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 기단 면석의 ‘설화 형태’ 도상은
일반 탑.불화서 찾아볼 수 없는 특징
기단 3층은 본생도와 ‘팔상도’로 장엄
칠보탑에 절하는 사람 등 다양한 내용
원각사지 10층석탑(국보 제2호)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조선시대 석탑이다. 1467년(세조13년)에 건립된 이 탑은 현재 탑골공원 유리집 속에 보존되어 있는데, 평면 4각 또는 8각으로 된 일반적인 석탑과 다르게 기단부와 1~3층 탑신이 평면 아자형(亞字形)으로 되어 있다. 면석에 새겨진 다양한 경변상(經變相)과 복잡한 설화 형식의 도상은 이 석탑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장엄이다.
조선 세조 때 건립된 원각사는 왕실의 원찰로 임금이 직접 불전에 향공양을 올렸을 정도로 그 위상이 높았다. 왕실 주관의 기청불사(祈晴佛事)나 기우불사(祈雨佛事) 등의 행사도 원각사에서 치러졌다.
원각사지 10층석탑은 얼른 보면 10의 짝수 층급 양식을 채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혹자는 원각사지탑이 3, 5, 7, 9 등의 홀수 층으로 쌓는 우리나라 탑의 관례를 벗어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만 유의해서 관찰해 보면 이 탑 역시 홀수 탑의 관례를 따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이유로 아자형의 1~3층과 방형의 4~10층의 탑신이 각각 3과 7의 홀수 층으로 되어 있다는 점과, 이 두 부분을 구분하기 위한 경계가 뚜렷이 설정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탑의 기단과 탑신에 사천왕을 비롯한 수호 신중 등 각종 조형적 요소를 장식하는 전통은 신라시대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본생담〉이나 경변상(經變相), 그리고 복잡한 설화 형식의 도상을 기단과 탑신에 집중적으로 표현한 예는 흔치않다. 앞서 말한 고려의 경천사 10층석탑이 이 방면의 원조 격이지만 불행히도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밀반출이 시도되었을 때부터 수차례의 수난이 이어져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원각사지 10층석탑이야말로 원위치에서 각종 본생담이나 경변상 등의 도상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석탑이라 해도 좋다.
원각사지 10층석탑의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단연 기단과 탑신의 크고 작은 면석에 새겨져 있는 도상들이다. 특히 20개의 기단 면석에 새겨진 설화 형태의 도상은 일반적인 불탑이나 불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작례이기 때문에 더욱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설화 형태의 도상은 아자형 기단부의 2층과 3층 면석에 집중되어 있다. 먼저 2층의 경우를 살펴보면, 의관을 갖춘 사람, 말을 끄는 자, 칠보탑에 절하는 사람 등 인물상이 눈에 띄고 보협인석탑, 당우 등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에서 삭발한 스님, 원숭이, 돼지, 짐승 머리를 한 형상들이 눈에 띄는데, 이들이 바로 〈서유기〉의 주인공인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화상임을 의심할 의지가 없다.
탑의 기단 3층에는 석가모니 본생도와 불전도로 보이는 내용들이 조각되어 있다. 본생도란 부처님이 전생에서 보살이나 대사(大士), 또는 동물이나 귀신 등과 같이 다양한 생명체의 모습으로 있으면서, 어떠한 선행(善行)을 하고 공덕을 쌓았기에 현생에서 부처님으로 태어날 수 있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의 보협인석탑(국보 제209호)에서 본생담 몇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기는 하나, 원각사탑의 것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략하다. 한편, ‘불전도’라는 것은 부처님 생애의 극적인 여덟 가지 장면을 나타낸 것으로 흔히 ‘팔상도’라 부르고 있다. 그 내용은 도솔내의.비람강생.사문유관.유성출가.설산수도.수하항마.초전설법.쌍림열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각사탑의 팔상도는 석재 표면에 새겨야 하는 한계성 때문에 팔상탱화보다 내용이 빈약하고 묘사도 형식적 차원에 머물러 있으나 장엄 효과는 결코 그림에 뒤지지 않는다.
