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회에서 인욕은 손해 아닌가요? |
문 :우리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경쟁에서 이겨야만 하는 상황에서 무조건 참는 것은 아무래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인욕바라밀을 실천해야 합니까? 답 : 우리가 보통 인욕을 ‘참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인욕은 보다 넓은 의미를 갖습니다. 인욕은 마치 대지가 깨끗한 것이건 더러운 것이건 모두 받아들여 분노함도 좋아함도 없는 것과 같이, 누군가의 찬탄과 멸시에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포용력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평정과 자비의 다른 표현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물론 단순히 참는 것도 실수를 줄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포용할 수 없는 이가 억지로 계속 참다보면 언젠가는 폭발하게 되고, 그 때는 매우 큰 비극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끔 보게 되는 불특정다수를 향한 무차별적인 총기사고 등이 한 예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참는다고 할 때 일반적으로는 대상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억울한 일이나 화나는 일을 참는다거나 또는 자극하는 사람에 대하여 참는다는 것이지요. 인욕은 평정심과 자비로 포용하는 것 포용에 의한 관계개선이 행복의 첩경 그러나 인욕의 입장은 스스로의 내면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나 그 행위를 먼저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살피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평정심과 자비심이 없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건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만약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상대를 너그럽게 대하게 되고 그 행위에 대해서도 별일 아닌 것처럼 넘길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뭐가 이래!’라고 생각하면서 상대를 힐난하게 될 것이고 행위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것들을 나열하게 될 것입니다. 같은 성격의 사건일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진행되는 결과는 상대와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원수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철부지 손자의 실수를 안타까워 할 뿐 노여워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손자를 끌어 않고 타이르지 화를 내지는 않지요. 사랑과 포용심이 바탕이 된 인욕은 이처럼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포용함으로써 미래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힘입니다. 바다가 바다일 수 있는 이유는 무한한 포용성에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이 흘러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지도 않고 차별하지도 않지요. 물론 하나의 바다라고 해도 깊이의 차이도 있고, 물맛의 미묘한 차이도 분명있습니다. 또한 바다는 자정의 능력이 있는데, 이것도 포용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가 함께하는 바다는 서로 감싸고 서로 돕는 구조에 의해 스스로 정화하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수행집단이 공동체적인 생활을 하는 것도, 각기 다른 물길이 모여 하나의 큰 바다를 이루는 원리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기심을 버리지 않으면 수행공동체의 일원이 되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상을 조화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이 바다와 같은 마음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수행이 바로 보살의 바라밀행인데, 그 중에서 인욕은 관계개선에 으뜸입니다. 진정한 평화와 행복은 바로 포용과 배려의 어울림에 의해 가능한 것이지 경쟁의 승리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 아닙니다. 송강스님 / 개화사 주지 [불교신문 2513호/ 4월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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