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관촉사 미륵부처님 조성유래 |
논산 관촉사에 위치한 보물 제218호인 석조미륵보살입상 모습. 점선은 북쪽 오랑캐를 물리치다 다쳤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흔적.
아기 울음소리 내며 돌부처님 나투다 반야산에 3등분 되어 땅 속에서 솟아 37년만에 높이 18m의 미륵불로 화현 압록강에 출몰한 오랑캐들 몰아내기도 충남 논산시 관촉동 254번지에 위치한 관촉사. 이곳에는 사찰 이름보다 유명한 미륵부처님(석조미륵보살입상, 보물 제218호)이 위치하고 있다. 높이가 18m에 이르는 이 미륵불은 고려 제4대 광종 19년(968)에 조성됐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조성유래도 신기하지만 조성하는 과정에도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고려가 건국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인 968년 봄이었다. 현재 관촉사에서 30여 리 떨어진 사제촌(沙悌村)에 사는 한 여인이 반야산(관촉사가 위치한 산)에 올라 산나물을 뜯고 있었다. “여기 고사리가 있네. 어쩌면 이렇게도 연하면서 살이 올랐을까. 여기에는 취나물이 있구나. 데쳐서 먹으면 향이 아주 좋겠는걸….” 정신없이 산나물을 채취하던 여인은 산 이곳 저곳을 다녔다. 그러던 중 어디에선가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다. 이런 산중에 웬 아이 울음소리가 들릴까?” 여인은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찾아가 보았다. 울음소리는 가까이 갈수록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어린아이 소리가 나는 곳에는 어린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큰 돌 하나가 땅속에서 솟아오르면서 아기의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머나! 이게 무슨 조화야.” 깜짝 놀란 여인은 산을 황급히 내려와 사위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여보게,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말일세. 큰 바위가 땅속에서 솟아오르면서 아기 울음소리를 내니 무슨 일이 생길 징조가 아닌가 모르겠네. 어서 관가에 알려주게나.” 이 말을 들은 사위는 곧바로 관아로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기이하게 생각한 고을 원님은 이 사실을 개경에 상주하는 광종에게 알렸다. 임금은 곧바로 대신들을 불러 긴급회의를 열었다. “남쪽 반야산에 아기의 울음소리를 내는 돌이 솟아오르고 있다고 하니 어찌할 것인지 의견을 말해 보시오.” 그러자 신하들은 이구동성으로 나라에 상서로운 일이 생길 징조라며 조속히 명을 내려 그곳에 미륵부처님을 조성하라고 간언했다. 마음을 정한 광종 임금은 명을 내렸다. “이번 일은 필연코 미륵부처님이 고려에 몸을 나타내실 징조임이 분명하니 금강산에서 수행하고 계시는 혜명대사님께 이 불사를 성취하도록 할 것이다.” 혜명대사는 미륵부처님 조성이라는 소명을 맡아 수백 명의 석공을 이끌고 바위가 솟아오르는 반야산으로 향했다. 산 중턱에 도착하니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바위가 위용을 나타내고 있었다. 혜명대사는 석공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저 거대한 돌덩어리는 분명 우리 고려를 구하기 위해 현세에 오신 미륵부처님이 틀림없다. 모습은 지금 보이지 않지만 여러분이 망치질을 하다 보면 그 형태가 나타날 것이니 조심조심해서 미륵부처님을 맞이하도록 합시다.” 혜명대사의 명을 받은 석공들은 세 덩어리로 나뉘어 솟아오른 바위에 매달려 신 들린 듯이 망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수십 년 동안 반야산에 울려 퍼졌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미륵부처님은 머리에는 넓은 네모 모양의 보관을 쓴 채 선 모습으로 자애롭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대한 미륵부처님은 조성됐지만 혜명대사는 걱정이 있었다. “어떻게 거대한 미륵부처님을 세울 수가 있을까?” 