탑신부는 3개 층으로 된 아자형 탑신부와 7개 층으로 된 방형의 탑신부로 나누어져 있다. 아자형 탑신부의 각 층은 20개 면으로 짜여 있는데, 돌출면과 그 양변에 연접한 각 2개의 면을 합친, 모두 5개의 면석이 한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1개 그룹의 면석에 하나의 불회 장면을 묘사하되, 돌출 면을 불단(佛壇), 연접한 2개 면을 보살단, 나머지 2개 면을 신중단으로 삼았다. 1개 층이 4개 그룹의 면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3층인 아자형 탑신부 전체를 통틀어 12개의 불회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 셈이다.
각 불회 장면을 새긴 탑신의 모양은 목조 불전을 방불케 한다. 다포양식의 목조 가구 구조, 난간.기둥.창방.평방 등 부재의 결구 상태, 그리고 공포 벽에 화불을 그려 넣은 모습까지도 목조 불전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기와지붕 형태의 옥개석마다 편액이 하나 씩 모각(模刻)되어 있는데, 각 편액마다 불회 이름이 써있다. 이처럼 불회 이름을 불전 건물에 써 붙여 놓은 예를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龍華之會(용화지회)’라고 쓴 편액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층의 편액에 쓰인 불회의 종류는 삼신불회.아미타회.영산회.용화회로 되어 있다. 이것을 현재 우리나라 사찰의 불전 이름과 연결시켜 본다면 삼신불회와 영산회는 대웅전 또는 영산전, 아미타회는 극락전, 미타전, 무량수전, 그리고 용화회는 앞서 예로 든 미륵전 또는 용화전에 해당될 것이다. 그렇다면 1층 탑신은 우리나라 불교 신앙의 중심이 되는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한 자리에 모아 둔 것과 같은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셈이다.
위의 각 불회는 미타회가 탑의 동쪽 면에, 삼세불회가 남쪽, 영산회가 서쪽, 용화회가 북쪽에 배치되어 있다. 미타회는 아미타불이 극락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동쪽 돌출면에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한 협시보살과 청중, 연접한 양측 면에는 삼존 형식의 불보살, 그 안쪽 면에 화염과 천의가 인상적인 금강역사를 새겼다. 삼세불회의 경우는 남쪽 돌출면에 과거, 현재, 미래불인 연등불(또는 아미타불), 석존, 미륵불이 연접된 커다란 광배를 배경으로 앉아 있다. 서쪽 면에 새겨진 영산회는 영축산에서 석가모니불이 〈법화경〉을 설한 법회의 모임을 뜻한다. 중심에 석가여래, 안쪽 좌우에 마하가섭과 아난존자로 보이는 비구 형상의 인물이 합장한 모습으로 서있고, 그 바깥쪽으로 연꽃을 든 두 협시보살이 앉아 있다. 용화회는 미륵불이 도솔천에서 용화수 아래로 강림하여 벌인 법회를 말하는데, 미륵불을 중심으로 보살과 청중들이 화면 가득히 묘사되어 있다.
2층에는 화엄회.원각회.법화회.다보회 장면이 도설되어 있다. 2층의 경우도 1층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불회 장면이 5개의 면석에 전개되어 있다. 동쪽에 다보회, 남쪽에 화엄회, 서쪽에 원각회, 북쪽에 법화회가 배치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특히 원각회는 원각사라는 절 이름과 관련되어 있어 주목된다.
3층에는 소재회(消災會).전단서상회(壇瑞像會).능엄회.약사회가 묘사되어 있는데, 동쪽에 약사회, 남쪽에 소재회, 서쪽에 진단서상회, 북쪽에 능엄회가 배치되어 있다. 여기서 소재회란 모든 재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불회라는 뜻이다. 소재회에 참석한 존상들은 본존인 치성광여래, 협시인 일광보살.월광보살, 그리고 칠여래, 칠원성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단서상회 장면에서 본존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도솔천에 올라 가 있을 당시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간 세상에 없다는 것을 상징한 것으로 매우 흥미롭고 희귀한 작례이다.
