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 교화.구제 서원’ 암시 방편
천수관음.신중.명왕 등 주로 보살이 지녀
부처님 중에선 약사여래의 약합이 대표적
다양하고 풍부한 개수 만큼 의미도 제각각
불교의 존상이 지니고 있는 지물(持物)은 우리 주변에 편재하는 일상의 생활용구 또는 소지품 같은 것이 아니라 이미 불교적 해석을 거친 의미 상징형이다. 이 상징물들은 말로써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각 여래나 보살이나 신중의 성격과 그들의 중생 구제의 서원(誓願)을 암시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보살과 신중의 지물 중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연꽃.법륜.정병.석장.금강저.금강령에 관해서는 전회(前回)에서 살펴 본 바 있지만, 지물의 종류는 그것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특히 보문시현으로 나타난 천수관음을 비롯한 제 보살, 밀교의 진언과 다라니의 신비적 주력(呪力)에 의거해 탄생한 명왕, 사천왕을 비롯한 천부(天部)의 왕들이 가지고 있는 지물을 보면 실로 다양하고 풍부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지물의 다양함은 중생들의 교화와 구제를 위한 방편이 그만큼 다양하고 풍부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또한 불.보살, 신중들이 중생 구제를 위해 얼마나 집요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 |
사진설명: 철조 천수관음보살좌상의 지물. 조선.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 |
천수관음은 일반적으로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가진 형상으로 표현되는데, 좌우에 각 20개 씩 모두 40개의 손을 만들어 40x25의 천수(千手)를 나타낸다. 각 손에 있는 한 개의 눈이 25유(二十五有)의 세계를 구제하므로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이 되는 셈이다. 기메동양박물관의 조선시대 천수관음은 가슴에 합장한 두 손을 중심으로 왼손이 20개 오른 손이 21개가 표현되어 있어 오른 쪽 손이 하나 더 많게 되어있다. 아래쪽의 두 손은 수인을 결하고 있고, 위쪽의 두 팔은 보관(寶冠) 위로 들어서 화불(化佛)을 받든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나머지 손으로는 각양각색의 지물을 들고 있다.
천수관음보살이 가진 지물에 대해서는 인도의 스님 가범달마(伽梵達摩)가 번역한 〈천수경(千手經)〉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경에 나타난 천수관음보살의 지물을 살펴보면, 올가미[絹索].보검.금강저.금강령.해.달.활.화살.불자(拂子).호리병.방패.도끼.옥가락지가 있고, 백.청.홍.자색의 연꽃, 그리고 보병.보배거울.보배상자.경권(經卷)이 있다. 뿐만 아니라 창.법라(法螺).석장.염주.보탁(寶鐸).보배도장.궁전.보탑.법륜.포도와 화불(化佛)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천수관음보살상에는 이 모든 것이 다 나타나 있지 않으며, 다만 길상물인 보주.법라(法螺), 천체인 해.달, 불교 교의와 직접 관계가 있는 화불.법륜.연꽃.보탑.경권(經卷), 의식구인 정병.금강령, 생활 용구인 약합과 불자(拂子), 그리고 무기 종류로 보궁(寶弓).화살 정도가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천수관음의 지물을 의미상으로 분류해 본다면, ①질병의 고통 치유, ②일체 원망(願望)의 성취, ③안락과 원만 무애한 삶의 영위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가범달마의 〈천수경〉의 설명을 근거로 할 때, ①에 해당하는 지물로는 보발(寶)-뱃속 병 치료, 해(日精)-어두운 눈을 밝게 함, 달(月精)-열독(熱毒)의 치료 등이 될 것이고, ②의 경우는 활-관직 출세, 화살-좋은 친구를 얻게 함, 보배상자-땅에 묻힌 자를 이롭게 함, 오색구름-선도(仙道) 수행자를 위함, 염주-시방 삼세의 부처님을 친견케 함, 궁전-사후에 궁전에 왕생하게 함 등이 해당 될 것이다. 그리고 ③의 경우는 보주-얻고자 하는 모든 재물을 얻게 함, 올가미-강제로 잡아 교화함, 보검-귀신을 굴복시킴, 방패-맹수를 막아줌, 법라(法螺)-일체의 신을 부름 등이 이에 해당한다.
