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명왕.대위덕명왕.금강야차명왕 등
밀교 진언.다라니가 낳은 삼륜신
밀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진언과 다라니다. 진언과 다라니가 법성 진여인 대일여래의 참된 경계를 드러내는 말이며, 중생의 번뇌의 벽을 깨뜨리는 지혜의 소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명왕(明王)은 이러한 진언과 다라니의 신비적인 주력(呪力)에 의거해 탄생된 존격(尊格)으로, 교화하기 힘든 중생까지 구제하기 위해 힘쓴다. 명왕은 목적 달성을 위해 때로 위협적인 표정과 자세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명왕을 분노존(忿怒尊) 또는 위노왕(威怒王)으로 부르기도 한다.
밀교에는 여래와 보살과 명왕은 한 몸이라고 하는 삼종륜신의 개념이 있다. 즉, 명왕은 여래의 교령(敎令)을 받아 중생을 교화하는 존재이므로 여래와 한 몸이고, 보살도 여래의 화신이므로 여래.보살.명왕을 삼륜신(三輪身)이라 하는 것이다. 종교적 의미에서 볼 때 명왕은 인간 교화에 대한 의지를 지닌 여래의 또 다른 현현(顯現)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결국 명왕은 방편불인 셈이다.
명왕은 그 종류가 다양하지만 밀교에서는 태장계 만다라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부동명왕.항삼세명왕.군다리명왕.대위덕명왕.금강야차명왕 등 5대 명왕을 중요시 한다. 이들 명왕의 면모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부동명왕은 5대 명왕 중 주존 명왕으로, 태장계만다라의 중앙에 위치한 대일여래의 권화(勸化)이다. 몸의 색은 검고, 눈은 노기(怒氣)를 머금고 있으며, 왼쪽 눈을 가늘게 감고 오른 편 윗입술을 물고, 이마의 머리카락을 왼쪽 어깨에 드리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지물은 오른 손에 항마의 검을 가지고 왼손은 견삭(索, 밧줄로 짠 올가미)을 쥐고 있으며, 큰 불꽃 속 반석위에 앉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부동명왕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으나 실물은 확인된 바 없다.
항삼세명왕은 밀교 태장계만다라의 동방 아촉여래의 권화로 나타난 존격이다. 삼세라는 이름은 탐.진.치 3독을 항복받기 때문이라는 설과, 과거.현재.미래의 3세를 통해서 3독을 모두 항복받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존상은 4면(面) 8비(臂)의 분노 형상으로 나타나며, 금강령과 금강저를 든 두 손이 가슴 앞에서 교차하는 인(印)을 맺고 있고, 세 개의 오른손으로 봉(棒)ㆍ갈고리ㆍ화살을, 세 개의 왼손으로 활.견삭ㆍ금강저를 들고 있다.
군다리명왕은 태장계만다라의 남방 보생여래의 권화로서 나타난 명왕이다. 중생들의 재난을 없애주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이 명왕은 머리 하나에 팔이 여덟이고 분노의 표정을 지어 모든 악귀를 항복시킨다고 한다. 때로 손발에 많은 뱀이 얽혀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위덕명왕은 서방 아미타여래의 권화로서, 중생을 해치는 독사나 악룡 등을 굴복시킨다. 존상은 3면 6비의 분노 형상이며, 검ㆍ봉(鋒)ㆍ바퀴ㆍ저(杵) 등을 들고 있으며, 지물이 없는 두 손은 일정한 수인을 맺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 머리.팔.다리가 각각 여섯 개인 분노의 상으로, 칼ㆍ활ㆍ화살ㆍ창ㆍ곤봉을 쥐고, 목에는 해골을 걸치고 흰 물소를 탄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금강야차명왕은 북방 불공성취여래의 권화로서, 악마를 항복시킨다. 몸빛은 검푸르고 장대하며 화염이 온 몸을 감싸고 있다. 3면 6비 또는 1면 4비의 분노상을 보이며 한쪽 발을 들고 서 있다. 때로 머리가 셋, 눈이 다섯, 팔이 여섯인 형태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여섯 개의 손으로 오고령ㆍ오고저ㆍ활ㆍ화살ㆍ칼ㆍ법륜ㆍ금강저를 잡고 있다.