마지막으로 방형으로 된 4층에서 10층까지의 탑신을 살펴보자. 이곳에도 불회 장면과 여래상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4층 면석에는 동쪽에 지장회, 남쪽에 원통회, 서쪽에 석가회, 북쪽에 열반회 등 불회 장면이 나타나 있고, 5층에는 한 면에 5여래씩 20여래상이 새겨져 있으며, 6층 이상에는 한 면에 3 여래씩 각 층에 12여래상을 표현하여 모두 80여래상을 표현했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225호/ 5월3일자]
일반 탑.불화서 찾아볼 수 없는 특징
기단 3층은 본생도와 ‘팔상도’로 장엄
칠보탑에 절하는 사람 등 다양한 내용
![]() |
사진설명: 1층 탑신의 삼세회 장면. 중앙 면석에 과거.현재.미래 3불이 나란히 앉아 있다. 좌우의 것이 삼세회의 신중, 왼쪽 끝의 것이 영산회의 좌협시보살, 오른쪽 끝이 미타회의 우협시보살. |
조선 세조 때 건립된 원각사는 왕실의 원찰로 임금이 직접 불전에 향공양을 올렸을 정도로 그 위상이 높았다. 왕실 주관의 기청불사(祈晴佛事)나 기우불사(祈雨佛事) 등의 행사도 원각사에서 치러졌다.
![]() |
사진설명: 전단서상회 장면. 가운데 빈자리는 석존이 도솔천에 올라가 있어 인간 세상에 없음을 상징한다. |
탑의 기단과 탑신에 사천왕을 비롯한 수호 신중 등 각종 조형적 요소를 장식하는 전통은 신라시대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본생담〉이나 경변상(經變相), 그리고 복잡한 설화 형식의 도상을 기단과 탑신에 집중적으로 표현한 예는 흔치않다. 앞서 말한 고려의 경천사 10층석탑이 이 방면의 원조 격이지만 불행히도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밀반출이 시도되었을 때부터 수차례의 수난이 이어져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원각사지 10층석탑이야말로 원위치에서 각종 본생담이나 경변상 등의 도상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석탑이라 해도 좋다.
![]() |
사진설명: 2층 기단에 새겨진 〈서유기〉의 한 장면. 오른쪽에서부터 손오공, 저팔계, 삼장법사, 사화상. |
탑의 기단 3층에는 석가모니 본생도와 불전도로 보이는 내용들이 조각되어 있다. 본생도란 부처님이 전생에서 보살이나 대사(大士), 또는 동물이나 귀신 등과 같이 다양한 생명체의 모습으로 있으면서, 어떠한 선행(善行)을 하고 공덕을 쌓았기에 현생에서 부처님으로 태어날 수 있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의 보협인석탑(국보 제209호)에서 본생담 몇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기는 하나, 원각사탑의 것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략하다. 한편, ‘불전도’라는 것은 부처님 생애의 극적인 여덟 가지 장면을 나타낸 것으로 흔히 ‘팔상도’라 부르고 있다. 그 내용은 도솔내의.비람강생.사문유관.유성출가.설산수도.수하항마.초전설법.쌍림열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각사탑의 팔상도는 석재 표면에 새겨야 하는 한계성 때문에 팔상탱화보다 내용이 빈약하고 묘사도 형식적 차원에 머물러 있으나 장엄 효과는 결코 그림에 뒤지지 않는다.
탑신부는 3개 층으로 된 아자형 탑신부와 7개 층으로 된 방형의 탑신부로 나누어져 있다. 아자형 탑신부의 각 층은 20개 면으로 짜여 있는데, 돌출면과 그 양변에 연접한 각 2개의 면을 합친, 모두 5개의 면석이 한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1개 그룹의 면석에 하나의 불회 장면을 묘사하되, 돌출 면을 불단(佛壇), 연접한 2개 면을 보살단, 나머지 2개 면을 신중단으로 삼았다. 1개 층이 4개 그룹의 면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3층인 아자형 탑신부 전체를 통틀어 12개의 불회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 셈이다.