아무리 궁리를 해도 뚜렷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 밤을 지새워도 방안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혜명대사는 사제촌을 산책하다가 묘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어린아이가 흙장난을 하고 있는데 자그마한 돌부처님을 가지고 놀았다. 혜명대사는 발걸음을 멈추고 곁에 앉아서 세심하게 살폈다. 마침 아이는 돌부처님을 옮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원통의 나무를 아래에 대고 돌부처님을 옮기니 원목이 구르면서 돌부처님이 옮겨졌다. 그 다음에 어린아이는 흙을 잔뜩 쌓은 다음 돌부처님을 옮겨 놓고 차츰 흙을 파내면서 세우고 있었다. “옳거니, 저것이로구나!” 무릎을 탁 친 혜명대사는 곧바로 인부들을 시켜 단 며칠 만에 거대한 미륵부처님을 세울 수가 있었다. 그 후 마을을 다시 찾아 아이를 찾으니 마을에는 그런 아이가 없었다. “그래, 문수보살님이 잠시 아이로 화현해 내게 미륵부처님을 세울 지혜를 주신 것이야….” 이렇게 하여 삼등(三等)불상을 무난히 세워 미륵부처님을 완성하였으니 때는 고려 제7대 목종 9년(1006)이었다. 무려 37년만의 일이었다. 높이 18.12m, 둘레 11m, 귀의 길이만도 3.33m나 됐다. 세워진 미륵부처님은 온 몸에 황금옷을 입고 자줏빛 장식을 했다. 그러자 미간의 백호 수정에서 찬란한 빛이 발하기 시작해 그 빛은 중국 송나라에까지 퍼졌다. 당시 송나라에는 지안(智眼)이라는 고승이 있었는데 그 빛을 따라 고려 땅 반야산에까지 찾아왔다. 지안스님은 미륵부처님에게 예를 올린 뒤 모인 대중에게 말했다. “이 부처님의 광명이 마치 촛불을 보는 듯합니다. 그러니 이곳에 도량을 건립해 관촉사(觀燭寺)라고 이름 지으시요.” 나라에서는 곧바로 대대적인 불사를 해서 관촉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미륵부처님이 조성된 지 얼마 후 북쪽에서 오랑캐가 쳐들어왔다. 파죽지세로 내려오던 오랑캐들이 압록강에 이르렀다. 어디선가 가사를 입고 삿갓을 쓴 한 스님이 나타나 태연히 압록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길을 찾던 오랑캐들은 “옳아, 저 스님을 따라가면 되겠어”라며 스님 뒤를 따라 강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오랑캐들은 그만 모두 압록강에 빠져 죽고 말았다. 부하를 잃은 오랑캐 장수는 화가 나서 다시 강을 건너온 스님을 칼로 내리쳤다. 그러자 장수의 칼은 스님의 삿갓 한쪽 끝을 스쳤을 뿐 스님은 어디 한 곳 다치지 않으며 장수의 칼을 조롱했다. 그때 관촉사 미륵부처님은 땀을 흘리며 보관 한쪽의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미륵부처님이 북쪽 오랑캐를 몰아내기 위해 압록강에 몸을 나툰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는 다시 떨어진 부분을 붙여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지금도 미륵부처님의 보관 한쪽은 떨어졌다가 붙인 자국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야간 조명등을 설치한 뒤 좌측 귀 한쪽에서 반가사유상의 모습을 한 부처님이 나타나 참배객들이 환희심을 일으키고 있다. 논산=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이시영 충남지사장 lsy@ibulgyo.com 찾아가는 길 / 천안-논산 민자고속도로에서 논산나들목으로 나와 연무읍을 거쳐 1번국도로 논산으로 들어온다. 호남고속도로는 서대전 나들목을 나와 1번 국도를 거쳐 논산으로 들어온다. 논산시내에서 관촉사행 버스는 20분 간격으로 운영된다.(소요시간 10분) (041)736-5700 참고 및 도움 / 관촉사 사적비명, 관촉사 홍보 리플릿, 논산문화원, 관촉사주지 태설스님. [불교신문 2539호/ 7월8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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