이상의 명왕들은 설명한 대로 각기 나름의 독특한 형상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각 경전마다 형상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고 시대와 나라에 따라 다양하게 변신하기도 한다. 명왕의 종류는 이 밖에도 대예적금강(오추사마금강), 공작명왕 등 많은 명왕들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5대 명왕보다 오히려 대예적금강이 신중탱화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예적금강은 금강야차명왕과 동등한 신격을 가진 명왕으로, 3개의 얼굴에 2비, 4비, 6비, 또는 8비를 가진 형상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대예적금강은 주로 3면6비 형태로 나타나며, 신중탱화 주존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대예적금강의 특징인 다면다비(多面多臂) 도상은 힌두교 신들의 도상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힌두교에서는 삼위일체 신인 브라마, 비슈누, 시바신을 비롯해서 많은 신들이 다면다비 형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들이 가진 다수의 얼굴과, 여러 개의 손으로 잡고 있는 지물들은 그 신이 가진 덕성(德性)과 서원(誓願)을 나타낸다. 예컨대 브라마가 가지고 있는 4개의 얼굴은 인도 최초의 성전인 4베다, 우주 순환의 4단계, 4개의 사회계급을 상징하며, 4개의 손에 들고 있는 염주ㆍ물병ㆍ숟가락ㆍ경권(經卷) 등은 법성 진리의 청정함을 상징한다. 예적금강이 지닌 3면과 6비 도상은 구체적인 내용은 달라도 그 도적 성격은 힌두교 신의 것과 같으며, 지물 또한 신상의 권능과 본지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다를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예적금강상은 조선 후기에 제작된 신중탱화에 비로소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대예적금강으로 여겨지는 존상이 조선 중기 석탑인 원각사지10층탑(1465년)의 탑신 면석에 나타나 있어 주목된다. 이 명왕은 3면6비의 도상을 갖추고 있는데, 소 등(牛背)에 앉은 여래의 좌우 협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물을 살펴보면 좌협시상은 중간의 두 팔은 지물 없이 수인을 결하고 있고, 위쪽의 좌수와 우수는 금강저, 아래 쪽 좌수는 봉(鋒), 우수는 견삭을 잡고 있다. 그리고 우협시상은 중간의 두 팔은 좌협시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수인을 결하고 있고, 위쪽 양 손은 보주(寶珠)를 받쳐 들고 있으며, 아래쪽의 왼손으로는 정병으로 보이는 물건을, 오른 손은 숟가락을 잡고 있다. 경에 의하면 대예적금강은 화염이 솟구치는 청흑색의 몸에 충혈된 눈과 분노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처럼 우리나라 명왕상의 인상은 섬뜩함이나 괴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여래의 현현…경전마다 다양한 형태 수록
'예적금강의 多面多臂, 지물'중생교화 상징
신중탱화선 민간 기복신앙과 결합해 등장
명왕상의 또 다른 유례로는 해인사 대적광전 신중탱이나 예천 용문사 신중탱(1867) 등 19세기 불화에 등장하는 예적금강상이 있다. 모두 다면다비 형상을 갖추고 있는데, 팔금강.사보살 등의 신중과 함께 등장하고 있다. 또한 청도 운문사 비로전과 관음전에 봉안된 신중탱화에서도 법륜ㆍ금강저ㆍ칼 등의 지물을 들고 있는 주악천ㆍ금강4보살ㆍ제석ㆍ범천과 함께 나타나 있는 3면6비 형상의 예적금강상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조선 후기의 신중탱화에는 예적금강이 제석천, 위태천과 함께 주인공격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것은 여래의 교령륜신(敎令輪神)으로 탄생한 명왕이 민간신앙 또는 기복신앙과 결합하여 복을 주고 재난을 면하게 해주는 신상으로 변모한 결과라 볼 수 있다. 이 밖에 명왕을 표현한 예로 1936년 황해도 평산군 월봉리의 논에서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시대 동종의 공작명왕 부조상이 있다.
명왕상에서 다면다비상 못지않게 도상적 중요성을 가진 것이 지물(持物)이다. 지물은 명왕의 서원(誓願)성취에 관한 일대작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명왕이 가진 서원의 핵심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무명과 재난에서 구제해 내겠다는 것이다. 명왕은 그 목적 달성을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하는데, 그 구체적인 방법이 손에 든 지물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명왕이 들고 있는 지물은 활.화살.창.곤봉 등 무기, 금강저ㆍ금강령ㆍ정병 등의 의식구, 갈고리.견삭.포승 등 포획장비, 그리고 숟가락.경권(經卷).연꽃 등 실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이 지물들은 모두 중생 구제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무기류는 사기(邪氣)가 강하여 조복시키기 힘든 상대를 위협하기 위한 것이고, 포획장비는 잡아 둔 중생이 자비의 올가미에서 한사람도 새나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경권, 연꽃 등은 보광(普光)의 불국의 세계를 드러내 보여 주어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채찍과 당근이라는 두 가지 전략을 함께 쓰고 있는 셈이다.
