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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갑사 공우탑 유래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52번지에 위치한 갑사(甲寺)에는 사찰 중창불사를 돕다가 죽은 소의 공덕을 기리는 탑이 세워져 있다. 사찰 입구에서 우측 계곡 건너 대적전으로 향하는 곳에 서 있는 이 탑에는 ‘공우탑(功牛塔)’이라는 명문에 새겨져 있다. 탑은 원래 부처님의 사리나 고승들의 사리를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떻게 축생을 위해 탑을 세웠을까? 그 유래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사찰 중창불사 도움으로 은혜 갚은 소

목줄 풀어준 스님에 의해 생명 건지고

전란으로 피해 입은 사찰복원 후 죽자

갑사스님들 탑세워 ‘牛보살’ 공덕 기려

옛날 갑사는 수많은 암자와 대중을 거느린 대찰이었다. 계룡산의 기암계곡과 청량한 폭포, 기둥을 떠받쳐 주는 듯한 울창한 수림이 절경을 이룬 곳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고구려 420년에 절터를 잡고 이후 혜명스님이 1000여 칸을 증축하여 화엄도량을 만들었다. 이어 679년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중수, 화엄대학지소(華嚴大學之所)를 열고 ‘갑사(甲寺)’라 개칭해 내려온 곳이다.

하지만 노략질을 일삼은 왜구들에 의해 갑사도 큰 피해를 입었다. 가는 곳마다 불을 지르고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들은 화엄대찰에도 피해를 주었다. 전란이 끝나자 난리를 피해 절을 떠났던 스님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고, 부득이 소실된 건물을 지어야만 했다.

전란에도 사찰을 지켰던 인호(印浩), 경순(敬淳), 성안(性安)스님 등 네 명의 스님은 중창불사를 하기로 마음먹고 전국으로 탁발에 나섰다.

“여보게들, 시간이 얼마 걸릴 줄 모르니 시주금이 모이는 대로 절로 돌아와 불사금에 보태세. 그리고 좀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탁발에 나서고 말일세. 그래서 불사가 회향되면 목숨을 걸고 정진해 만 중생을 구제하세.”

결의를 다진 스님들은 각자 동서남북으로 길을 떠났다. 이중 인호스님은 동쪽으로 향했다.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탁발을 해 시주금을 모으고 동가식 서가숙하던 어느날 스님은 탁발을 마치고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 산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사진> 갑사 대적전으로 향하는 입구 좌측에 위치한 공우탑. 사찰불사에 도움을 준 소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아래는공우탑 안내판.

그런데 길 건너편 한쪽에서 소 울음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왔다. “이 산중에 무슨 소 울음소리람. 참 그 소리 한번 슬피 들리네.”

소 울음소리가 가까워지자 스님은 숲을 헤치고 소를 찾아보았다. “어이쿠, 이 큰 소가 목줄에 감겨 있네. 하마터면 큰일 나겠어. 어서 풀어줘야겠구나.”

인호스님은 엉클어진 줄을 풀어 목을 감고 있던 끈을 풀어냈다. 그러자 고통에서 풀려난 소는 울음을 그치고 감사의 인사를 하듯이 인호스님 주변을 맴돌았다. “그래 그래. 어서 너의 주인에게로 가거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스님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세월은 흘러 수 년이 지나갔다. 그동안 네 명의 스님은 갑사를 왔다 갔다 하면서 시주금을 모았고 불사도 어느 정도 진척돼 갔다. 하지만 워낙 많은 대중들이 모여든 터라 흡족한 불사를 회향하기에는 불사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불사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머지 세 명의 스님은 계속 불사금을 모으기로 하고 공사 총책임을 맡은 인호스님은 갑사에 머물며 공사에 필요한 자재를 구입하는 등 공사를 시작했다.

목재가 다듬어지고 목수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시간이 지나자 전각의 모습도 위용을 드러냈고 스님들이 머무는 요사채도 한 채 두 채 완공이 되었다. 그렇지만 대중의 숫자에 비하면 건물은 여전히 비좁았다.

“생각보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 세 명의 스님이 시줏돈을 구해 오지만 이 큰 불사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부족해. 무슨 묘안이 없을까?”

한시도 불사걱정을 놓지 못하는 인호스님은 어느 날 꿈 속에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 “스님, 저를 기억하십니까? 몇 년 전 제가 목줄에 감겨 죽을 뻔 했을 때 저를 구해 주셨잖아요.”

“아,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어떻게 소가 사람 말을 하고 알아듣나요?”