각 불회 장면을 새긴 탑신의 모양은 목조 불전을 방불케 한다. 다포양식의 목조 가구 구조, 난간.기둥.창방.평방 등 부재의 결구 상태, 그리고 공포 벽에 화불을 그려 넣은 모습까지도 목조 불전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기와지붕 형태의 옥개석마다 편액이 하나 씩 모각(模刻)되어 있는데, 각 편액마다 불회 이름이 써있다. 이처럼 불회 이름을 불전 건물에 써 붙여 놓은 예를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龍華之會(용화지회)’라고 쓴 편액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층의 편액에 쓰인 불회의 종류는 삼신불회.아미타회.영산회.용화회로 되어 있다. 이것을 현재 우리나라 사찰의 불전 이름과 연결시켜 본다면 삼신불회와 영산회는 대웅전 또는 영산전, 아미타회는 극락전, 미타전, 무량수전, 그리고 용화회는 앞서 예로 든 미륵전 또는 용화전에 해당될 것이다. 그렇다면 1층 탑신은 우리나라 불교 신앙의 중심이 되는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한 자리에 모아 둔 것과 같은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셈이다.
위의 각 불회는 미타회가 탑의 동쪽 면에, 삼세불회가 남쪽, 영산회가 서쪽, 용화회가 북쪽에 배치되어 있다. 미타회는 아미타불이 극락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동쪽 돌출면에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한 협시보살과 청중, 연접한 양측 면에는 삼존 형식의 불보살, 그 안쪽 면에 화염과 천의가 인상적인 금강역사를 새겼다. 삼세불회의 경우는 남쪽 돌출면에 과거, 현재, 미래불인 연등불(또는 아미타불), 석존, 미륵불이 연접된 커다란 광배를 배경으로 앉아 있다. 서쪽 면에 새겨진 영산회는 영축산에서 석가모니불이 〈법화경〉을 설한 법회의 모임을 뜻한다. 중심에 석가여래, 안쪽 좌우에 마하가섭과 아난존자로 보이는 비구 형상의 인물이 합장한 모습으로 서있고, 그 바깥쪽으로 연꽃을 든 두 협시보살이 앉아 있다. 용화회는 미륵불이 도솔천에서 용화수 아래로 강림하여 벌인 법회를 말하는데, 미륵불을 중심으로 보살과 청중들이 화면 가득히 묘사되어 있다.
![]() |
사진설명: ‘화엄회’라고 쓰여있는 편액. |
3층에는 소재회(消災會).전단서상회(壇瑞像會).능엄회.약사회가 묘사되어 있는데, 동쪽에 약사회, 남쪽에 소재회, 서쪽에 진단서상회, 북쪽에 능엄회가 배치되어 있다. 여기서 소재회란 모든 재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불회라는 뜻이다. 소재회에 참석한 존상들은 본존인 치성광여래, 협시인 일광보살.월광보살, 그리고 칠여래, 칠원성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단서상회 장면에서 본존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도솔천에 올라 가 있을 당시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간 세상에 없다는 것을 상징한 것으로 매우 흥미롭고 희귀한 작례이다.
마지막으로 방형으로 된 4층에서 10층까지의 탑신을 살펴보자. 이곳에도 불회 장면과 여래상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4층 면석에는 동쪽에 지장회, 남쪽에 원통회, 서쪽에 석가회, 북쪽에 열반회 등 불회 장면이 나타나 있고, 5층에는 한 면에 5여래씩 20여래상이 새겨져 있으며, 6층 이상에는 한 면에 3 여래씩 각 층에 12여래상을 표현하여 모두 80여래상을 표현했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225호/ 5월3일자]