명왕의 조상(造像)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것은 인도, 티베트,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불.보살상이나 사천왕상처럼 조각한 명왕상을 흔히 볼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확실한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밀교가 그들 나라에 비해 크게 유행하지 못했다는 점과, 명왕의 성격상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무섭다는 점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명왕과 여래는 얼음과 물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얼음은 형체를 가지고 있으나 물은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얼음과 물은 실제로 같은 것이다. 명왕은 형체를 가진 얼음과 같고 여래는 형체가 없는 물과 같다. 그래서 명왕은 곧 여래와 같은 것이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227호/ 5월10일자]
밀교 진언.다라니가 낳은 삼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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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원각사지10층석탑 탑신의 명왕상. 서울 탑골공원. |
밀교에는 여래와 보살과 명왕은 한 몸이라고 하는 삼종륜신의 개념이 있다. 즉, 명왕은 여래의 교령(敎令)을 받아 중생을 교화하는 존재이므로 여래와 한 몸이고, 보살도 여래의 화신이므로 여래.보살.명왕을 삼륜신(三輪身)이라 하는 것이다. 종교적 의미에서 볼 때 명왕은 인간 교화에 대한 의지를 지닌 여래의 또 다른 현현(顯現)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결국 명왕은 방편불인 셈이다.
명왕은 그 종류가 다양하지만 밀교에서는 태장계 만다라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부동명왕.항삼세명왕.군다리명왕.대위덕명왕.금강야차명왕 등 5대 명왕을 중요시 한다. 이들 명왕의 면모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부동명왕은 5대 명왕 중 주존 명왕으로, 태장계만다라의 중앙에 위치한 대일여래의 권화(勸化)이다. 몸의 색은 검고, 눈은 노기(怒氣)를 머금고 있으며, 왼쪽 눈을 가늘게 감고 오른 편 윗입술을 물고, 이마의 머리카락을 왼쪽 어깨에 드리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지물은 오른 손에 항마의 검을 가지고 왼손은 견삭(索, 밧줄로 짠 올가미)을 쥐고 있으며, 큰 불꽃 속 반석위에 앉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부동명왕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으나 실물은 확인된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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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신중탱화의 예적금강상. 경기도 광주 광덕사 |
군다리명왕은 태장계만다라의 남방 보생여래의 권화로서 나타난 명왕이다. 중생들의 재난을 없애주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이 명왕은 머리 하나에 팔이 여덟이고 분노의 표정을 지어 모든 악귀를 항복시킨다고 한다. 때로 손발에 많은 뱀이 얽혀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위덕명왕은 서방 아미타여래의 권화로서, 중생을 해치는 독사나 악룡 등을 굴복시킨다. 존상은 3면 6비의 분노 형상이며, 검ㆍ봉(鋒)ㆍ바퀴ㆍ저(杵) 등을 들고 있으며, 지물이 없는 두 손은 일정한 수인을 맺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 머리.팔.다리가 각각 여섯 개인 분노의 상으로, 칼ㆍ활ㆍ화살ㆍ창ㆍ곤봉을 쥐고, 목에는 해골을 걸치고 흰 물소를 탄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금강야차명왕은 북방 불공성취여래의 권화로서, 악마를 항복시킨다. 몸빛은 검푸르고 장대하며 화염이 온 몸을 감싸고 있다. 3면 6비 또는 1면 4비의 분노상을 보이며 한쪽 발을 들고 서 있다. 때로 머리가 셋, 눈이 다섯, 팔이 여섯인 형태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여섯 개의 손으로 오고령ㆍ오고저ㆍ활ㆍ화살ㆍ칼ㆍ법륜ㆍ금강저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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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신중탱화의 예적금강상. 수원 용주사 |