그러자 소는 다시 말을 건네 왔다. “그건 상관하지 마세요 스님. 저는 다만 불사걱정에 상심이 큰 스님을 도와주러 온 것뿐이니까요.”

이렇게 말한 소는 뚜벅뚜벅 절 밖으로 나갔다. 꿈에서 깨어난 스님은 너무도 생생해 자신의 뺨을 꼬집어 보았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예불을 마치고 포행을 나서려던 인호스님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난 밤 꿈에 보았던 소가 일주문 밖에서 목재를 하나 가득 싣고 절로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수가? 저 소는 분명 어젯밤 꿈에 나타났었는데….”

달구지에 한 가득 목재를 실은 소는 절 마당에 목재를 내려놓자 다시 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한참을 있다가 사찰에 필요한 목재를 한 짐 가득 싣고 절로 돌아왔다. “이 비싼 목재를 어떻게 소가 구해왔을까? 필시 이 소는 부처님이 보낸 게 틀림없어.”

사정이 어떻게 되었던 불사에 필요한 품목을 가득 실어온 소 덕분에 갑사 중창불사는 차질없이 진행됐다. 이제 마지막 공정으로 법당 마루만 깔면 되었다.

“법당마루 재료로는 단단하고 향기가 은은한 향나무가 최고라고 했어. 이 목재는 백두산에서 나오는 게 제일 좋다고 하지. 어서 빨리 백두산으로 가야겠다.”

몇 달이 걸려 백두산에 도착한 인호스님 일행은 어렵게 백두산 향나무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운반을 해야 할지 앞이 감감했다. 그 때 스님 일행 앞에 달구지를 단 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는 어떻게 우리가 여기에 있는 줄 알고 왔느냐?”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소는 그저 목을 위로 쳐들며 나무를 실으라는 몸짓을 지었다. 인부들은 향나무를 달구지에 실었다. 한 짐 가득 향나무가 쌓이자 소는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단숨에 타임머신을 타고 가듯 삽시간에 갑사 일주문 앞에 도착했다.

“허허, 정말 신기하구먼.”

입을 다물지 못한 일행은 그저 소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백두산에서 향나무를 구한 일행은 다시 배를 타고 울릉도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또다시 달구지를 매단 소를 만났다. 거기에서도 향나무를 한가득 달구지에 싣자 눈 깜짝 할 사이에 소는 그 무거운 짐을 갑사 앞까지 운반해 주었다.

소 덕분에 적은 비용으로 큰 불사를 무사히 회향할 수 있었던 갑사 스님들은 소의 공덕을 칭송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인호스님은 특별히 소에게 특별식을 준비해 갖다 주기 위해 외양간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소는 피곤에 지친 듯 축 늘어져 움직임이 없었다.

“소야. 왜 이러느냐. 네 덕분에 이 큰 불사를 성공적으로 회향할 때가 되었는데 왜 아프냔 말이다. 이제 너는 더 이상 고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단 말이다.”

하지만 소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며칠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인호스님은 갑사 대중들은 모두 모아 대중공사(회의)를 열었다. “여러 스님들이 잘 아시다시피 우리 절 불사를 도맡아 왔던 소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필시 이 소는 갑사 불사가 성공적으로 회향되도록 돕기 위해 부처님이 보내주신 게 틀림없어요. 그러니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들을 내어 보세요.”

그러자 여러 스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죽은 소의 무덤을 만들어 주고 천도재를 지내 주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는 소의 공덕을 기리는 탑을 만들어 주자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자 그러면 대중스님들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스님들은 소를 ‘우 보살(牛菩薩)’로 칭하고 정성껏 장례를 치른 뒤 그의 공덕을 기리는 탑을 세우고 ‘공우탑’이라는 명문을 새겨 후세에 전했다.

공주=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찾아가는 길 /

서울에서 갈 때는 경부고속도로 → 천안논산고속도로 → 정안 IC → 23번국도 → 갑사방면 진입 → 계룡면사무소 → 계룡저수지 → 갑사로 가면 된다. 호남방면에서 올 때는 호남고속도로 → 논산 IC → 논산시내 → 23번국도 공주방향 → 갑사방면 진입 → 계룡저수지 → 갑사로 간다. 대중교통 이용시 서울에서는 남부터미널에서 공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한다. 공주에서는 갑사행 버스가 하루에 30회 운행된다. (041)857-8981

참고 및 도움 /

갑사 공우탑 안내문, <한국불교전설99>, 갑사 주지 태진스님.

[불교신문 2541호/ 7월15일자]

Posted by 백송김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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