난 1971년 해체공사 당시 발견된 유물을 살펴보면, 1층 탑신에서 금동제 아미타여래좌상, 지장보살상, 관음보살상의 삼존상이 나왔고, 3층에서는 금동보살상이 출토됐다. 5층에서는 사리구(舍利具)가 발견됐지만, 정확한 조성연도는 확인되지 않았다.
1층 탑신에서 발견된 금동제 삼존불은 본존인 높이 33.5㎝의 아미타여래좌상과 높이 25.9㎝의 관음보살좌상, 높이 26㎝의 지장보살좌상이다. 아미타불상은 얼굴을 앞으로 수그린 자세에서 양손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을 하고 있으며, 관세음보살상은 중앙에 불상이 새겨진 보관을 쓰고 있으며 화려한 목걸이가 조각돼 있다. 반면 3층 몸돌 내에서 발견된 금동보살좌상은 높이 35.2㎝로, 관과 두 손이 파손됐다.
이와 함께 5층 탑신 내 사리공에서는 청동 외합과 내합으로 된 사리구가 발견됐다. 내합 안에는 수정으로 된 작은 병과 다라니경, 자단나무와 방분향이 들어 있었고, 수정병 안에는 청색 사리 1과가 봉안돼 있었다. 이들 출토유물은 부여군유형문화재 제100호로 일괄 지정됐다.
한편 무량사는 매월당 김시습(1435~1493)과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의 저자로도 잘 알려진 김시습은 당대의 문장가이자 사상가였으며, 불교에도 조예가 깊은 인물이다. 세조가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출가한 그는 설잠(雪岑)이란 법명을 받았으며, <십현담요해>와 <묘법연화경별찬> 등의 불교관련 저술도 남겼다. 설잠이 5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곳이 바로 무량사이며, 여기에는 보물 1497호인 그의 초상화와 충남도 유형문화재 25호인 그의 부도가 남아있다. 지난해 보물로 승격된 설잠의 영정은 가슴까지 내려오는 반신상으로, 패랭이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 2350호/ 8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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