대예적금강은 금강야차명왕과 동등한 신격을 가진 명왕으로, 3개의 얼굴에 2비, 4비, 6비, 또는 8비를 가진 형상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대예적금강은 주로 3면6비 형태로 나타나며, 신중탱화 주존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대예적금강의 특징인 다면다비(多面多臂) 도상은 힌두교 신들의 도상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힌두교에서는 삼위일체 신인 브라마, 비슈누, 시바신을 비롯해서 많은 신들이 다면다비 형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들이 가진 다수의 얼굴과, 여러 개의 손으로 잡고 있는 지물들은 그 신이 가진 덕성(德性)과 서원(誓願)을 나타낸다. 예컨대 브라마가 가지고 있는 4개의 얼굴은 인도 최초의 성전인 4베다, 우주 순환의 4단계, 4개의 사회계급을 상징하며, 4개의 손에 들고 있는 염주ㆍ물병ㆍ숟가락ㆍ경권(經卷) 등은 법성 진리의 청정함을 상징한다. 예적금강이 지닌 3면과 6비 도상은 구체적인 내용은 달라도 그 도적 성격은 힌두교 신의 것과 같으며, 지물 또한 신상의 권능과 본지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다를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예적금강상은 조선 후기에 제작된 신중탱화에 비로소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대예적금강으로 여겨지는 존상이 조선 중기 석탑인 원각사지10층탑(1465년)의 탑신 면석에 나타나 있어 주목된다. 이 명왕은 3면6비의 도상을 갖추고 있는데, 소 등(牛背)에 앉은 여래의 좌우 협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물을 살펴보면 좌협시상은 중간의 두 팔은 지물 없이 수인을 결하고 있고, 위쪽의 좌수와 우수는 금강저, 아래 쪽 좌수는 봉(鋒), 우수는 견삭을 잡고 있다. 그리고 우협시상은 중간의 두 팔은 좌협시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수인을 결하고 있고, 위쪽 양 손은 보주(寶珠)를 받쳐 들고 있으며, 아래쪽의 왼손으로는 정병으로 보이는 물건을, 오른 손은 숟가락을 잡고 있다. 경에 의하면 대예적금강은 화염이 솟구치는 청흑색의 몸에 충혈된 눈과 분노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처럼 우리나라 명왕상의 인상은 섬뜩함이나 괴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여래의 현현…경전마다 다양한 형태 수록
'예적금강의 多面多臂, 지물'중생교화 상징
신중탱화선 민간 기복신앙과 결합해 등장
명왕상의 또 다른 유례로는 해인사 대적광전 신중탱이나 예천 용문사 신중탱(1867) 등 19세기 불화에 등장하는 예적금강상이 있다. 모두 다면다비 형상을 갖추고 있는데, 팔금강.사보살 등의 신중과 함께 등장하고 있다. 또한 청도 운문사 비로전과 관음전에 봉안된 신중탱화에서도 법륜ㆍ금강저ㆍ칼 등의 지물을 들고 있는 주악천ㆍ금강4보살ㆍ제석ㆍ범천과 함께 나타나 있는 3면6비 형상의 예적금강상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조선 후기의 신중탱화에는 예적금강이 제석천, 위태천과 함께 주인공격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것은 여래의 교령륜신(敎令輪神)으로 탄생한 명왕이 민간신앙 또는 기복신앙과 결합하여 복을 주고 재난을 면하게 해주는 신상으로 변모한 결과라 볼 수 있다. 이 밖에 명왕을 표현한 예로 1936년 황해도 평산군 월봉리의 논에서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시대 동종의 공작명왕 부조상이 있다.
명왕상에서 다면다비상 못지않게 도상적 중요성을 가진 것이 지물(持物)이다. 지물은 명왕의 서원(誓願)성취에 관한 일대작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명왕이 가진 서원의 핵심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무명과 재난에서 구제해 내겠다는 것이다. 명왕은 그 목적 달성을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하는데, 그 구체적인 방법이 손에 든 지물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명왕이 들고 있는 지물은 활.화살.창.곤봉 등 무기, 금강저ㆍ금강령ㆍ정병 등의 의식구, 갈고리.견삭.포승 등 포획장비, 그리고 숟가락.경권(經卷).연꽃 등 실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이 지물들은 모두 중생 구제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무기류는 사기(邪氣)가 강하여 조복시키기 힘든 상대를 위협하기 위한 것이고, 포획장비는 잡아 둔 중생이 자비의 올가미에서 한사람도 새나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경권, 연꽃 등은 보광(普光)의 불국의 세계를 드러내 보여 주어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채찍과 당근이라는 두 가지 전략을 함께 쓰고 있는 셈이다.
명왕의 조상(造像)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것은 인도, 티베트,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불.보살상이나 사천왕상처럼 조각한 명왕상을 흔히 볼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확실한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밀교가 그들 나라에 비해 크게 유행하지 못했다는 점과, 명왕의 성격상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무섭다는 점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명왕과 여래는 얼음과 물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얼음은 형체를 가지고 있으나 물은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얼음과 물은 실제로 같은 것이다. 명왕은 형체를 가진 얼음과 같고 여래는 형체가 없는 물과 같다. 그래서 명왕은 곧 여래와 같은 것이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227호/ 5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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