![]() |
사진설명: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제337호)의 지물-약합. 고려. |
범천의 지물은 불자(拂子).거울.금강저.연꽃이며, 제석천의 지물은 경권(經卷).향로 등이다. 사천왕은 무장신(武裝神)으로 지국천.증장천.광목천.다문천을 함께 일러 말하는 것으로 각자 불국의 4방위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지물은 경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지국천은 오른 손에 보주, 왼손에 칼, 또는 오른 손에 큰 칼, 왼손에 창을 잡는 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증장천의 지물로는 검.칼.창이 있으며, 광목천의 경우는 견삭.창.금강저.붓.삼차극(三叉戟), 다문천의 경우는 탑.창.사리탑.방망이 등을 지물로 가지고 있다. 팔부중은 천.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석탑 기단이나 경주 석굴암 같은 데서 팔부중상을 볼 수 있는데, 석굴암의 팔부중상을 예로 들어 보면, 천.건달바.검, 가루라-삼고저형 짧은 창, 긴나라-창과 경책, 용-보주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신중 무리 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의 지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 명왕이다. 명왕은 보통 다면다비(多面多臂) 형태의 분노상(忿怒像)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여러 개의 손으로 다양한 지물을 들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 지물들은 명왕이 재난 제거, 행복과 장수, 사업번창, 악마와 원적(怨賊)의 항복(降伏) 등 안락과 현세 이익을 중생에게 부여하기 위해 다양한 방편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명왕 중의 한분인 부동명왕은 검과 견삭, 군다리명왕은 뱀, 대위덕명왕은 칼.검, 금각야차명왕과 대예적명왕은 활.화살.검.금강저를 들고 있으며, 공작명왕은 연꽃을 들고 있다. 그리고 집금강신(야차신)은 금강저, 금강역사(인왕)는 금강저를 들고 있다. 이밖에 우리나라 불교 존상에서 볼 수 있는 이채로운 지물을 소개하면, 석굴암 벽면의 문수보살이 들고 있는 지혜의 잔, 보현보살이 들고 있는 경책(警策 : 좌선할 때 졸음이나 잡념을 끊기 위해 죽비 대신 사용하는 넓적한 막대기), 감실의 라후라가 들고 있는 발우 등이 있다.
![]() |
사진설명: 경주 불국사 사천왕상의 지물-비파, 검. |
지물은 이처럼 보살이나 신중들이 들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부처님 중에서도 지물을 들고 있는 분이 있다. 그분이 바로 약사여래인데, 왼손에 약합(藥盒)을 든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래상은 보통 수인(手印)으로써 여래의 성격과 특성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겉모습만 봐서는 어떤 부처님인지 금방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약사여래는 약합을 들고 있기 때문에 다른 여래상과 쉽게 구별된다. 약사여래는 과거세에 약왕(藥王)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한 12가지 큰 원을 세운 분이다. 그러나 약사여래의 12대원 내용을 살펴보면 중생의 질병 치료에만 국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약사여래의 약합은 질병치료뿐만 아니라 중생의 모든 욕망과 염원을 해결해 주는 여의보주와 같은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같이 지물은 각기 다른 형태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중생의 불성회복을 위한 방편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되어 있다. 신중의 서원은 곧 보살의 서원이고, 보살의 서원은 곧 부처님의 서원인 것처럼 지물에도 그러한 권화와 집중의 원리가 적용되어 있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230호/ 5월24일자]
'불교유적과사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좌 (0) | 2014.03.20 |
---|---|
건봉사 바라밀 석주 (0) | 2014.03.11 |
지물 (0) | 2014.02.19 |
명왕상 (0) | 2014.02.07 |
원각사지 10층석탑 (0) | 2014.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